[남유연 탐방기] 런던과 파리에서 예술 펼치기
[남유연 탐방기] 런던과 파리에서 예술 펼치기
  • 남유연 객원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14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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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오페하 거리

특정 예술을 세계적인 예술로 만드는 것은 권력이다. 예술 자체의 훌륭함도 물론 중요하지만, 권력 또한 필수적인 요소이다. 힘이 있는 나라가 자국의 예술을 보호할 수 있으며, 알릴 수도 있다. 유럽은 그야말로 예술의 대륙이다. 유럽에는 역사적으로도, 현재에도 힘있는 국가가 많은만큼 세계적인 명화 혹은 명곡으로 불리는 작품들은 유럽에서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과거 수많은 국가들을 식민지로 지배하며 ‘대영 제국’으로 이름을 떨쳤던 영국의 중심인 런던에 다녀왔다.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예술의 중심지가 뉴욕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오랫동안 서양 예술의 수도였던 파리에도 다녀왔다.  

런던은 어딘가 서울과 닮았다. 촘촘한 지하철과 버스 노선, 수많은 카페들과 술집들, 음식점들, 편의점들. 여름이라 해가 길어서 많은 가게들과 상점들은 밤 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았다. 푹푹 찌는 한국의 여름과 달리 런던은 쌀쌀했고, 코트를 입은 사람부터 반팔티를 입은 사람까지 여러 계절을 한 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언제나 비가 오락가락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지키지 않았다. 가장 생경했던 풍경은 저녁부터 밤까지 술집 앞 거리에 우르르 서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필자는 저녁 문화는 저녁에 맡겨두고, 관람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성당과 미술관, 서점에 낮 시간을 쏟아부었다.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예전의 화려하고 찬란했던 작품, 건축들이 지금은 남아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80m에 달했다던 신라의 황룡사지 9층 목탑이나, 도자기로 기와를 올렸다던 고려 귀족의 기와집은 지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목재로 만들어져 훼손되기가 쉬웠고, 침략으로 정신이 없었던 탓인지 재건도 되지 못했다.  

세인트 폴 성당 외관

그러나 유럽의 건축은 석재로 되어 있어 목재 건축보다 오래 살아남은 경우들이 많다. 영국 성공회 성당인 세인트 폴 성당은 600년대에 지어져서 재건축과 파괴를 반복하면서 모습을 바꾸며 현재까지 이어져온 성당이다. 지금의 성당은 1600년대에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이 다시 건축한 모습이다. 많은 영국 성당들은 높고 뾰족한 첨탑과 각이 진 고딕 건물이 특징인데 세인트 폴 성당은 고딕식 건축이 아니다. 세인트 폴 성당은 독특하게도 둥근 돔을 올리는 바로크식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다. 그냥 건축가 렌의 취향이 돔이라서 이렇게 됐다. 렌은 실력만큼 엄청난 배짱이 있던 건축가다. 당시 성공회에서는 고딕 양식을 원했으나 첨탑 대신 돔을 올리고 싶었던 렌은 교회에는 고딕 양식으로 짓겠다고 해놓고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성당을 거의 다 건축해버리고 ‘배째라’는 태도를 취했다. 이미 건물이 거의 다 지어진 상황에서 교회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돔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렌이 집착했던 이 거대한 돔은 이중 돔의 형태를 하고 있다. 안에서 보는 돔과 밖에서 보는 돔, 두 겹의 돔이 있는 셈이다. 외관과 내관을 모두 완벽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전략이다. 안에서 볼 때는 돔이 너무 높지 않아야 천장 장식이 잘 보이고, 밖에서 볼 때는 돔이 높아야 잘 보인다. 관람객이 돔 위에 올라갈 수도 있는데, 이 때 두 개의 돔 사이의 공간을 거쳐갈 수 있다.  

세인트 폴 성당 내부. 모자이크가 화려하다.
세인트 폴 성당 내부. 모자이크가 화려하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워낙 화려한 돔을 많이 봐서인지, 외관을 보고서는 그저 큰 돔이라고 생각했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천장을 장식한 정교한 모자이크를 보고 감탄했다. 약 400년 전에 만들어진 건물이라기엔 믿을 수 없이 천장이 높았다. 인터넷도 없고 책도 보편적이지 않아서 다른 세계를 접하기 어려웠을 400년 전을 떠올려본다. 마을에서 거의 유일하게 가장 화려한 장소. 노란 금과 짙고 깊은 푸른색이 어우러진 천장에 신을 섬겼던 사람의 역사와 생이 묘사되어 있다. 울림이 큰 오르간 소리는 성당 건물 전체에 퍼진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 신자가 되었을 법하다.  

세인트 폴 성당의 돔 위에서 보는 런던의 전경. 돔의 꼭대기는 생각보다 높으며, 런던의 랜드 마크인 건물들과 관람차 런던아이도 볼 수 있다.
세인트 폴 성당의 돔 위에서 보는 런던의 전경. 돔의 꼭대기는 생각보다 높으며, 런던의 랜드 마크인 건물들과 관람차 런던아이도 볼 수 있다.

세인트 폴 대성당에 방문하면 어떻게 해서든 길을 찾아 돔 위로 올라가 봐야 한다. 한 번에 눈에 띄지는 않지만 찾다보면 돔 위로 향하는 나선형의 계단이 있다. 건물 내부에서 외부 풍경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현기증을 느끼며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마침내 돔의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다. 돔의 내부에서도 압도적인 성당의 힘을 느낄 수 있지만, 돔의 정상에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돔 위에서 보이는 성당의 화려한 종탑들은 햇살 아래에서 하얗게 빛나면서 내가 선 곳이 그냥 높은 곳이 아니라 성당의 돔임을 다시 한 번 말해준다. 한국에서처럼 고층 빌딩이나 아파트들이 많지 않아서 특히 그렇겠지만, 내가 올라와 있는 공간이 인간에게 매우 높은 곳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돔 위에서는 런던 시내의 전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은 얼굴을 탁탁 치고 템즈강은 빛에 따라 흙빛과 청록빛을 번갈아 내보이며 꿈틀댄다. 멀리 햇살과 먹구름은 동시에 흘러가며 변덕스러운 영국의 날씨를 알린다.  

빛과 유리를 사용한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세인트폴 대성당의 꼭대기에서 런던의 풍경을 멀리서 감상했다면, 그 세세한 모습도 들여다봐야 진정한 여행이라 할 수 있다.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밀레니엄 다리를 거쳐 템즈강을 걸어서 건너면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나온다. 테이트 모던은 ‘모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1900년대 이후의 예술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영국 미술관들의  장점은, 특별 전시 외에는 무료라는 것이다. 미술관을 둘러보다가 강가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싶어서 미술관을 나왔다가도 부담없이 다시 미술관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몇몇 특별 전시들은 티켓을 사야 한다. 필자는 올라퍼 엘리아슨 전시 티켓을 사고 관람했다. 전시를 보기 전에는 모르는 작가였음에도 특별전 앞에 설치된 구형의 작품을 보고는 홀린듯이 티켓을 샀다. 그는 덴마크-아이슬란드 예술가로, 빛과 물, 유리 등을 활용하는 대규모 설치 작업을 주로 한다. 복잡한 도형과 입체로 이루어진 구조물들을 보면 엘리아슨이라는 작가는 수학에도 조예가 깊은 듯했다. 엘리아슨은 환경 보호에도 적극적인 활동가로, 태양열만으로 불을 켤 수 있는 라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엘리아슨의 작품 ‘Your Blind Passenger(너의 눈먼 승객)’.
엘리아슨의 작품 ‘Your Blind Passenger(너의 눈먼 승객)’.

엘리아슨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Your Blind Passenger’이다. ‘너의 눈먼 승객’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특수 설탕으로 만든 연기가 가득 피어오르는 통로에 여러 명이 들어가서 걸어가는 체험형 작품이다. 통로를 통과함에 따라 조명의 색은 조금씩 달라지는데,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현실성이 휘발되어 버렸다. 지독하게 자욱한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았고, 동시에 다른 세계에 도착한 것 같기도 했다. 분명 단단한 바닥을 딛고 있음에도 연기와 뿌연 색의 조명 때문에 바닥까지 물렁해졌다는 착각이 들 때쯤, 그리고 혼자 이 통로 속에 남겨져 평생 떠돌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들 때쯤 통로가 끝났다. 보통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해 떠올릴 때면 깊은 숲이나 바다, 우주 등을 떠올렸다. 필자는 평생을 도시에 살았어서 그런지 도시에는 더 이상 신비함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러나 엘리아슨이 만들어낸 알 수 없는 세계는, 하얗고 맨들맨들하게 각진 통로로 인해서 도시가 떠올랐다. 도시의 깊은 비밀에 손을 살짝 대본 기분이었다.  

특별전 외에 상설전에서도 칸딘스키, 로스코 등 유명한 현대 작가의 그림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또, 건물 내부도 독특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건물만을 감상해도 충분히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테이트 모던 10층에 가면 런던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세인트 폴 대성당 바로 맞은편에 있기 때문에 대성당을 바로 내려다볼 수 있다. 세인트 폴 대성당 말도고 오래된 건물들이 최근 건물들 사이사이에 존재한다. 런던의 전경은 날씨 덕에 더 독특하다. 쉴새 없이 흘러가는 낮은 구름들.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그 구름들에서 떨어져 내리는 비도 볼 수 있다. 그 구름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의 무늬를 그대로 받아내는 저층의 건물들도 볼 수 있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미술관 앞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있는데, 광장에 앉아 분수와 사람들을 보기만 해도 즐겁다.

파리에 루브르 미술관이 있다면, 런던에는 내셔널 갤러리가 있다. 이번 여행으로 둘 다 가봤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루브르도 내셔널 갤러리에도 충분히 흥미로운 그림들이 많다. 우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가 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도 ‘암굴의 성모’가 있지만 내셔널 갤러리의 그림이 훨씬 컸고, 전시실 또한 감상에 더 적합했다. 두 그림은 모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암굴의 성모’는 ‘모나리자’만큼이나 유명한 그림이다. 16년 전 소설가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라는 스릴러 소설이 엄청난 유행을 끌었을 때, 그 책 속에서 이 그림이 중요하게 다뤄졌었다. ‘암굴의 성모’에서 중앙에 그려진 여성이 성모 마리아다. 성모 마리아의 오른손이 어깨를 감싸고 있는 아기는 세례 요한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암굴의 성모’.

이 세례 요한은 두 손을 모으고 그림의 아래쪽에 그려진 아기 예수를 향해서 기도하는 자세를 취한다. 세례 요한의 자세는 교회를 통해서가 아닌, 직접 예수님에게 기도하는 자세로, 마리아가 세례 요한의 어깨를 감싸는 오른손 동작은 세례 요한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아기 예수는 세례 요한을 축복하고 있다. 아기 예수 옆의 날개 달린 여성은 아기 예수의 보모 역할을 하는 천사다. 구구절절 그림의 이야기를 알고 보면 고작 네 명의 인물로 이 복잡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그려낸 다 빈치의 능력이 놀랍다. 하지만 그림을 알지 못하고 보더라도 그림 자체만으로도 놀라웠다. 암굴의 성모가 전시된 전시실은 어두워서 진정 암굴에 들어온 듯했다. 그림의 모든 부분을 밝게 그렸던 르네상스 시대의 다른 그림들과 달리 다 빈치는 밝고 어두운 음영을 효과적으로 잡아낸다. 그림에서 집중해서 보아야할 밝은 부분이 어디인지 한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두운 부분과 풍경의 세밀한 부분들 또한 세세하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또 눈여겨 봐야할 그림은 독일 화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이다. 다른 나라 대사들을 그린 이 그림은 그림 아래 부분 때문에 유명하다. 정면에서 그림을 보면 뭔지 모를 듯한 이 부분은, 옆에서 보면 해골을 그린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렇게 왜곡된 상을 ‘왜상’이라고 이르는데, 직접 그림을 보지 않는 이상 이 마법을 경험해볼 수가 없다. 무려 1533년에 시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그림이 등장한 것이다. 정면에서는 길게 늘어져 있던 형체 모를 무언가가, 내가 그림의 옆으로 이동하면서 점점 해골의 형태를 잡아가는 것을 보면서, 두 눈으로 직접 그림을 볼 때에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을 느꼈다. 이 해골은 ‘죽음은 어디에나 존재하니 죽음을 잊지 말라’, 라틴어로는 ‘메멘토 모리’라는 교훈을 담고 있다. 그림 속 사람들은 실물 사람들의 크기와 비슷하다. 이미 몇 백 년 전에 죽은 화가가 몇 백 년 전에 죽은 사람들을 그린 그림을 보고 있자니 묘했다. 죽음을 잊지 말라고 그림을 그렸던 화가가 죽기 직전에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느꼈을까? 죽음을 잊고 살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과 죽음을 항상 생각하다가 죽은 사람은 죽기 직전에 어떻게 달랐을까? 사실 미술관의 많은 그림들이 이미 죽은 화가가 그린 그림이지만, 이 그림은 그림 자체가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니 느낌이 달랐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좌)‘대사들’(우) 그림 아래의 왜상을 그림 옆에서 찍은 사진. 정면에서 볼 때와 달린 해골이 분명히 드러난다.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좌)‘대사들’(우) 그림 아래의 왜상을 그림 옆에서 찍은 사진. 정면에서 볼 때와 달린 해골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람들이 많이들 가는 또 다른 미술관으로는 테이트 브리튼이 있다. 테이트 브리튼은... 맛집이다. 미술관 음식은 보통 맛이 없어서 미술관에서 식사를 잘 하지는 않는데, 어쩌다보니 미술관 안에서 점심을 해결하게 되었다. 음식이 맛없기로 정평이 난 영국에서 미술관 음식이라니,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조개 파이와 파스타는 상상 이상이었다. 값도 많이 비싸지는 않았다. 그러고나서 둘러보니 현지인들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꽤 많이 앉아서 식사를 천천히 즐기고 있었고, 남는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림 ‘Shipwrek(난파선)’
그림 ‘Shipwrek(난파선)’

미술관 얘기로 돌아가서, 테이트 브리튼에는 영국 출신 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 (J.M.W Turner)의 콜렉션이 있다. 영국 화가다 보니 테이트 브리튼에서 더욱 특별하게 여기는 듯했다. 터너는 18세기 말부터 유럽에서 유행한 ‘낭만주의’ 사조에 큰 기여를 했다. 여기서 낭만주의는 우리가 요즘 ‘낭만적이다’라고 말할 때의 로맨틱함과는 거리가 멀다. 낭만주의 미술은 현실 고발, 이성을 벗어난 감성의 중시, 서양의 시선으로 봤을 때 동양적이고 이국적인 것의 세 가지를 주 소재로 했다. 터너는 낭만주의 풍경화를 주로 그렸는데, 그의 안개가 자욱한 듯한 풍경화들은 극대화된 빛을 활용해서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로운 인상을 준다. 사실 그의 그림들은 이미지 파일로만 봤을 때에는 그 매력을 잘 몰랐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보니, 그의 그림의 흰색 안에는 다양한 빛이 섞여 있었다. 홀로 바다 위에 표류하다가 바다가 잠잠해진 새벽에 파도를 바라보는 듯했다. 분명 그림은 아름답고 잔잔한데 그 풍경을 보는 사람의 감정은 차분하고 슬펐을 것 같았다. 그저 천 위에 덮인 물감들이 어떻게 사람에게 특정한 감정을 자아내는지, 그림의 세계는 모를 일들 투성이다. 터너의 그림은 이렇게 감상적인 바다 풍경을 전하면서도, 종종 어떤 그림들에서는 잔혹한 현실을 고발하는 요소를 첨가했다. 폭풍우 치는 바다에 버려진 노예들이나 죄수들, 배가 난파 당해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그리기도 했다. 바다는 아름다운데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처절해서 그 대비가 현실의 잔혹함을 더욱 부각한다.  

워터스톤 서점의 내부.
워터스톤 서점의 내부.

런던 길거리를 걷다 보면 거대한 서점인 포일스 서점이 눈에 띈다. 포일스 서점은 마치 우리나라의 교보문고처럼 온갖 책도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으며, 각종 문구류도 판다. 포일스 서점보다 재미있었던 서점은 워터스톤 서점이었다. 길거리를 걷다가 어느 빌딩에 딸린 서점을 발견했다. 영국에서는 어떤 책을 파나 싶어서 들어갔다. 입구가 왠지 얌전하고 작길래 소규모 서점인 줄 알았는데 웬걸, 장르별 책도 팔고 지하와 2층도 있으며 뒷문까지 있는 엄청난 규모의 서점이었다. 영국의 건물들은 저층 건물들이 많아서 그런지 건물에 입점해 있는 가게들이 작은 가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막상 그 가게, 혹은 서점에 들어가보면 내부가 커서 놀랐다. 소설, 교양서부터 동화책과 유머집까지, 없는 책이 없었다. 한국에서와는 다른 책 디자인을 보고 즐거웠다. 한국에서는 요즘 명화나 잘 찍힌 파스텔톤의 사진들이나 일러스트가 책 표지로 인기가 많은 듯했는데, 영국의 책들은 제목을 눈에 띄게 박아 넣는 경우가 많았다. 책 커버에 쓰이는 색들도 한국보다는 강렬한 색들이 많았다. 보통은 흰 색인 책의 옆면 종이에 색을 입힌 경우도 많았다. 둥그런 탁자 위에 책을 진열한 방식도 눈에 띄었다.  

비틀즈, 롤링스톤즈, 퀸부터 오아시스, 블러, 콜드플레이까지 세계적인 락밴드들을 배출시킨 락앤롤의 나라 영국. 락 음악 팬으로서 음반 샵 방문은 필수다. 유명 음반, DVD, 책 소매점인 Fopp에는 현지인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는 비싸게 구할 수밖에 없는 음반들과 LP들이 진열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을 보고 반드시 부자가 되어 Fopp을 재방문하겠다고 다짐했다. 반갑게도 한국의 앨범, 책, 영화도 발견할 수 있었다. 세계적인 아이돌이 된 BTS의 앨범은 진열된 앨범 중 거의 유일한 아시아 팀의 앨범이었다. 도서 영역에서는 한국 스릴러 소설의 왕 정유정 작가의 소설 ‘종의 기원’이 ‘The Good Son’이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팔리고 있었다. 영화 ‘밀정’의 DVD는 ‘The Age of Shadows’라는 제목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Fopp 내부의 CD 진열장.
Fopp 내부의 CD 진열장.

런던 거리에서 버스킹하는 사람들을 보더라도 영국은 락의 나라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통기타는 기본이고 일렉 기타를 치는 사람들도 많았다. 런던에는 음반 매장 외에도 락밴드 굿즈를 파는 상점도 따로 있다. 영국은 해리포터의 나라이기도 한 만큼 해리포터 목도리부터 마법 지팡이까지 파는 해리포터 굿즈 샵도 있으며, 저녁마다 온갖 극장에서 뮤지컬 관객이 쏟아져 나온다. 심지어 보드 게임만을 파는 가게도, 젤리와 사탕, 쿠키만 파는 가게도 있다. 많은 미술관이나 관광 스팟들이 걸어서 혹은 버스로 쉽게 갈 수 있으며 골목골목에 신기한 상점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이 많다면 천천히 둘러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색다른 도시에서 색다른 문화 생활을 즐기기에 런던은 안성맞춤이다. 미술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각종 상점들을 충분히 둘러보고, 그에 더해 저녁에 술집 앞에 서서 즐기는 맥주 한 잔까지 경험하려면 런던에서는 일주일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파리는 런던과는 풍경이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공원 혹은 정원에서 느낄 수 있었다. 런던에서 방문했던 하이드 파크는 큰 나무들이 자유롭게 뻗어있었고, 숲의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파리에서 방문했던 뛸르히 가든은 공원이라기 보다 정원에 가까워서, 나무들은 특정한 형태로 다듬어져 있었고, 꽃들이 색에 따라 가지런히 분류되어 심겨 있었다. 파리의 공원 내부의 조각상들이나 분수대가 정돈된 아름다움을 더했다. 또, 파리는 런던보다 관광객만을 주타겟으로 하는 곳들이 많았다. 파리의 지하철과 버스는 한국만큼 촘촘해서 관광지들에 찾아가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필자가 방문했을 때는 이례적인 폭염이 닥쳤던 시기로, 파리에는 에어컨이 흔치 않아 꽤나 고생했다. 북아프리카에서 올라오는 사막의 기운을 느끼며 파리 미술관 곳곳을 찾아다녔다. 우리나라의 폭염이 마치 대중 목욕탕처럼 축축하고 푹푹 찐다면 프랑스 파리의 폭염은 고온 불가마다. 문제는 파리의 버스와 지하철에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로댕 미술관에도 에어컨이 없었다. 사실 기상이변만 아니라면 파리는 에어컨이 필요하지 않을 날씨이기 때문에 폭염만 피한다면 파리는 여름에 놀러갈만 하겠다.  

루브르 박물관의 외관과 유리 피라미드를 함께 찍은 사진.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줄 수가 없나’로 시작하는 조용필의 노래, ‘모나리자’를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파리에서 비행기로도 열 시간이 넘게 걸리는 한국의 노래에까지 등장하는, 희미하게 미소를 띄고 있는 여성의 초상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모나리자’가 있는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2019년 현재, 원래 모나리자가 전시되어 있던 전시실이 보수공사 중이기 때문에 모나리자는 메디치 갤러리관으로 임시 이사를 한 상태이다. 로비에서부터 모나리자를 만나기 위한 엄청난 인파에 놀랐지만, 그럼에도 루브르까지 와서 모나리자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장장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모나리자가 전시된 방까지 줄을 서서 갔다. 모나리자 감상은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모나리자 앞에 선지 10초 남짓이 지나면 경비원들이 막무가내로 밀어서 사람들을 퇴장시키기 때문에 ‘감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순발력을 발휘하면 인증샷을 찍을 수는 있겠다. 빙긋 웃는 모나리자의 미소가 얄미워 보일 지경이다. 희미한 미소가 마치 ‘나와 같은 슈퍼스타의 얼굴을 10초라도 본 소감은?’ 이라 묻는 것 같았다. 

현장성이 드러나는 사진. 경호원에게 밀리면서 찍은 최선의 사진이었다. 사진 왼쪽의 세 여성의 누드는 루벤스 그림의 일부이다.

모나리자라는 작품 자체의 의의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유럽의 기준으로, 모나리자는 전형적인 초상화의 기틀을 처음으로 마련한 그림이다. 요즘도 독사진을 찍을 때는 미소를 지으며 앉아서 얼굴을 4분의 3정도 돌리고, 손을 가지런히 포개어 복부에 대며, 보통 상반신만을 나오게 찍는 경우가 많다. 모나리자의 포즈 그대로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 작품성에 걸맞는 감상을 하기 힘들다. 아이러니다. 루브르 박물관의 운영에도 불만이 생겼다. 모나리자가 임시 거주하고 있는 메디치 갤러리관은 본래 역동적인 그림으로 유명한 피터 폴 루벤스의 거대한 작품들이 벽을 꽉 채우고 있는 관이다. 그러나 루벤스의 그림은 그저 모나리자의 들러리가 되었고, 경호 관련 시설이 루벤스의 그림을 일부 가리기도 했다. 모나리자를 위해 몇몇 다른 전시관에 가는 길을 막아버려 어떤 그림을 보기 위해서는 빙빙 돌아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보지 말라고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꼭 보긴 보되 모든 기대를 내려놓은 상태에서 보시라.  

루브르 박물관은 미술관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박물관이다. 과거 유물에 가까운 인류 초기 미술들부터 엄청난 양이 전시되어 있다. 또, 프랑스 박물관이니만큼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들도 많았다. 1900년대 이전 작품들이 주로 있어서 그림들끼리 비슷비슷해보이기도 하다. 루브르를 일주일 동안 보려는 게 아닌 경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취향에 따라 조각을 주로 볼 수도 있고, 그림 전시실만 돌아볼 수도 있으며, 화려한 장식 예술을 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미술관이 그닥 취향이 아니라면 몇몇 개만 보고서 유리 피라미드 앞 분수대에서 바람과 햇살을 즐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지옥의 문에 가까이 서서 찍은 사진. 완벽하게 입체로 조각된 인물들이 더 잘 보인다.

로댕 미술관은 작은 미술관이지만 로댕의 작품들이 총집합해 있고, 로댕을 뛰어넘는 재능을 가졌다고 찬사 받는 로댕의 어린 연인 까미유 끌로델의 작품들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다만 에어컨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미술관은 마치 달아오른 찜질방 같았다. 로댕 미술관인데도 모네나 고흐의 그림도 있었는데, 그림의 상태는 안녕한지 궁금할 정도였다. 더군다나 조각 작품들은 동으로 만든 작품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작품들 자체의 온도도 올라가고 있었다. 더운 날씨로 인해 로댕 박물관의 정원은 둘러보지 못했지만, 정원 또한 아름다움을 뽐낸다고 하니 다음번에는 꼭 정원에서 거닐고 싶다.  

조각 작품들은 그림들보다 실제로 봤을 때 더 새로운 느낌을 준다. 특정 조각의 사진을 아무리 봐도, 영상을 본다 해도 직접 볼 때와 달리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조각을 잘 알고 있다 생각해도 조각의 뒷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크게 인상 깊게 봤던 작품은 지옥의 문이었다. 더운 날씨로 달궈진 지옥의 문은 불의 지옥으로 가는 문인가 싶었다. 작품은 생각보다 훨씬 입체적이었다. 사진으로만 작품을 봤을 때는, 지옥의 문에 묘사된 고통받는 인간들과 악마들이 평면에서 조금 더 튀어나와있는 부조의 형태로 묘사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완벽한 입체 조각들이 꽤나 깊은 문틀을 가진 문에 붙어 있는 것에 가까웠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외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외부.

올해 4월,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에 불타버려 세계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켰다. 4월으로부터 몇 달 후에 파리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사람으로서 크게 낙담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을 달래고자 공사 중인 노트르담 성당이라도 보기 위해 그 쪽으로 갔다가 뜻밖의 서점을 만났다. 사람들이 몰려 있길래 뭔가 싶어 가봤던 곳에는 유명한 서점이 있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서점으로, 서점 앞에는 물을 마실 수 있는 식수 분수가 있고, 카페도 있다. ‘영국 극작가인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딴 서점이 왜 여기에?’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이 서점은 1919년도에 만들어졌는데, 처음에 셰익스피어의 희귀 판본들을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했던 서점이라고 한다. 또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이 서점을 즐겨 찾았다고 하며, 많은 작가들이 이 서점에서 의견을 나누었다고 한다. ‘비포 선라이즈’, ‘미드 나잇 인 파리’ 등에도 나와서 더욱 유명한 서점이라고 한다. 1층을 둘러보고는 빈티지 인테리어를 지닌 생각보다 평범한 서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좁고 삐걱거리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그곳에는 중고 서적들이 가득 있었다. 정말로 오래된 책들인듯, 책장을 넘기자 책장 끝이 삭아서 바스락거리는 책들도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검은 가죽 표지와 금박으로 글자를 입힌 옛날 책들도 있었다. 햇빛에 달궈진 뜨거운 바람이 2층의 여닫이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창문의 유리는 다이아몬드 패턴으로 일렁였다. 쌓인 책 위에는 사람들이 짜증난다는 듯 부루퉁한 얼굴을 한 노란 고양이 한 마리가 늘어져 있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무 책걸상 세트는 오랜 시간 사람들의 손을 탔는지 반들거렸다. 영어로 적힌 책들도 많아서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는 필자도 영어 책 몇 권을 뽑아서 내용을 훑어보기도 했다. 서점의 풍경 자체가 옛 유럽을 배경으로 하는 잔잔한 책의 한 장면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이런 서점에서 책을 읽는다면 글을 조금 읽다가도 서점의 풍경을 넋 놓고 보게 될 것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 연작 중 한쪽 벽면을 찍은 사진.
오랑주리 미술관의 모네 연작 중 한쪽 벽면을 찍은 사진.

미술 작품을 크게 즐기지는 않지만 예술의 도시 파리에서 미술 작품을 짧고 굵게 보고 싶다는 분들께는 오랑주리 미술관을 추천 드린다. 오랑주리는 비교적 작은 미술관인데, 처음부터 필살기를 발사한다. 들어가자마자 인상파의 거장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과 만날 수 있다. 수련 연작만을 위해서 특별히 만들어진 타원형의 방의 벽을 둘러싸고 수련 연작이 전시되어 있어서 마치 모네의 정원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모네 뿐 아니라 르누아르, 세잔 등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도 많다. 인상파는 빛이 만들어낸 순간적인 인상을 포착한 장면을 그려낸 미술 사조으로, 풍경이나 인물이 주소재이다. 그렇다보니 어렵지 않게 감상할 수 있다. 그림에 얽힌 이야기나 신화 등이 없기 때문이다. 모네의 대형 작품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뭔지 모를 물감덩이들이 엉켜 있어서 미완성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비슷한 색들을 아무렇게나 발라놓은 듯하다. 그러나 그림에서 떨어져 뒤에서 감상할수록 그림이 선명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마법같은 현상은 작품을 직접 눈으로 그림을 볼 때만 느낄 수 있다. 인상파 작가들 중에서도 모네의 작품에서 특히 잘 드러난다. 모네가 그림을 그릴 때 그림에서 3m씩 떨어져서 그린 것도 아닐텐데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짐작하기 힘들다.  

 오르셰 미술관은 필자의 버킷리스트에 들어가 있었다. 엄청난 기대를 품고 갔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다음에 파리의 미술관 중 단 하나만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오르셰를 선택하겠다. 그림의 유명세에 집착하고 싶지 않지만, 유명한 그림 옆에 유명한 그림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보통 유럽의 옛 명화들을 감상하고 싶다면 유럽 신화나 성경의 내용이나 에피소드를 잘 알수록 잘 보인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오르셰 미술관의 그림들은 인상주의와 사실주의가 대부분이라 유럽의 문화를 세세하게 꿰고 있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었다. 옛날 기차역으로 쓰였던 건물을 미술관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라 건물부터 독특했다.  

오르셰 미술관 5층에서 아래를 찍은 사진.
오르셰 미술관 5층에서 아래를 찍은 사진.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들이 5층에 모여있었다. 뭐든지 알고 있어야 재미가 있는 법, 5층에는 눈에 익은 그림들이 매우 많았으며,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빛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풍경을 그렸던 모네, 정물화와 풍경화 속에 영원을 그려내려 했던 세잔, 아름다운 여성들과 휴일의 즐거운 모습을 그렸던 르누아르, 술집에서 교류를 즐기는 사람들을 주로 그렸던 로트렉, 발레리나들의 힘겨운 생활을 포착해서 그렸던 드가, 점묘법을 활용했던 쇠라 등,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빽빽했다. 그림이 너무 많아서 모든 그림을 주의 깊게 보지 못할 정도라는 것이 흠일 정도로, 미술 교과서에서든 광고에서든 영화 속에서든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이 많았다. 

 반 고흐의 죽음을 다룬 영화이자 모든 영화의 컷을 그림으로 그려낸 영화인 ‘러빙 빈센트’를 본 사람이라면, 고흐의 그림들을 보면서 영화가 떠올라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정신병에 걸린 반 고흐의 의사였던 가셰 박사의 초상이 있고, 반 고흐 자신의 자화상이 있다. 고흐의 그림들은 대부분 거칠다. 거친 붓질 때문에 캔버스의 밑색이 완성작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고흐는 강렬한 색을 많이 사용했고, 고흐의 그림을 묘사할 때 많이 쓰이는 형용사 또한 ‘강렬한’이다. 가셰 박사의 초상을 포함한 많은 그림들이 거칠고 강렬하게 그려졌는데, 자화상을 보고는 너무나 섬세하고 은은한 색으로 그려져서 놀랐다. 그림을 찍어놓은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눈동자에 드리운 눈꺼풀의 그림자가 세밀해서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보는 듯했다. 진실로 화가가 자신의 영혼의 한 조각을 그림에 담아낸 듯했다.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슬픔과 처절함을 느끼는 것이 정신병으로 고통 받다가 무명으로 죽은 고흐의 비극적인 일화를 알아서가 아닐까, 라는 의문이 항상 있었다. 그러나 이 자화상을 보니 설령 고흐의 삶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하더라도 고흐의 눈동자에서 꾹꾹 눌러놓은 슬픔과 분노를 볼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좌),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우)
빈센트 반 고흐의 ‘가셰 박사의 초상’(좌),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우)

어떤 작품들은 크기로 사람을 압도한다. 기대보다 훨씬 큰 크기에서 나오는 압도감, 그리고 실물보다 크게 묘사된 작품 속 인물들은 그림 앞에 선 관람객들의 시선을 빼앗고, 시간을 멈추고, 그림 속 공간으로 관람객들을 초대한다. 오르셰에서는 폭이 6m, 높이가 3m가 넘는 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을 만날 수 있다. 이 그림의 크기가 이렇게 큰지 몰랐어서 당황스러우면서도 경이로웠다. 그림이 걸린 높이도 절묘해서, 관람객들은 마치 한 계단 아래에서, 혹은 땅에 앉아서 장례식 장면 속에 참여하고 있는 각도의 시선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림 속 인물들의 얼굴을 보기는 힘들었으나 그림 아래 부분에 그려진 개나, 그림 속 구덩이과 그 부근에 그려진 해골은 아주 잘 볼 수 있었다. 장례식 장면에서 드러나는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해골의 이미지라니, 런던에서 본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과 ‘오낭종의 매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화가들은 인간의 생과 사에 큰 관심이 있었던 듯하다.  

쿠르베는 19세기에 성행했던 ‘사실주의’ 사조의 선두주자로, 사실주의는 실제로 있었던 일들만을 그리겠다는 태도이다. 있었던 일들을 미화하거나 천사나 악마와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그리는 그림들을 비판했다. ‘오낭종의 매장’ 또한 실제로 일어났던 일만을 담백하게 그린 것이다. 19세기 당시 미화된 그림들, 예쁜 그림들만을 본 사람들에게 쿠르베의 그림은 큰 논란을 낳았다고 한다. 사실 장례식과 우는 사람들, 사람이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구덩이와 해골을 보는 일은 썩 유쾌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논란이 일기 전, 쿠르베는 자신의 사실주의적인 그림들이 논란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림들이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머리를 썼다. 사람들에게 닿기 전에 금지당하거나 비난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살롱에서 일등을 하면, 일등을 한 사람에게 원하는대로 개인 전시를 열 수 있도록 해줬다. 쿠르베는 당시 사람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 살롱에서 일등을 하고, 전혀 다른 화풍의 사실주의 그림들을 개인 전시회에 걸었다고 한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낭종의 매장’
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낭종의 매장’

런던과 파리의 미술관은 모든 그림을 다 유심히 보겠다는 생각으로 달려들면 ‘쓰러진다.’ 필자는 유럽이라는 먼 대륙에 온 김에 모든 미술관을 다 열심히 돌아보겠다는 패기로 달려들었으나 쓰러질 뻔했다. 예술 감상이 숙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어디 책이나 인터넷에서 본 건지, 내가 직접 두 눈으로 본 건지 헷갈린다.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유명한 것들만 돌아봐도 충분하다.  

파리의 시골 풍경.
파리의 시골 풍경.

기회가 된다면 유럽의 전원 풍경도 즐겨보기를 추천 드린다. 기회가 닿아 파리의 시골을 즐길 수 있었는데, 그 풍경은 정말이지 명화 그 자체였다. 모네와 같은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들이 어떻게 그런 풍경화를 그리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풍경을 그대로 보고 그리기만 해도 아름다운 그림이 나올 정도로 노란 들판과 푸른 하늘을 낮고 빠르게 가로질러 가는 구름, 한 방향으로 휘어진 나무들은 아름다웠다.  

런던과 파리의 미술관과 서점들을 돌면서 ‘유명한 것’을 유명하게 만들어주는 힘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책이나 인터넷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는 경험은 강렬하다. 그러나 모나리자를 봤을 때와 같이, 역사적으로 의의를 가지지만 감상이 실망스러운 경우도 있다. 이 글에는 적지 못한, 사진보다 실물이 못했던 무수한 실망과 실패의 사례들 또한 있다. 물론 필자의 주관적 감상에 불과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압도적으로 훌륭하지 못함에도 이들이 훌륭하다고 찬사 받는 데에는 실제 런던과 파리, 영국과 프랑스가 가졌던 힘 또한 분명 있을 것이다. 한국사람인 나조차도 유럽의 미술을 한국 미술보다 친숙하게 여기고 있고, 중동이나 아프리카의 예술은 거의 알지 못하는 것도 그 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찬사 받는 작품들이 죄다 훌륭하지도 않은데 강대국 빽으로 찬사 받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유럽의 예술을 훑어보다 보니 힘의 논리에 의해 배제 받아온, 지금까지 조명 받지 못했으나 충분히 가치 있는 예술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생겨났다. 아름다움의 기준 또한 모호하고 주관적이지만, 언젠가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예술들이 힘의 관계를 떠나 모두 충분히 주목을 받았으면 한다.  

런던과 파리에 다녀온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그림들이 빽빽하게 걸린 미술관의 벽, 밤 10시까지 훤한 거리들과 거리에 나와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분수에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드는 사람들이 다시 보고 싶다.  

창 밖으로 내다본 런던 거리의 풍경.
창 밖으로 내다본 런던 거리의 풍경.

 

 

남유연 칼럼니스트  

이력 :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재학 중, Pratt Institute Fine art - Painting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