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3) / 탄광에서 죽다-박헌오의 ‘은광 탐방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3) / 탄광에서 죽다-박헌오의 ‘은광 탐방기’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8.15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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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3) / 탄광에서 죽다-박헌오의 ‘은광 탐방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3) / 탄광에서 죽다-박헌오의 ‘은광 탐방기’
 
  은광 탐방기 

  박헌오


  오따시* 폐광에서 뼛조각을 보았다 
  등뼈에 매달린 박쥐들의 긴 침묵
  조센징** 칼 빛 메아리 
  동바리에 맺힌 눈물 

  밤새도록 부두에서 기다리다 떠나간 배
  철 천지 갈던 이빨 막장에 빠져 있고
  먼 파도 넘어지면서
  피맺힌 손 놓고 갔다

  은반지 귀에 대면 아비의 거친 숨소리
  고갯마루에 꽂아놓은 푯대는 종적 없고
  폐경 된 달이 떠오르는
  폐광에서 증언 듣다

  팔순의 해설사는 눈자위 촉촉하다
  은발의 구름밭에 걸려 있는 아리랑
  갱도는 악몽을 먹고
  비명을 토해낸다
  
  * 오따시:일본의 지방도시 이름으로 大田市.
  ** 조센징:일본인들이 조선인 강제징용자들을 낮춰 부르던 말. 

  -『세종시마루』제2호(심지, 2019)에서

 

  <해설>

  오늘이 광복절이라 일제의 만행을 다룬 시조를 골랐다. 아베 정권이 적반하장격으로 큰소리를 치고 있는데, 우리는 이런 때일수록 역사책을 펴보아야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징용과 징병의 역사를. 식량 공출과 인간 사냥의 역사를. 일본은 우리에게 아주 오랫동안, 끔찍한 짓을 엄청나게 저질렀는데 일본의 수상 아베는 사과는커녕 군사ㆍ경제ㆍ외교적으로 제재를 가하겠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일본의 오따시 폐광에 간 화자는 뼛조각을 보았다. 징용에 끌려간 조선인 노동자의 뼛조각이다. 다쳐도 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지 못했다.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쉬었다. 임금도 못 받았다. 팔순의 재일교포 해설자는 눈자위가 촉촉하다. 시인의 마음도 그랬으리라. 
  슈마리나이(朱鞠內) 인공호수 근처 쇠락한 절터에 세워진 ‘조릿대(笹) 묘표(墓標) 전시관’에 가서 확인하였다. 인공호수는 도쿄돔 30개가 들어갈 수 있는 엄청난 규모였는데 이 호수와 댐, 러시아를 잇는 메이우선 철도 건설에 3천 명이 넘는 조선인 강제징용자가 동원되었다. 1943년에 완공된 댐의 높이는 45.5m, 당시로는 동양 최대 규모였다. 조선인 젊은이들이 홋카이도에서도 아주 북쪽, 기온이 영하 35도까지 떨어지는 공사장에 끌려와 추위와 병과 굶주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눈밭에 쓰러져 죽었다. 연중 200일은 눈 속에서 지내야 하는 홋카이도 최북단에서 죽은 그들의 유골을 포함한 징용자 유골 115위가 2015년에야 한국으로 왔다. 그 기념식에도 가서 함께하였다. 오늘이 8ㆍ15 광복절이다. 그들의 죽음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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