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4) / 수인들과 함께-허전의 ‘담 밖에 갇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4) / 수인들과 함께-허전의 ‘담 밖에 갇히다’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8.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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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4) / 수인들과 함께-허전의 ‘담 밖에 갇히다’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4) / 수인들과 함께-허전의 ‘담 밖에 갇히다’
 

  담 밖에 갇히다

  허전


  덜컹
  교도관의 지문을 읽고서야 열리는
  육중한 철문 네 개

  격자 철창 출석부를 넘기면
  빗금으로 얼룩진 수인번호와 행적이
  낮달처럼 숨는다

  응급으로 허둥지둥 
  큰 산 하나 허물며 비유를 한다
  시란 나를 버리는 기술이다
  ―내가 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가 나를 만드는 것이다*

  나를 가두고 나서야 세상이 넓게 보인다
  라고 밑줄을 긋자
  수인들은 하나둘 자세를 바로잡으며
  어머니 품으로 돌아들 간다

  감방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시는
  참회의 눈물이며
  새 희망의 원천이다

  덜컹
  나는 오늘도
  네 개의 육중한 철문을 지나
  담 밖에 갇힌다. 

  * 괴테가 한 말. 

 

  <해설>

  이 시가 활자화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시인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이 세상에는 격리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죄를 지었기 때문에 ‘격리’의 벌을 받는 사람이 전국적으로 10만 명 가까이 된다. 교도소와 구치소와 소년원을 10년 넘게 드나들며 그들에게 시를 지도하고 있는 이가 바로 춘천의 허전 시인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 제3기 야간반을 수료했다. 그는 내가 가르친 학생이지만 베트남전 참전용사로 내 인생의 큰 선배요 나를 수인들 앞으로 이끈 장본인이기도 하다. 
  네 개의 철문을 통과해야지만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은 모두 수의(囚衣)를 입고 있다. 이름이 아닌 번호로 그들의 존재가 호명된다. 자작시를 낭송하면서 그들은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새 희망의 원천”에 몸을 담근다. 시를 씀으로써 그들은 비로소 영혼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표현의 자유와 상상력의 자유를 만끽하며 그들은 비둘기처럼 참새처럼 담 밖으로 날아간다. 정작 가르치는 시인 자신은 사유의 제한, 비유의 제약, 상상력의 고갈로 절망한다. 그들은 뜨거운 체험으로 시를 써 감동을 주는데 시인은 식어버린 감정으로 시를 쓰니 표현이 영 무디다. 아아, 2시간 강의를 마치고 바깥세상으로 나가지만 담 밖에 그만 갇히고 마는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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