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5) / 현장의 시-주강홍의 ‘타일 벽’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5) / 현장의 시-주강홍의 ‘타일 벽’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8.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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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5) / 현장의 시-주강홍의 ‘타일 벽’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5) / 현장의 시-주강홍의 ‘타일 벽’
 
  타일 벽

  주강홍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났다
  반듯한 네 귀들이 날카롭게 모진 눈인사를 나누고
  같은 방향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고무망치의 등 두들김에도
  끝내 흰 금을 긋고 서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붙박인 모서리 단단히 잡고 살아야 하는 세월
  화목이란 말은 그저 교과서에나 살아 있는 법
  모와 모가 만나고 선과 선이 바르게만 살아 있어
  어디 한구석 넘나들 수 있는 인정은 없었다
  이가 딱 맞다 

  유액을 바르고 잉걸불에 몸 담그면서
  결코 같지 않으면서 같아야 하는 서로의 얼굴이 건조하다 
  촉수가 낮은 형광등 불빛에 몸 낮추고
  시린 손등 어둠 언저리에 말아보지만
  쉬이 말리지 않는 것은 경계의 흰 선이 너무 선명하기 때문일까 

  낙수의 파형波形만 공간 가득하다
  물살이 흔들릴 때마다 욕실 속은 쏴아쏴아
  실금을 허무는 소리를 낸다
  욕실을 지배하는 건
  모서리들끼리 이가 모두 딱 맞는 타일 벽이 아니었다 
 
  ―『문학과 경계』(2003. 겨울)에서

 

  <해설>

  타일을 의인화한 이 시는 공사현장에서 펼쳐보는 인생론이다. 욕실 타일 벽 공사를 하면서 시인이 깨달은 것은 고무망치의 두들김에도 “흰 금을 긋고 서로의 경계를 늦추지 않는” 타일의 저항과 “붙박인 모서리 단단히 잡고 살아야 하는 세월”의 덧없음이다. 공사현장에서 타일 벽은 이가 딱 맞아야 하지만 우리 인생이란 것이 어디 그런가. 때로는 언밸런스고 때로는 뒤죽박죽이고 때로는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타일 벽이 그래서는 안 된다. 규칙과 규율, 관리와 감독의 세계가 반드시 거기 있어야 한다. 그래서 시는 제4연에 가서 역전을 시도한다. 이가 모두 딱 맞는 타일 벽에 반항하려고 욕실의 물살이 “쏴아쏴아/ 실금을 허무는 소리”를 낸다고. 세상 너무 모나게 살 필요가 없는 법이라고, 때로는 두루뭉수리하게, 때로는 비스듬하게 살아갈 필요도 있다고 시인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 무더위에도 타일 벽 공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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