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비평의 위기에 대해 짚어보는 제2회 포지션 콜로키엄, 시 문학과 비평의 위기 속에서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나?
시와 비평의 위기에 대해 짚어보는 제2회 포지션 콜로키엄, 시 문학과 비평의 위기 속에서 문학은 무엇을 해야 하나?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8.15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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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문학, 그중에서도 시와 비평에 위기가 닥쳤다는 말은 이제 오래된 잠언처럼 다가온다. 수많은 문학인들이 문예지나 세미나 등에서 시, 비평의 위기를 논한다. 시가 예전만큼 독자에게 큰 울림을 주지 못한다는 말, 비평이 주례사로 전락하여 형식적으로만 존재한다는 말이 더없이 익숙해졌다. 문학을 사랑하는 작가와 독자들은 여전히 존재하는데도 이러한 시와 비평에 위기가 닥친 까닭은 무엇일까.

​지난 6월 29일 마로니에 공원에 위치한 예술가의 집에서는 시와 비평에 찾아온 위기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짚어보고, 그 타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열렸다. 계간 포지션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후원하는 ‘제2회 포지션 콜로키엄 2019 : 문학, 시 비평 위기’가 백여 명 남짓한 문학인의 참여 속에서 진행됐다.

포지션 콜로키움이 진행 중이다. 사진 = 육준수 기자
포지션 콜로키움이 진행 중이다. 사진 = 육준수 기자

본 행사는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다양한 관점에서 시와 비평의 위기를 짚어보는 자리였다.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장은영 문학평론가는 ‘문예지의 혁신 이후 시 비평’을 주제로 이야기했으며 박형준 문학평론가가 대담을 통해 이야기를 보충했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기혁 문학평론가(시인)는 ‘최근 시 비평의 쟁점’을 주제로 발표했으며 신철규 시인이 대담을 맡았다. 마지막 발표는 이성혁 문학평론가로 ‘시 비평의 위기와 시문학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후 김영희 문학평론가의 대담이 이어졌다. 사회는 남승원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 비평의 최소화 혹은 비평의 전환

장은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장은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장은영 평론가는 현재의 문예지를 지루하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를 물어보면 ‘평론가’가 주로 꼽힌다면 그중 한 사람으로써 마음이 무겁다고 이야기했다. 장은영 평론가는 ‘문예지 혁신’이라는 화두는 “2015년 신경숙 표절 의혹과 그것을 무마하려던 대형 출판사 측의 대응”에서 촉발됐다고 짚었다.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와 비판은 ‘신경숙’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낸 “출판사의 출판자본 위에서 독점적으로 형성된 문단과 문학의 위계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때문에 문단에서는 출판자본과 엮여 비대해진 문예지를 비판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게 문예지에 대한 논의가 문학과 문예지의 공공성을 회복하자는 주장으로 이어졌고, 기존의 감수성과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물론 문단권력을 독점한 문예지에 대한 문제의식 2015년 처음 대두된 것은 아니다. 장은영 평론가는 1999년 ‘작가세계’ 좌담에서 정과리, 이광호, 오형엽, 박철화가 “매체가 출판자본의 요구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경우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 점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있었음에도 “상징자본을 획득한 주류 문예지가 동질적 취향과 감각을 지닌 문학 공동체로 군림”하고 이 소수의 문예지가 한국 문학의 맨 위에 배치되어 있는 게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문예지 혁신에 대한 담론이 불거지며 장은영 평론가는 ‘비평의 최소화’가 큰 특징으로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2015년 7월에는 비평 없는 문예지인 소설 전문지 ‘악스트’가 등장했다. 강동호 평론가는 저서 “지금, 문예지”에서 “한국 문학장을 역사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시스템을 유지해온 결정적 주체는 다름 아닌 평론가”이며 “한국문학 시스템의 붕괴는 평론가들이 담당해온 비평적 작업의 효용성이 이제 역사적으로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장은영 평론가는 강동호 평론가의 글이 “작가론, 작품론이 줄어들 것이고 서평 원고도 사라지며 현장 평론이라는 장르의 영역이 급격하게 축소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으며, 그 이후에 창간 및 리뉴얼된 문예지를 보면 그 전망이 대체로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창비는 문예지 ‘문학3’을, 문학과사회는 부록 형태의 ‘하이픈’을, 민음사는 문예지 ‘릿터’를 발행하며 문학과 문학 텍스트에 국한되지 않는 방식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에서는 ‘비평의 전환’이 이뤄지기도 했다. 본래 시 전문지에 있던 시에 대한 계간평, 월평이 없어지거나 다른 꼭지로 전환된 것이다. 현대시는 월평을 대신하여 신작시를 읽는 ‘이달의 리뷰’를 시작했으며, 계간지 ‘포지션’에서 무기명 시를 다섯 명의 필자가 읽는 ‘블라인드 시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장은영 평론가는 이러한 변화에 대해 “종합지에 비해 시 전문지는 비교적 다양한 비평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종합지와 달리 비평의 다양한 형태를 모색하며 조금씩 변화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장은영 평론가는 비평이 광범위한 텍스트를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개별 텍스트를 읽는 방향으로 구체화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시 전문지’가 “행위로서의 시 쓰기를 긍정하는 공동체”를 지향하게 될 듯하다고 전망했다. 문예지를 지속하는 진짜 동력은 “시를 쓰는 일이 각자의 삶을 세계와 연결 지으며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장 평론가는 “여전히 문예지의 위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라며 문예지들이 “더 개방적인 담론의 장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 ‘최근 시 비평의 쟁점’ 알기 위해선 ‘문학사의 가능성과 문학하는 삶의 가능성’ 고민해야

기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기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기혁 평론가는 ‘최근’ 시 비평의 쟁점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먼저 ‘최근’의 범주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시 비평에 대한 이야기는 문학사적 기억의 한 지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으며, 기존의 문학사를 경유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기혁 시은 ‘최근’이라 불릴만한 이슈로 ‘포스트 미래파’, ‘4.16’, ‘촛불혁명’, ‘문단 내 성폭력’, ‘친일 문학상’, ‘대필 파문’ 등을 짚으며, 이것이 2010년대의 사건들이지만 “오롯이 ‘2010년대의 삶’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비평이 당대의 문학사로 기입되는 것은 아니라고 기혁 시인은 이야기했다. 어떤 활동이 문학사로 기입되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요청과 응답이 맞물릴 때이며, 이는 “우리의 삶이 운동 중인 것”을 반증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혁 시인은 “문학사의 차원에서 볼 때 비평가 개인의 의견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운동하는 그의 삶 일부”이며 비평가가 읽어내는 작품은 “삶과 작품이 서로 의식하고 마찰하면서 만들어낸 열린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운동 중인 삶과 운동 중인 문학은 서로를 촉진하고, 제한하고, 반목”하며 후대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혁 시인은 비평이 “특정한 유행이나 담론이 아닌 그러한 불가능한 명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때문에 “기존의 문학사가 기술되는 과정에서 노출되는 선택과 배제의 문제, 그에 따른 문단 권력의 문제, 한정된 장르 및 문학장 외부의 문제”가 지적되더라도 이것이 문학사 기술 메커니즘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고 기혁 시인은 강조했다. 부정한 외부적 개입, 유행과 상품성을 의식한 담론 비판 등은 ‘올바르게 쓰이지 못한 문학사’의 문제이며 ‘올바르지 못한 문학사’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기혁 시인은 비평이 “독자를 재밌게 해주려면 시인도 유튜브를 하고 평론도 먹방하면서 하면 된다.”만 자신이 생각하는 비평의 역할은 “기존의 문학사를 해체하고 전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기존의 문학사를 해체하는 것이 새로운 독법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를 논의할 장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고 기혁 평론가는 한탄했다.

​기혁 평론가는 현재를 ‘합묵증적인 시대’로 진단하며 이 시대의 비평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믿음을 주고 있는가?”를 물었다. 기혁 평론가는 “너무 손쉽게 해체와 재구성을 말할 때 우리는 실패를 예감하고 점점 더 할 말을 아끼게 된다.”만 “그럼으로써 지연되는 실패라면 그것은 이미 죽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비평이 실패를 두려워할수록 비평의 허점은 줄어들지만 텍스트는 “무관심만이 최대의 적수인 투명한 텍스트”로 전락한고 만다. 기혁 평론가는 “그곳에는 삶도 문학도 기거할 수 없다.”며 “비평의 실책이 아닌 실패를 피력하는 논쟁, 실패의 가능성으로 점철된 의견이 활기차게 제출될 때” 우리의 삶이 기댈 곳을 마련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 시 비평과 시 문학의 위기, 공통체를 구축하는 아방가르드를 지향하여 타파해야

이성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성혁 평론가. 사진 = 육준수 기자

이성혁 평론가는 과거 창작과비평 2017년 겨울호에 발표한 ‘위기 속의 비평과 시의 미학적 윤리’에서 “비평(criticism)의 어원이 위기(crisis)라고 하니, 비평가는 우선 위기를 예민하게 감지해야 하는 사람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성혁 평론가는 “언제나 문학은 위기에 처해있었고, 위기에 대한 예리한 자기인식이 문학을 관성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며 “비평가는 언제나 지금이 위기라고 비상벨을 울려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런 차원에서 이성혁 평론가가 생각하는 ‘위기’는 단순히 닥쳐온 위기 그 자체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성혁 평론가는 진정한 문제는 “감지되는 위기를 위기로 보지 않는다는 것, 위기에 대한 감수성이 무뎌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의 가족들은 ‘가대위(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를 구축하고 세월호 참사를 표면화하기 위해 애써왔다. 이성혁 평론가는 “희생자 가족들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맞아 거대한 정동적인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며 “그들은 참사 이전처럼 살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가 ‘교통사고’로 축소하고자 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끝없이 요구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국사회의 감추어진 문제가 집약되어 터진 사건”임을 밝혀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투쟁은 “그 자체가 시적이고 예술적”이라고 평가했다.

​조정환 평론가는 2015년 “예술인간의 탄생”에서 “가대위가 보여준 것은, 공식적으로 예술가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들이 예술가보다 더 예술가적인 사유와 미적 행동을 보여 주고 그것을 통해 전통적 예술작품보다 더 큰 예술적 감응을 불러일으킨 사례”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성혁 평론가는 이 말을 인용하여 “예술은 소위 예술작품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공인된 예술가만이 예술의 생산주체가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했다. “한국사회가 더 이상 이대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광범위하게 불러일으켰던 것”이 가대위가 지닌 시의 예술적 힘이었다는 것이다. 이성혁 평론가는 가대위가 “현실을 시화하는 예술적 행동”을 보여주었고 다중의 변화를 이끌었다며 “이 기간 동안 ‘가대위’는 아방가르드였다.”고 이야기했다. 예술적 행동의 가장 앞자리에 서서 사회적으로 시, 예술의 충만함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참사로부터 5년, 촛불혁명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선지 2년이 지난 현재. 이성혁 평론가는 “혁명 이후 현실,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떤 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선거 이후 혁명이 멈춰버린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성혁 평론가는 “촛불의 파도를 일으킨 사랑의 힘은 어딘가로 사라진 듯하다.”며 “그 대신 혐오의 정동이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빨갱이’를 혐오하는 태극기 부대와 일베를 넘어 일상에서 전개되고 있는 혐오 담론, 인종적 혐오를 바탕에 둔 난민 혐오가 점차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혁 평론가는 “이 상황을 우리는 팔짱 끼고 보고만 있지 않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지금 전염되고 있는 혐오를 묵인한다면, 또 다른 형태의 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했다.

​이성혁 평론가는 “시문학의 지성은 깊이 뿌리박고 있는 위기의 근원을 투시해야 하며, 이를 이미지화하여 정동적인 힘으로 전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하여 가대위가 그러했듯 “현재의 사회 체제가 강요하는 삶의 무기력과 혐오를 사랑의 힘으로 전복해나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공통체를 구축하는 아방가르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비평과 시문학이 현재의 위기를 위기로서 살면서 자신의 주체성을 생성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포지션 콜로키움에는 수많은 문학인이 참여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포지션 콜로키움에는 수많은 문학인이 참여했다. 사진 = 육준수 기자

이날 콜로키움은 전체 토의를 끝으로 마무리 되었으며 행사 이후에는 뒤풀이가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