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7) / 그때의 가난-윤동주의 ‘사과’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7) / 그때의 가난-윤동주의 ‘사과’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8.19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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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7) / 그때의 가난 - 윤동주의 ‘사과’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7) / 그때의 가난 - 윤동주의 ‘사과’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7) / 그때의 가난 - 윤동주의 ‘사과’

  사과

  윤동주

  붉은 사과 한 개를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넷이서
  껍질째로 송치까지
  다— 나눠먹었소.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에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7) / 그때의 가난 - 윤동주의 ‘사과’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27) / 그때의 가난 - 윤동주의 ‘사과’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송치’는 속고갱이의 사투리다. 윤동주의 동시 중에는 슬픈 게 참 많다. 시대는 궁핍이 극에 달했던 일제 강점기 때다. 네 식구가 사는 어느 집 상머리에 어느 날 사과가 등장하였다. 네 개도 아니다. 사과 한 개를 네 식구가 나눠 먹는데 껍질을 벗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송치까지 다 먹었다는 것이다. 사과를 1년에 겨우 몇 번 먹게 되는데, 너무나 귀한 과일이라 한 조각 남김없이 다 먹었다는 것이 시 내용의 전부다. 이 동시는 그 당시의 궁핍을 극명하게 알 수 있게 한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여행 취소운동이 들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일본에게 우리나라가 강점기 때 당했던 것 중 하나가 이와 같은 절대빈곤이었다. 내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일제 강점기 때의 ‘굶주림’에 대해 종종 말씀해 주셨다. 쌀은 다 공출해 가고, 만주산 콩깻묵을 배급해 주더라는 것이다. 소나무 껍질을 벗겨 넣고 밀기울로 멀건 죽을 쑤어 먹는데 돌아서면 배가 꺼졌다고 한다. 온 가족이 부황 든 얼굴로 봄바람을 맞이하면 겨울보다 더 무서운 보릿고개가 닥쳤다나. 이른 봄에는 정말 먹을 게 없어 쑥을 캐어 논흙에 섞어 쪄서 먹었다고 한다. 흙으로 빚은 떡! 윤동주는 사과 한 개를 온 가족이 송치까지 먹는 장면을 그림으로써 식민지의 가혹한 현실을 직시하였고, 동시를 쓰면서도 일제를 이렇게 은근슬쩍 비판했던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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