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35) / 사형수의 나날-정일남의 ‘형장의 이슬’
형장의 이슬
정일남
높은 담벼락 위에 가시철망이 설치되어 있다
저 안의 죄는 보이지 않고 하늘은 푸르다
감방 안쪽은 고요하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갈 때
곡비가 없었고 신의 배려도 끝났다
사형 당사자는 장기를 기증한 상태
검사의 인증신문이 끝나고 종교의식도 마쳤다
드디어 집행의 저승 청부업자가 와서
검은 천을 얼굴에 씌우고 밧줄을 목에 걸며
유언을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잘 가라는 말 한 마디
순간 마루가 꺼지며 천 길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환기통으로 보던 별은 사라지고
귀뚜라미 소리가 뚝 끊어졌다
생각하면 나도 무기징역을 사는 사람이다
내 죄는 누설되지 않았을 뿐
—『시와 소금』(2019. 가을호)

<해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에 사형수 23명을 형 집행한 이후 지금까지는 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니까 시의 내용이 1998년부터는 이 땅의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제1공화국 성립 이후 이 땅에서는 몇 년에 한 번씩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 내용은 제2연에 잘 나와 있다. 이런저런 예전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정말 11개의 행에 나와 있는 그대로 사형이 행해졌다.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들을 왜 엄청난 세금을 들여서 먹여 살리고 있느냐고 주장하는 사형집행 찬성 논자와 인간이 만든 법제도가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앗아갈 수 있느냐고 주장하는 반대 논자가 있다. 전자는 피해자의 인권을, 후자는 가해자의 인권을 중시한다. 시인은 제1연에서 교도소 담 안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는 담 밖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말하고 있다. 담 밖에서의 무기징역! 본인의 죄는 누설되지 않았을 뿐 무기 내지는 사형을 선고받아 마땅한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맞다, 사는 것 자체가 형벌이거늘.
1988년, 호송차량에서 탈주하여 서대문구의 한 민가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인 지강헌이 외쳐서 유명해진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지금까지도 교도소 안에서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10년 전이었다. 영등포교도소에 몇 달 동안 시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러 갔었는데 지강헌이 바로 그 교도소의 재소자였기에 생각이 많이 났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