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39) / 신문의 운명-김희동의 ‘신문을 보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39) / 신문의 운명-김희동의 ‘신문을 보며’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8.31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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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39) / 신문의 운명-김희동의 ‘신문을 보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39) / 신문의 운명-김희동의 ‘신문을 보며’

 

  신문을 보며

  김희동

 

  1
  날마다 활자들이 신발 끈을 묶는 지면
  부비트랩 하나 없는 무덤덤한 소문들
  무심한 구독자들의 냄비받침 제격이다

  2
  실직한 이웃 가장 밥상에 덮인 신문
  흑백의 구인란을 몇 번이나 훑었는지
  침 발라 오린 자국이 빠끔하니 뚫려 있다

  3
  빽빽한 깨알들이 무덕무덕 모인 광장
  가슴 깊이 와 닿는 고갱이는 어디 있나
  한 오리 메아리조차 들려오지 않는다

  —『빗살무늬에 관한 기억』(초록숲, 2019)

 

  <해설>

  신문의 영향력이 나날이 줄어드는 데 반해 유튜브의 영향력은 나날이 증대되고 있다. 신춘문예 출신이라고 지금도 어떤 신문을 구독하고 있지만 아침에 신문을 열독하는 날이 별로 없다. 스마트폰을 켜면 중요한 뉴스가 다 나와 있고 그 뉴스를 제공한 곳이 ‘조ㆍ중ㆍ동’인 경우가 많지 않다. 세 군데 신문사가 제공한 기사가 올라와 있어도 욕을 안 먹으면 다행이다. 이 시조는 오늘날 신문이 봉착한 운명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첫 번째 시조에서는 신문기사의 무덤덤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른바 특종이나 발굴 기사가 없어서 사람들은 이제 신문을 보지 않고 냄비받침 정도로나 쓰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조에서는 실직가장의 밥상을 덮고 있는 신문이 구인란 덕분에 한 귀퉁이가 필요한 존재가 되어 있다. <교차로> 같은 신문은 무가지임에도 광고가 잔뜩 실려 있는데 이는 그만큼 효과가 있다는 뜻일 터이다. 세 번째 시조는 감동을 주는 기사가 없는 이 세상의 삭막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문기사는 거의 다 사건ㆍ사고 소식이요 논조가 부정적이거나 비판조다. 그래서 신문을 안 본다는 사람도 많다. 신문이 사회의 공기(公器)였던 시절이 있었는데,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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