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문학학회에서 상록수의 작가 심훈, 독립운동가와 기자로서의 삶 조명해...
심훈문학학회에서 상록수의 작가 심훈, 독립운동가와 기자로서의 삶 조명해...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9.0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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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지현 기자] 지난 8월 15일 광복 74주년 경축식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심훈 선생의 시 ‘그날이 오면’을 인용하여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로 광복을 경축했다. 심훈 선생은 이렇듯 광복을 노래하고, 계몽 운동에 대한 소설 ‘상록수’를 쓴 민족주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심훈 선생은 보통 작가로 많이 알려졌으나 고등학생 신분으로 3.1 운동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렇기에 다양한 면모로 조명할 수 있다.  

지난 30일에 개최된 2019 심훈 문화제에서 열린 심훈문학학회 ‘심훈과 그의 시대’에서는 심훈의 생애와 작품을 통해 현시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되짚었다. 이번 학회는 (사)심훈선생기념사업회와 픽션과 논픽션학회에서 주최, 주관했다. 

기조 발제 중인 이경철 문학평론가 [사진 = 김지현 기자]
기조 발제 중인 이경철 문학평론가 [사진 = 김지현 기자]

이번 학회에서는 이경철 문학평론가이자 전 중앙일보 문화부장과 제1회 심훈학술상을 수상한 김종욱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기조연설을 맡았다. 이경철 문학평론가는 “전위의 투사요 심장의 파수병인 심훈의 필경”이라는 주제로 연설하였으며, 김종욱 교수는 “심훈의 기록, 텍스트와 출판”이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첫 번째 기조연설을 맡은 이경철 문학평론가는 1920-30년대 신문, 문단의 상황에서 심훈 선생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망했다. 심훈 선생은 35년의 짧은 삶을 필경으로만 살다간 사람으로, 시, 소설, 평론, 수필, 시나리오 등 전 방위로 문학 활동을 펼쳤다고 말했다.  

“고랑을 차고 용수는 썼을망정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에다가 보호 순사를 앉히고 거들먹리며 남산 밑에서 무학재 밑까지 내려긁는 맛이란 바로 개선문으로 들어가는 듯하였습니다.”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 일부, 심훈

이경철 문학평론가는 심훈 선생이 쓴 글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의 한 대목을 통해 심훈 선생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설명했다.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은 심훈 선생이 보통고등학교 4학년 생으로 3.1운동에 앞장서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수감된 상황에서 어머님께 쓴 편지이다. 심훈은 감옥에 갇혀서도 조국을 위해 투옥되었기에 ‘개선문으로 들어갔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어서 이경철 평론가는 1920-30년대 언론과 기자로서 심훈 선생을 조명했다. 3.1운동 이후에 일제는 문화정치에 따라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을 창간했는데, 그때 기자들은 기자를 직업이라기보다는 지사연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일제의 검열로 인해 정치나 사회 경제에 대해서 조선 총독부의 정책을 옳다, 그르다 쓸 수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 신문은 강성 기사를 못쓰고 지면을 확보하기 위해 문화면으로 채웠다고 한다. 그렇기에 많은 문인들은 다 신문 기자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심훈 선생도 기자가 되었다. 그러나 1925년 사회부기자 모임인 철필구락부가 주도한 동아일보 임금 인상 파업 때 경영진이 기자들을 대량해고하여 남은 기자들은 언론노동자로 전락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때 심훈 선생은 동아일보에서 나오게 된다. 이경철 평론가는 심훈 선생이 언론 생활을 철필처럼 했다고 평했다. 

이어서 이경철 평론가는 그 시대 시인으로서 심훈 선생에 관해 이야기했다. 1920년대 ‘창조’, ‘폐허’ 등 동인지를 창간하며 ‘동인지 문단시대’가 열린다. 이경철 평론가는 이때를 문학에 뜻을 같이하는 문학청년들이 동인지라는 잡지를 만들어 작품을 발표하며 자기들끼리 문단에 나오기 시작한 때라고 설명했다. 1930년대는 2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조선 프롤레타리아 동맹 즉 카프가 일제 탄압에 의해 없어지고, 해외 문학 외국 시 또는 이상처럼 초현실주의, 김영랑처럼 우리말을 조탁하는 시인이 나오는 시대였다.  

이경철 평론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심훈 선생이 어떠한 문단에 끼어들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심훈 선생의 시가 많이 평가받지 못한 것은 이렇게 문학사에서 빗겨나 있어서라고 봤다. 이어서 이경철 평론가는 심훈 선생의 ‘심훈시가집 제1집’ 머리말을 발표했다. 머리말에는 심훈 선생의 시 세계가 잘 나와 있다.  

“나는 쓰기 위해서 시를 써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시인이 되려는 생각도 해보지 아니하였습니다. 다만 닫다가 미칠 듯이 파도치는 정열에 마음이 부대끼면, 죄수가 손톱 끝으로 감방의 벽을 긁어 낙서하듯 한 것이, 그럭저럭 근 백수나 되기에, 한 곳에 묶어보다가 이 보잘 것 없는 시가집이 이러우진 것입니다.” 
-‘심훈시가집 제1집’ 머리말 일부, 심훈

심훈 선생의 시는 자기 가슴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으로, 시를 일부러 꾸미거나 예술처럼 꾸미려 하지 않았다. 자기 마음을 숨길 수 없어서 쓴 시가 심훈의 시라고 이경철 평론가가 말했다. 

이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심훈 선생의 시 ‘만가’에 대해서 이 평론가는 설명했다. ‘만가’는 1929년 11월 계명에 발표된 시다.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의 거리를/우리들은 동지의 관을 메고 나간다/만장도 명정도 세우지 못하고/수의조차 못 입힌 시체를 어깨에 얹고/엊그제 떠메어 내오던 옥문을 지나/철벅철벅 말없이 무학재를 넘는다//(중략)//동지들은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고개를 숙인 채 저벅저벅 걸어간다/친척도 애인도 따르는 이 없어도/저승길까지 지긋지긋 미행이 붙어서/조가도 부르지 못하는 산송장들은/관을 메고 철벅철벅 무학재를 넘는다” 
- ‘만가’일부, 심훈

이경철 평론가는 이 시가 광주민주화운동을 묘사했던 그 어떤 작품보다 더 선명하고 치열하다며, 이만큼 직설적으로 튀어나오는 저항의 언어가 심훈 선생의 시라고 말했다. 심훈 선생의 초창기 시는 서정적이고 중국 유학 시절 향수도 있지만, 이경철 평론가는 심훈 선생의 시 세계를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하듯 광복을 향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경철 평론가는 심훈 선생의 소설도 동일한 시각으로 봤다. 일제에 못 이겨 내려온 곳이 필경사라며, 그 당시 기자들은 연재소설을 썼어야하는데 일제 검열에 막혀 필경사에서 나름대로 붓을 갈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훈 선생의 문학관은 자기 독자적인 예술관을 내세우지 않으면서, 모든 대중들과 어울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평했다. 그런 면에서 이경철 평론가는 이날 있었던 심훈문학상 챌린지가 문학만의 문학이 아니라 우리 대중들과 어울리려는 것이 심훈의 문학관과 맞닿아있다고 봤다.  

심훈문학상 챌린지는 지난 1년간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 중에서 최고의 성취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은 예심 통과작 5편에 대해 100여명의 심사위원단이 현장투표를 하는 방식으로 수상작을 결정한다. 100명의 심사위원단은 작가와 평론가뿐만 아니라 언론인, 문학연구자, 문학교육자, 문학청년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독자들에 의해서 수상이 결정되는 것이다. 

2019 심훈 문학제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2019 심훈 문학제 현장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어서 심훈의 기사 정신과 문학관을 현시대에 어떻게 접목시킬지 이경철 평론가가 제시했다. 이 평론가는 1980년대 말만 하더라도 기자가 투사, 지사연했는데 90년대 들면서 신문사 자본의 물결에 흘러가고 있다며 언론 노동자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단적인 예로 공영 방송이 정권이 바뀜에 따라 논조가 바뀌는 것에 대해 말했다. 이경철 평론가는 현 시대의 기자의 양심, 줏대가 없는 것이 아쉽다며, 대중들을 상대하는 기자들은 공정하고 양심있고 줏대가 필요함을 심훈 선생이 지금 현시점에서 일깨워주고 있다며 연설을 마쳤다. 

이에 대해 조용호 세계일보 문학전문기자는 심훈 선생 시에 노동 노래도 있고, 노동과 노동자의 가치를 충분히 평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기자가 노동자로 전락했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과 함께 지금 시대의 공영 방송의 모습은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과정이자 진통이라고 생각한다며 이경철 평론가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날 학술발표 발표자로 나섰던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인이자 편집국장은 이경철 문학평론가와 조용호 기자의 의견에 대해 또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기자는 언론인이자 노동자로서 양쪽 균형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자는 기자이면서도 언론 노동자로, 이 둘간의 균형감각을 잃을 때 언론인으로서의 방향성이 흐트러진다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기조발제 중인 김종욱 서울대 교수 [사진 = 김지현 기자]

이어서 김종욱 교수가 “심훈의 기록, 텍스트와 출판”이라는 제목의 발표를 했다. 김종욱 교수는 심훈 선생에 대해 공적인 기록이 많으며, 일기에 담긴 사적인 기록, 회고록도 많이 남아있다며, 자료가 풍부한 작가라고 했다. 그런데 공적인 기록, 사적인 기록, 어긋나는 구석들이 있기에, 심훈 선생 관련 자료들에 대해서 거짓과 진실 논쟁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이러한 논쟁에 앞서 일제 강점기에 있던 검열을 고려해야 한다며, 사실을 확인하며 논쟁만 반복하기보다는 어긋나는 부분들에 대한 생산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것이 진실과 거짓인지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상황에 따른 맥락에서 심훈 선생의 말들을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욱 교수는 이날 심훈 선생의 민주주의적 사상에 대해 조명했다. 심훈 선생은 경성제일고 시절 3.1운동을 하다가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으며, 이 경험이 심훈 선생의 일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는데, 3.1운동에 대해서 민족주의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민주주의가 그 핵심이라고 말했다. 1910년 때부터 주권이 군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으며, 1919년 3.1운동이 국가의 주권이 군주제에서 민주제로 바뀌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는 것이다.  

심훈 선생이 은 민주주의자였냐는 질문에 민주주의는 단순하지 않기에 판단하기에는 복잡하지만, 심훈 선생이 그 당시 특권층이었으나, 3.1 운동으로 지식인으로서의 특권을 버리고 당진에 와서 농민들과 손을 잡았다며, 자기가 가진 특권을 내려놓는 방식들이 심훈 선생의 중요한 삶의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심훈 선생은 이회영, 이시영, 신채호, 박열, 아나키스트, 엄향섭 염온동 같은 민족주의자들, 이동녕, 박헌영, 여운형, 한설야, 홍명희와 같은 사회주의자을 가르지 않고 교류한 모습을 설명하며, 절대 사람을 편협하게 사귀지 않고 자기주장을 내세웠다고 했다.  

김종욱 교수는 민주주의 가치로 보면 당시 그 당시 군주제에서 벗어난 아나키즘, 민족주의, 사회주의도 같은 결에 있다고 봐야 한다며, 그런 면에서 심훈이라는 선각자를 다시 조명해야 한다며 기조연설을 마쳤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기존연설 후 학술발표 시간이 있었다. 김찬기 한경대학교 교수가 “민족주의, 보수적 자유주의, 이상주의 ‘직녀성’ 소고”를 발표했으며, 엄상희 연구원이 “심훈의 영화 텍스트에 재현된 식민 현실 – 영화소설 ‘탈춤’과 시나리오 ‘먼동이 틀 때’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이어서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이 “시각언어가 돋보이는 ‘상록수’의 명장면들”을 발표, 조선영 연구원이 “심훈 문학에 나타난 실제 인물 형상화 방법 고찰”을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박금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염인수 연구원, 조용호 세계일보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 황혜경 연구원이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