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훈의 문학 뿐 아니라 영화까지 살펴본 심훈문학학회 ‘심훈과 그의 시대’ 성료
심훈의 문학 뿐 아니라 영화까지 살펴본 심훈문학학회 ‘심훈과 그의 시대’ 성료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9.09.0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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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김지현 기자] 지난 30일에 개최된 2019 심훈 문화제에서 열린 심훈문학학회 ‘심훈과 그의 시대’가 열렸다. 이번 학회는 (사)심훈선생기념사업회와 픽션과 논픽션학회에서 주최, 주관했다. 이날 학술발표 시간에는 우리에게 ‘상록수’로 익숙한 작가 심훈 선생의 소설, 시, 영화를 살펴보며, 그의 다양한 예술가적 면모를 되짚어 보는 시간이었다. 

​이날 학술발표에서 김찬기 한경대학교 교수가 “민족주의, 보수적 자유주의, 이상주의 ‘직녀성’ 소고”를 발표했으며, 엄상희 연구원이 “심훈의 영화 텍스트에 재현된 식민 현실 – 영화소설 ‘탈춤’과 시나리오 ‘먼동이 틀 때’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이어서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이 “시각언어가 돋보이는 ‘상록수’의 명장면들”을 발표, 조선영 연구원이 “심훈 문학에 나타난 실제 인물 형상화 방법 고찰”을 발표했다.

​토론자로는 박금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염인수 연구원, 조용호 세계일보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한겨레 문학전문기자, 황혜경 연구원이 나섰다.

발표중인 김찬기 한경대 교수 [사진 = 김지현 기자]
발표중인 김찬기 한경대 교수 [사진 = 김지현 기자]

이날 김찬기 한경대 교수가 “민족주의, 보수적 자유주의, 이상주의 -‘직녀성’ 소고-”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발제를 했다. 김찬기 교수는 심훈 선생의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이라는 옥중 서신을 통해 심훈 선생의 민족주의적 모습을 설명했다.

“어머니! 풀 한 포기 없는 감옥 마당에 뙤약볕에 내리쪼이고 주황빛의 벽돌담은 화로 속처럼 달아오르고 방에는 똥통이 끓습니다. 밤이면 빈대, 벼룩이 다투어 가며 진물을 살살 뜯습니다. 그래서 한 달 동안이나 쪼그리고 앉은 채 날밤을 새웠습니다. 그렇게 생지옥 속에 있으면서도 괴로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누구의 눈초리에나 뉘우침과 슬픈 빛이 보이지 않고, 도리어 그 눈들은 샛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조금도 저를 위해 근심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머니보다 더 크신 어머니를 위하여 한 몸을 바치려는 영광스러운 이 땅의 사나이외다.”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심훈

김찬기 교수는 ‘더 크신 어머니’라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 표창을 통해 감옥이라는 가혹한 상황을 오히려 ‘더 크신 어머니’에 기대어 극복하려려고 했으며, ‘영광스러운 이 땅의 시나이’는 다름 아닌 영웅의 은유이며, ‘감옥’은 일본과의 투쟁의 프레임으로 포착했다고 봤다. 그렇기에 심훈 선생의 계몽의 이데올로기가 민족주의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김찬기 교수는 보수적 자유주의적 측면에서 심훈 선생의 작품을 조명하며, ‘직녀성’의 한 구절을 예시로 들었다.

“그 뒤 장발에게서는 편지가 오지 않고 ‘근대의 연애관’이니 ‘연애와 결혼’이니 하는 따위의 책이 뒤를 달아 왔다. 인제는 방향을 변경해서 연애학을 책으로 공부시켜 가며 실지로 시행해볼 계획인 모양이다. 봉희는 책 제목에 끌려서 그런 책을 읽어보면서도 연애와 결혼의 상대자로는 세철을 책상머리에다가 앉혀놓고 생각하는 것을 장발이가 꿈에나 알 리가 없다.”

-‘직녀성’일부, 심훈

김찬기 교수는 자유연애는 자유주의를 구성하는 대표적인 내용물 중 하나라고 봤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직녀성’의 위 내용은 심훈 문학의 자유주의적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장면의 하나라는 것이다.. 작중 인물 봉희는 세철을 만나기 전까지는 전형적인 전통적 가치 질서에 순종하는 여성 인물이었으나, 세철을 만난 이후 자유연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이르게 되며, “한데 뭉쳐 깃발을 앞세우고 용감히 나아가는 광경”을 상상하기도 하고, “새롭고 자유로운 세계”를 꿈꿀만큼 진전된 자유연애에의 길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이러한 봉희의 모습은 전통주의, 심지어 매우 강고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도 상충하지 않고 공존한다. 그런면에서 김찬기 교수는 심훈 선생이 전통적 가치 질서와 균형을 이루는 ‘자유’가 자유주의의 진정한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봤다.

​이어서 김찬기 교수는 심훈 선생의 이상주의에 대해서 설명했다. 심훈 선생의 문학안에는 ‘자유연애’ 이념이 있는데, ‘자유연애’ 이념은 기본적으로 이상주의와 결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훈 선생의 ‘직녀성’의 봉희의 자유연애로 나아가는 ‘사랑’의 실천 행위는 근대 연애관의 당위를 형성화 한 것이다.

“나는 사랑의사도외다/사랑은 비 뒤에 무지개처럼/사람의 이상을/무한히 끌어올리는/가장 아름다운 목표외다/사랑은 마치/물고기를 씩씩께하며/기이한 풀과 바위를/감추어 두며/크고 작은 배를 띄우는/깊이 모르는/바다와 같사외다//사랑하기 때문에/나는 싸우지 않으면/아니되겠사외다/사랑하기 때문에/나는 피를 뿜지 않으면/아니되겠나외다.”

-‘직녀성’ 중 일부, 심훈

김찬기 교수는 민족주의와 계몽주의가 사회 공학적 담론 지형 안에서 약화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등장한 ‘연애론’은 자유주의나 그 하부구조의 기초로 등장한 이상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포섭하고 있었다며, 이러한 사유가 ‘사랑’을 ‘사람의 이상’을 ‘무한히 끌어올리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봉희의 인물 형상에서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발표 중인 고려대 엄상희 연구원 [사진 = 김지현 기자]
발표 중인 고려대 엄상희 연구원 [사진 = 김지현 기자]

이어서 고려대 엄상희 연구원이 “심훈의 영화 텍스트에 재현된 식민 현실 – 영화소설 ‘탈춤’과 시나리오 ‘먼동이 틀 때’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이어 나갔다. 엄상희 연구원의 발제에 따르면 심훈 선생은 ‘상록수’를 영화화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 급작스럽게 병사했으며, 생존에 자신은 문필이 아닌 영화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으려 하였다고 고백한 바도 있다고 한다. 엄상희 연구원은 이날 심훈 선생이 영화라는 당시 낯설고 매혹적인 예술 장르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서사가 무엇이었을지 짚어봤다. 

​심훈 선생의 ‘탈춤’은 ‘탈춤’은 ‘조선인 연인이 일제의 앞잡이인 강자에 의해 억압받을 때, 방랑하는 구원자인 영웅이 폭력으로 물리치는 서사 구조’로, 그 내용의 측면에서는 ‘신파조의 틍속성’을 지닌 서사로 평가되어 인물 갈등의 박진감이 없다거나 ‘청순가련형 여성인물을 남성으로 전이시킨 멜로드라마’로 이해되는 등 전반적으로는 당대의 신문연재소설, 연쇄극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나 갈등구조를 답습해온 것으로 언급되었다고 엄상희 연구원은 발표했다. 

​이날 엄 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심훈 선생은 1926년 이후의 영화비평에서 영화가 ‘시각에 호소하는 동작의 묘사로부터 해방될 수 없는 장르로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해야 한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또 ‘검열로부터 자유로우면서, 대중의 절박한 관심을 끄는 문제의 하나로 성애문제나 부르주아의 생활 이면과 죄악을 폭로하는 영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고 주제의 범주를 구체화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탈춤’의 내용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어서 엄상희 연구원은 ‘먼동이 틀 때’에 대해서 발표했다. ‘먼동이 틀 때’의 주인공은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다 갑자기 들이닥친 형사들에 체포되어 10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이제 막 출소한 몸으로, 감옥에 있는 동안 가족을 잃고 집도 잃어버려 갈 곳이 없는 방랑자다. ‘먼동이 틀 때’는 그가 도시의 뒷골목을 배회하다 우연히 선술집에서 만난 가난한 연인을 도와주고 겁탈의 위험에 처한 여인을 구하는데 그는 뜻밖에도 재회를 소망하던 아내였으나 그는 다시 살인 누명을 쓰고 구금되는 결말의 이야기다. 

​엄 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이 작품과 관련하여 카프계 한설야의 계급 투쟁적 비판에 대한 반박 글에서 심훈 선생은 영화 검열의 문제, 열악한 자본의 문제 그리고 영화인들의 처참한 환경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카프계열의 평론가들의 혁명 사상을 민중에게 고취시킬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충고는 현실의 눈과 귀를 가린 허황된 공론이라고 통렬히 비판한다. 심훈 선생 역시 영화가 사회변혁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혹은 그래야 한다는 한설야 선생의 전제에 공감하지만, 영화는 소설과 전혀 다른 서사 방법을 지니고 있음을 강조했다. 

​이어서 엄상희 연구원은 심훈 선생이 ‘먼동이 틀 때’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주인공이 배회하는 경성의 뒷골목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빈곤과 무기력, 허세에 짓눌린 조선인의 얼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훈 선생은 이 작품이 조선의 현실을 향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충분히 못 했다는 괴로움을 고백했었으며, 급진적, 의지적 혁명가로서 그의 꿈을 영화로 펼치기에는 검열과 자본이라는 한계를 넘기 힘들었기에 1930년대 장편 소설로 현실 변혁의 꿈, 해방의 환상을 그리고자 시도했던 것이라고 봤다. 

발표 중인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 [사진 = 김지현 기자] 
발표 중인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 [사진 = 김지현 기자] 

세 번째 발제자로는 임순만 전 국민일보 편집국장이 나섰다. 임순만 전 편집국장은 “시각언어가 돋보이는 ‘상록수’의 명장면들”이라는 제목으로 상록수의 의미와 영화법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발표했다. 

​임순만 전 편집국장은 ‘상록수’는 리얼리즘에 미달하는 대중소설이라는 평을 받지만 영화적인 이미지 리얼리즘, 이미지 내러티브적인 구조를 보면 당대 소설로서는 대단히 독특한 장면들이 나오는게 사실이라고 말하며, ‘상록수’에서 네 부분의 명장면을 꼽았다.

​첫 번째 장면은 동혁과 영신의 바닷가 프로포즈 장면이다. 

“동혁이도 자신있게 다져묻는다. 그말에 영신의 입에서는 분명히 ”네!“하고 한 마디가 서슴치 않고 떨어졌다. 

동혁은 불시에 그 무엇이 마음속에 뿌듯하도록 꽉차는 것을 느꼈다. 그 만족감은 물에 불어오르는 해면처럼 또는 한정 없이 부풀어 오르는 고무풍선처럼 터질 듯 터질 듯하다. 

동혁은 벌떡 일어섰다. 팔짱을 팍 끼고 달빛에 뛰노는 바다를 바라다보고 섰노라니, 그 바다의 물결은 커다란 용광로 속에서 무쇠가 녹은 물이 부글부글 끓는 것 같아보인다. 바다 위가 아니라 바다 저의 가슴 한복판에서 용솟음치는 정열을 눈앞에 보는 듯하였다. 

한 십 분 동안이나 동혁은 머리를 푹 수그리고 영신의 눈앞에서 조약돌만 탁탁 걷어차면서 왔다 갔다 하였다.” 

- 상록수 중 일부, 심훈

임순만 전 편집국장은 이 장면이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처럼 동혁의 이미지와 동혁이 바라보는 바다의 이미지가 2중, 3중으로 보이며 언어 예술을 시각 이미지로 대체해 선명하게 묘사하는 것이 당대 다른 소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임 전 편집국장은 두 번째 명장면으로 ‘제3의 고향’중 예배당 수업 모습을 꼽았다. 이 장면에서는 아이들을 쫓아내는 모습과 쫓겨나지 않으려는 모습, 밖에서 쫓겨난 아이들이 있는데 안에서는 아이들이 풀죽어 있는 모습, 뽕나무 위에 올라간 아이들과 올라가지 못해 울상인 여자아이들의 모습들이 대치되어서 일제히 하나가 된다. 그리고 영신이 칠판에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일이든지 한다.”고 쓰는 모습을 임 전 편집국장은 뛰어난 영상적 연출이라고 평했다.

​임 전 편집국장이 꼽은 세 번째 명장면은 ‘불개미와 같이’ 중 한낭청집 회갑연 장면이다. 이 장면에는 2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있고 그 중 30여 명이 대사를 한다. 상당히 밀도가 높은 장면인데, 영화로 보자면 프레임 꼭대기에는 군수 면장, 주재소 주임들이 위치하고 프레임 맨 아래에는 얻어먹으러 온 사람이 있다. 이 장면의 후반부에는 영신이 데리고 온 아이들이 문간에 이르는데 대표적인 미장센을 보여주는 이 장면에는 줄타기 놀이를 하는 줄이 처져있어서 화면의 위, 아래를 가르고 있다. 임 전 편집국장은 이 장면이 상당히 영화적이라고 평했다. 이런 장치에 영신이 기부금을 재촉하러 회갑연에 들어오면서 갈등을 기폭 하는데 영신이 들어올 때 롱쇼트와 카메라 쇼트가 오가는데 전 편집국장은 이 장면이 박진감 넘치도록 묘사가 탁월한 장면이라고 이야기했다.

​네 번째 명장면은 농우회 회원들의 두레 장면이다. 청년들의 두레가 시작하면서 동네 사람들이 중모리 가락으로 시작되는 달구질 소리와 마을 사람들의 놀이가 중모리로 달리다가 자진모리로, 마침내는 휘모리를 몰아치는 광경이 선연하게 묘사돼 있다.

​임순만 전 편집국장은 상록수의 계몽주의적 내용은 전근대적 리얼리즘에 미흡하지만 이 소설의 명장면들은 현대소설에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이미지를 잘 치환해서 대중들의 호응력을 끌어내고 있기에 당대의 사람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봤다.

토론 중인 박금산 교수, 박해현 기자, 염인수 연구원, 조용호 기자, 최재봉 기자, 황혜경 연구원 [사진 = 김지현 기자]
토론 중인 박금산 교수, 박해현 기자, 염인수 연구원, 조용호 기자, 최재봉 기자, 황혜경 연구원 [사진 = 김지현 기자]

이에 대해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는 ‘상록수’가 계몽소설이기에 리얼리즘이 떨어진다고 평가가 되는거 같다며, 이념적 편향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했다. 

​임순만 전 편집국장은 ‘상록수’가 이미지 치환 능력, 영상 언어가 뛰어나지만, 내용의 상당 부분이 묘사가 아니라 설명이라는 점, 영웅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소설에서 요구하는 리얼리즘이 부족한 것 같다며, 농촌 계몽을 위해서 두 주인공이 시작했기 때문에 갈등 부분에서 리얼리즘적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네 번째 발제는 중앙대 조선영 연구원의 “심훈 문학에 나타난 실제 인물 형상화 방법 고찰”이었다. 심훈 선생의 문학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인물들과 관련된 작품들이 많다. ‘상록수’의 최영신은 계몽운동가 최용신 선생이 실제 주인공이며, 그의 시 ‘오오, 조선의 남아여!’는 마라토너 손기정옹이 그 주인공이다. 

​조선영 연구원은 심훈 선생이 어떻게 실제 인물들을 형상화했는지 고찰했다. 조선영 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심훈 선생은 어떠한 사상보다 체험이나 주변 인물에 소재를 찾아서 썼다. 대상 인물을 보면 친분 관계, 독립운동 민중 운동가들이 많으며, 그들을 영웅의 인물 형상으로 많이 그린다. 그러나 여기에서 영웅은 세상의 불합리한 것들을 이겨내는 통상의 영웅이 아니다. 훌륭한 인물이지만 시대적 불운에 의해서 좌절하는 불구의 모습으로 많이 나타난다. 좌절한 영웅들을 안타까워하는 시의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이게 자네의 얼굴인가?/여보게 박 군 이게 정말 자네의 얼굴인가?//알코올병에 담가놓은 죽은 사람의 얼굴처럼/마르다 못해 해면 같이 부풀어 오른 두 뺨/두개골이 드러나도록 바싹 말라버린 머리털/아아 이것이 과연 자네의 얼굴 이던가?//(중략)//이제 또 한 사람의 박은/음습한 비바람이 스며드는 상해의 깊은 밤/어느 지하실에서 함께 주먹을 부르쥐든 이 박 군은/눈을 뜬 채로 등골을 뽑히고 나서/산송장이 되어 옥문을 나섰구나”

-‘박군의 얼굴’ 일부, 심훈

조 연구원은 이 시에서 ‘상해의 깊은 밤’이란 구절을 통해 이시의 박 군은 심훈 선생과 상해에서 교류했던 공산주의자 박헌영임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다. 박헌영은 1925년 조선 공산당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1927년 11월 광인행세를 하여 병보석으로 출감하였는데, 창작 시기와 내용으로 보아 이시는 이때 박헌영의 망가진 몰골을 보고 쓴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심훈 선생은 ‘R씨의 초상’에서 여운형 선생에 대한 믿음과 극복의 의지를 그렸으며, ‘선생님 생각’에서는 벽초 홍명희 선생이 투옥되었을 때 애틋한 마음을 담아 작품을 썼다.

​조선영 연구원은 심훈 선생의 소설에서는 장르의 특성상 실제 인물 모델로 특정한 성격을 부각해서 소설 속 인물로 그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작중 실제 인물이 누구인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조 연구원은 시와 소설에서 심훈 선생이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며, 개인적 감정을 토로하는 시에서는 좌절된 영웅의 모습을 보여 비통함을 더했고, 소설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영웅상을 각기 그려 보이면서 서로 연대하여 현실 극복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이처럼 실제 인물을 활용해 작중인물로 형상화함으로써 한 개인의 차원을 넘어 시대의 영웅으로 그 서사적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아픔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한데서 심훈의 실제 인물 형상화의 방법적 의의를 찾은 것이다. 

​이밖에도 이근배 시인의 심훈 선생 문학 100년을 톺아보는 “민족혼의 활화산, ‘그날이 오면’ 그리고 ‘상록수’” 발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