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140) / 고마워 전동차야-신현배의 ‘밤 전동차’
밤 전동차
신현배
지하철 전동차는
놓치는 법이 없네.
기다란 승강장에
한두 명 서 있어도
문들을
활짝, 일제히 열고
반갑게 맞이하네.
어둠이 발 뻗고 누운
땅속 길을 열면서
지친 사람들을
자장자장 재우고
어느새
선로를 바꿔
꿈나라로 들어서네.
—『햇빛 잘잘 끓는 날』(도서출판 아동문학평론, 2011)
<해설>
때때로 문명의 이기에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집안의 누가 갑자기 크게 아팠을 때 스마트폰으로 119를 눌러 통화를 하니 거짓말처럼 구급차량이 달려와서 병원으로 옮겨 주어 식구를 살려냈다. 지금도 운전을 할 줄 모르는 나는 전동차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특히 막차를 탔을 때는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며 미소를 짓는다.
이 동시는 어린이를 독자로 삼긴 했지만 아이의 심정으로 쓴 작품은 아닌 것 같다. “어둠이 발 뻗고 누운/ 땅속 길을 열면서// 지친 사람들을/ 자장자장 재우고” 같은 구절은 성인 시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무척 세련된 감각적인 표현이다. 동시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쓴 동시로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려고 쓴 것이라면 동시로 성립하는 것이 가능하다. 밤의 전동차에 생명을 불어넣은 의인화 기법이 참신하고, 특히 전동차도 밤에는 잔다는 마지막 연은 어린이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