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1) / 고니가 운다 - 정홍순의 ‘고니에게’
고니에게
정홍순
청소리 송치봉에서 흘러나온 동천이
옥천과 동무삼아 구부렁구부렁
바다로 가다
해룡천 배수장 앞에서 둘이가
삼산 나무들과 바윗등에 피었던
겨우살이를 풀고 있을 때 너는
홀로 있었다
낮달만 하게 돋은 쑥잎
네가 다칠까봐 연한 모가지에 차마
칼을 대지 못하고
손톱으로 뜯어 물든 파란 쑥물이
네 눈물인가 싶어
씻고 헹구어도 지워지지 않았다
손끝으로 너의 모습 집어 보는 것
네가 두었던 거리만큼
파랗게 봄이 오고 있었다
우리는 떠나지 못한다
머물러 아픈 것이 우리의 상처이기에
너는 일순간 다 놓고 우리는
끓는 봄 입술에 적시며
네가 두고 간 사랑을 달랠 것이다
-『갈대는 바다를 품고 산다』(문학의전당, 2019)

<해설>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이 시는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 시인데, 내가 아는 고니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인상을 받고선 내심 깜짝 놀랐다. 우선 내가 아는 고니 이야기부터 먼저 한다.
중앙대 안성캠퍼스에는 연못이 하나 있는데 7, 8년 전부터 고니 한 쌍이 의좋게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5년 전쯤에 고니 한 마리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사라짐의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남은 한 마리는 물에도 안 들어가고 철망 앞 한 지점에서만 매일 꽥꽥 울고 있다. 안 우는 날이 하루도 없다. 한 달에 한 번쯤 고니를 보러 가는데 고니는 말없이(?) 사라진 짝을 그리워하는지 계속 울고만 있다. 어언 5년이 넘은 것 같다.
2500년 전 중국인들의 눈물이 흥건히 젖어 있는 시가집이 『시경』이다. 어쩜 그리 이별의 노래가 많은지. 정홍순 시인은 같이 있던 고니가 홀로 있게 된 이후의 ‘눈물’과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는/ 끓는 봄 입술에 적시며/ 네가 두고 간 사랑을 달랠 것이다”라고 마무리 지었다. 내가 써야 할 시를 이 연못에 안 와본 시인이 썼다. “머물러 아픈 것이 우리의 상처”라니, 이럴 수가! 고니한테 가보면 계속, 종일토록 울기만 해 나도 눈물이 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