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 미니픽션] 어쩌면 우리는-양진채
[문화다 미니픽션] 어쩌면 우리는-양진채
  • 양진채 소설가
  • 승인 2019.09.09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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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자고 그녀는 40년 전 얘기를 하면서 가늘게 떨었을까. 마치 어제 일이었던 것처럼, 몸서리치듯 똥을 발음하던 그녀의 오므린 입술. 입술 주변에 세로 줄로 모여지던 주름, 짧은 순간 일그러지던 눈, 그러나 빛나던 눈빛. 그렇게 똥이 내게로 왔다. 꽃도 아니고, 별도 아니고, 시詩도 아닌 똥이. 그 바람에 지금 내 머릿속은 온통 똥으로 가득했다. 얘기를 들을 때는 몰랐는데 후폭풍이 몰려왔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내내 길은 점점 좁아지고 벽은 점점 높아져 판넬 사이에 끼어 납작하게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녀는 스무 살 언저리에 방직공장에서 일했다. 노동조합을 민주화하고 여성위원장을 선출하려고 할 때 회사 측 남자 관리자들은 이제 막 스물이 되거나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여공들에게 똥물을 뿌렸다. 그들은 푸세식 변소에서 바가지에 똥물을 퍼왔고, 여공들에게 사정없이 뿌렸다. 여공들은 울었다. 똥이 묻은 옷을 입고, 똥냄새 나는 한 가운데서 머리채를 잡히며, 끌려가며, 맞아가며 울었다. 

   스무 살, 여공에게 뿌려진 똥물은 치욕이었다. 그런 사회를 우리는 통과했다. 그때의 스무 살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녀는 너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집안을 들어설 때부터 나던 이상한 냄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이래봬도 각하를 만난 사람이야, 알아?”

   그녀는 말투뿐만이 아니라 얼굴도 변해 있었다. 똑같은 사람인데 인상이 이렇게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녀는 무엇인지 모를 것에 화가 났고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똥이 풍기는 냄새처럼 어딘가 낮고 지독했다. 그녀가 각하를 만났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녀의 기억은 뒷걸음질 쳐 열흘 만에 열두 살에 가 닿아 있었다. 

   어린 그녀는 머리를 감고 있었다. 동네의 자랑이던 제철공장 굴뚝에서는 쉬지 않고 시커먼 연기를 내뿜었다. 이 동네에서는 완전한 흰 옷이 존재하기 어려웠다. 시커먼 연기 속에 섞여 있는 미세한 철가루가 공기 중에 섞여 날렸다. 널어놓은 흰 빨래가 말랐을 즈음에는 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마당에서 머리를 감고 있을 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반쯤 열려 있던 대문을 밀고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어섰다. 그녀는 머리를 감다말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입에서 누구세요, 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 말이 나오지 않은 걸 두고두고 다행이라고 했다.

 양복을 걸쳐 입은 그들 중 한 사람 얼굴이 낯익었다. 살집이라고는 없는 햇빛에 탄 듯한 구리빛 피부. 

   이 동네는 왜 이런가?

   각하, 이 동네는 전쟁통에 피란민들이 내려와 언덕배기에 무허가로 집을 짓….

   여긴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야? 

   그때야 그녀는 난데없이 나타난 일행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비눗물이 뚝뚝 떨어져 바랜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진즉에 고개를 숙였고, 그들이 들어올 때처럼 어떠한 양해도 구하지 않고 기척도 없이 가버릴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했다. 까닭 없이 무서웠다. 그날 저녁 산업단지 시찰로 이 동네를 다녀간 각하가 뉴스에 나왔다. 오래전 일이었다. 그녀가 건강할 때 그 얘기를 사석에서 농담처럼 들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대통령과 마주친 일화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녀는 믿을 수 없는 나이에 치매에 걸렸고, 급속도로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러나 각하를 만났던 기억은 정확하게 해냈다. 똥물을 맞아야 했던 기억도 마찬가지였다. 똥은 배설하는 것이지 묻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그녀는 벽에 똥칠을 했다. 들어올 때 집안에서 나던 냄새의 정체였다. 더 상태가 나빠지기 전에 기록으로 남기려했던 그녀의 삶은 각하와 똥에 갇혀 더 이상 진척이 어려웠다.    

   그녀의 집을 나서는데 K가 오랜만에 SNS로 안부를 물어왔다. 하필 K라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만나고 나오던 길이어서 그랬는지 처음 그를 만나던 날이 떠올랐다. K는 똥을 똥이라 부르지 않고 ‘덩’ 하고 불렀다. 된소리로 발음되는 경망스러움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그 실체에 대한 느낌을 최대한 주지 않으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덩’이라고 했다. 무슨 학술대회 뒤풀이자리였던 것 같은데 엉뚱하게도 똥 얘기가 나왔다. K는 군 복무시절의 똥 얘기를 했다. 

   K는 80년대 초에 군 복무를 했다. 그가 있던 부대의 한 병사가 한밤에 갑자기 설사가 나서 급히 화장실을 가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구석진 곳에 실례를 해놨는데 하필 그 자리가 관사 바로 앞이었다. 아침에 이 사실을 안 대장은 병들을 소집했고, 범인이 나서지 않자 관사의 똥을 치우게 했는데 그 방법이 한사람씩 손가락으로 떠먹게 하는 방법이었다. 차례가 다가오자 K는 머리를 굴려 중지로 똥을 뜨고 입에는 검지를 넣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 와중에 다행스럽게도 설사였으니 똥이 묽어 손가락에 많이 묻지는 않았다. K는 중지로 똥을 떴고 재빨리 검지를 입으로 가져가려 했다. K는 순간 머리끝이 쭈뼛거리며 서는 걸 느꼈다. 하필이면 똥을 뜬 중지에 소화되다 만 콩나물이 걸린 거였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그 자리의 누군가가 기어이 확인하겠다는 듯 물었다.

   어떡하긴 뭘 어떡합니까. 콩나물이 걸려나온 덩을 무슨 수로 감춥니까. 

   야유인지 동정인지 모를 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적당히 취해 술집 문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데 K가 나왔다. 

   담배 있으면 고마 한 대 빌립시다. 

   주머니의 담배를 꺼내 내밀고 불을 붙여 주고, 담배를 피우는 동안 나는 K의 손가락을 유심히 쳐다보게 되었다. 똥 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K의 손가락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새끼손가락이 다른 손가락보다 벌어졌고 위로 약간 올라가 있었다. 다른 손가락들도 자연스럽게 한 덩어리가 아니라 각각의 역할이 있는 것 마냥 벌어져 있었다. 

   K가 눈길을 의식했는지 의도적으로 손을 오므렸다. 

   좀 이상하죠?

   고개를 끄덕였다. 

   똥 말이에요. 꼭 덩이라고 해야 해요? 그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홍길동도 아니고, 똥을 똥이라 부르지 못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그런가요?

   오므렸던 손가락이 어느새 제각각으로 뻗어 있었다. 

   그 병사, K죠?

  K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담배, 맛있네요.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은 보이지 않았고, 대지는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듯 푹 젖어 있었다. 담배가 맛있는 날이 있다. 바로 오늘 같은 날이었다. 술이 적당히 취하고, 대지는 잔뜩 습해서 담배연기가 낮게 가라앉으며 냄새를 풍기는 날.

  맛있을 때 한 대 더 피우고 들어갑시다. 

   K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럼 고마 한 대 더 실례, 하며 웃었다. K와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사이가 됐다. 똥을 덩이라 했던 그는 지금 미국의 한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말처럼 요즘은 뭘 연구해? 하고 물었더니 덩, 했다. 

  덩? 

  잊었어? 홍길동. 

  점점 더 모를 소리라고 할 뻔했는데 퍼뜩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아직도 똥을 덩이라고 부르는 거야? 

  정확하게 부르지. dung! 

  뭐야? 

  큰 동물의 똥을 dung이라고 해. 그러니까 소똥은 cow dung. 똥파리는 뭔 줄 알아? dung fly. 난 그 옛날부터 덩과 함께 할 운명이었나 봐. 알려주지도 않은 이름을 정확하게 부르고 있었던 거보면. 

   내키지는 않았지만 추켜세운 엄지가 크게 확대된 대단하다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아직도 똥에서 못 벗어난 거네.

  못 벗어난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들어간 거지. 나는 평생 덩하고 살 운명인가 봐.

  평생 똥하고 안 사는 사람도 있냐? 

   그가 일류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연구하는 일은 포유류의 배변시간이었다. 고작 동물들의 똥 누는 시간을 분석하는 것이라니. 그는 내 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말했다. 동물의 배변시간 연구를 통해 장내 점액의 역할을 연구하고 있다고. 점액에 따른 생리변화를 관찰하면 변비나 감염성 대장염 같은 위장병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다고.

  그래, 거기까지 가서 쓸데없는 연구를 할 리 없지. 고생해.

   그렇게 슬슬 문자 안부를 끝내려 했다. 

   네 덩은 굵고 길지?

  그 역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양진채
소설가.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스카 라인>으로 등단. 소설집 『푸른 유리 심장』 『검은 설탕의 시간』, 장편소설 『변사 기담』, 스마트소설집 『달로 간 자전거』 등이 있다. 이메일 hanajaya@hanmail.net

 

 

 

※ 위 미니픽션은 웹진 "문화 다"와 공동으로 게시한 작품입니다.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intre_etc&ps_boid=166&ps_mode=mod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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