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4) / 천 년의 사랑-서상만의 ‘사랑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4) / 천 년의 사랑-서상만의 ‘사랑아’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9.0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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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4) / 천 년의 사랑-서상만의 ‘사랑아’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4) / 천 년의 사랑-서상만의 ‘사랑아’

  사랑아 
  ―막고굴 45호 보살상에

  서상만 


  저 미소 천 년도 더 아꼈다
  하룻밤 사랑에 울던 사람아
  서역이 따로 있나
  사랑도 헤매지 말고
  뚜벅뚜벅
  낙타 가는 길을 따라가야
  신기루를 본다더라

  천 년 후 나는 어디에 있을까
  사막도 혹 서리 치는 날
  내 죽음길 꽃가마에
  저 미소 인질로 모셨으면
  아, 나는 천 년까지 따라가
  눈물 흘려도 내가 또 속을
  사랑 같은 사랑아

  -『빗방울의 노래』(책만드는집, 2019)

 

  <해설>

  천 년을 아낀 미소라고 한 이유가 있다. 중국의 서북쪽 둔황지방에 막고굴이 조성되기 시작한 해는 16국 시대 전진(前秦)의 건원(建元) 2년(366)이다. 이때부터 위진남북조, 수, 당, 오대, 서하, 원나라에 이르기까지, 즉 4세기 중반부터 13세기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나라의 측천무후 시기에 이미 천 개를 넘어 천불동(千佛洞)이라고 불렸다. 진시황릉 근처에서 발견된 병마용갱과 함께 불가사의한 조형물이다. 이 일대가 건조지대가 아니었다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1,100여 년 동안 자연과 사람에 의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492개의 석굴, 4만5,000㎡에 달하는 벽화, 2,400여 점의 불상과 소조상이 남아 있다. 막고굴이 발견된 것은 1900년이었다. 청나라 광시 26년, 이 지역의 관리 왕원록이라는 자가 모래가 흘러내려 파보니까 막고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 옆에 또 막고굴이, 그 옆에 또, 또……. 이 소식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자 영국ㆍ독일ㆍ프랑스ㆍ러시아ㆍ미국ㆍ일본에서 탐험가들을 급파, 진귀한 보물을 본국으로 밀반출했다. 프랑스인 펠리오는 왕원록에게 헐값을 주고 샀는데 엄청난 양이었다. 경전 1,500여 권을 스물네 상자에, 회화와 직물류를 다섯 상자에 넣어 본국으로 보냈다. 그중 하나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다. 
  막고굴 45호는 당나라 때 조성된 것으로, 칠존상과 색채보살상이 있다. 가섭과 천왕상 사이에 있는 보살상의 미소는 정말 신비하다. 그 미소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에서 나오는 것일 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보살의 고개가 약간 기울어져 있고 허리도 약간 뒤틀려 있다. 배꼽이 보이는 아랫배와 젖꼭지와 긴 팔이 관능적이다. 시인은 신이 아니다. 부처도 아니다. 인간이기에 하룻밤 사랑에 울고 웃는다. 그녀의 미소에 연연하다가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이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8세기경에 장인(匠人)들은 그 사막지대에 굴을 파고 들어가 불상을 만들고 미소를 만들고 천 년의 시간을 만들었다. 부처도 위대했지만 그 시절의 장인들도 위대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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