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5) / 마지막 술잔-김익두의 ‘지상에 남은 술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5) / 마지막 술잔-김익두의 ‘지상에 남은 술잔’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9.06 0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5) / 마지막 술잔-김익두의 ‘지상에 남은 술잔’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5) / 마지막 술잔-김익두의 ‘지상에 남은 술잔’ 

  지상에 남은 술잔

  김익두

 
  첫눈이 올 거라 전화를 했드니, 
  그대는 일이 있어 먼저 
  제주로 간다고.

  혼자, 빈 연구소 문을 나올 때 
  첫눈이 나렸다. 

  공중전화로 가 “첫눈이 온다!” 하니, 
  쓸데없는 소리 허지 말구
  지갑이나 잘
  챙기라 한다.

  하염없이 나리는 눈발 어쩌지 못해,
  따개 성님 함께 아점 막걸리, 

  저 덧없는 함박눈 눈발로 허여, 
  밥은 한 술도 뜨질 못허구 
  연해연신 들리우는 
  지상에 남은 
  술잔,

  저승 바닥을 마지막 ‘쨍그렁’ 울리기 전
  내가 다 비우고
  떠나야 할,

  지상에 아직 남은
  이 쓸쓸헌 
  사랑들

  —『지상에 남은 술잔』(천년의시작,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5) / 마지막 술잔-김익두의 ‘지상에 남은 술잔’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첫눈이, 그것도 함박눈이 오면 어느 누군들 마음이 싱숭생숭해지지 않으랴만, 이 시의 화자는 거의 정신을 잃는다. 아니, 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을 마셔야 한다. 처음 연락을 한 상대는 제주도로 급히 가니 술을 같이 못 마시겠다고 한다. 두 번째 연락을 한 이는 화자의 술버릇을 잘 알고 있기에 “쓸데없는 소리 허지 말구/ 지갑이나 잘/ 챙기라”고 한다. 세 번째 전화를 한 ‘따개 성님’은 병따개 없이도 술을 딸 수 있는 분일 테니 마침 잘 걸려들었다. 아점 막걸리, 밥도 들지 않고 마시는 막걸리니 얼마나 빨리 취할까. 게다가 연해연신이라니! 화자가 다 비우고 떠나야 할 지상에 남은 술잔, 그 술을 다 마시면 지상을 뜰 것이다. 아직 덜 마셨으니 오늘은 마시는 거다. 눈이 오지 않는가. 그것도 함박눈이. 
  김익두 시인은 정읍에서 성장한 분이다. 논산 강경에서 태어난 박용래 시인이 생각난다. 이문구가 쓴 박용래 약전을 보면 경원선 기차를 타고 가다가 본 두만강의 눈발을 못 잊어 아침 9시 반부터 울기 시작해 밤 9시 반까지 울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익두 시인은 취해도 엉엉 우는 분은 아니리라.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