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주간 2019 작가스테이지,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작가와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작가의 함부로 규정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
문학주간 2019 작가스테이지,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작가와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작가의 함부로 규정 불가능한 것들에 대해
  • 김보관 기자
  • 승인 2019.09.07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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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규정하고 규정당하는 사회에서의 문학과 작가
박상영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현대 사회에는 무수한 이름과 규정들이 있다. 90년대생과 80년대생, 남성과 여성, 첫째와 둘째, 수도권과 지방, 흔히 나뉘는 수많은 규정은 쉽게 일반화되어 때로 폭력으로 작용하곤 한다. 이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규정에 대해 작가들과 함께 논의해보는 자리가 열렸다.

올여름 “대도시의 사랑법”을 출간한 박상영 작가와 “눈과 사람과 눈사람”을 출간한 임솔아 작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행사는 문학주간 2019 작가스테이지 중 하나로, 사회는 박혜진 평론가가 맡아주었다. 세 사람은 ‘작가’라는 존재를 비롯해 작품, 장르, 사랑 등 다양한 부분에서의 규정과 그로 인한 실제 경험담 등에 관해 말을 주고받았다.

박상영 작가와 임솔아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규정’에 대한 질문에 박상영 소설가는 “문학은 한 단어로 쉽게 규정할 수 없는 상태나 상황을 풀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긴 텍스트로 무언가 규정하려는 노력임과 동시에 특정 키워드로부터 도망가려고 하는 양면적 감정 동력을 가진 매체인 듯하다. 두 가지 모두를 의미하는 게 문학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로 운을 뗐다. 박혜진 평론가는 “작가는 항상 무언가를 규정하는 동시에 규정을 당하기도 하는 존재로,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며 공감을 표했다.

임솔아 작가는 “내가 사람을 부를 때 가장 많이 쓰는 호칭은 ‘저...’나 ‘저기요...’다. 언니, 오빠, 선배, 선생님 같은 호칭이 입에 잘 붙지 않는다. 저기요를 대신할 수 있는 호칭이 발명되면 좋겠다. 사회적 의미를 담은 호칭 대신 이름, 별명, 애칭 따위로 부르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어 “어떤 규정들은 개인의 발화가 아니라 역사성의 권위를 등에 업고 있다.”며 이런 관습을 해체하는 일상 속 소소한 징후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규정은 대체로 편의를 제공한다. 개중에는 관습적으로 내려오는 것들도 적지 않다. 몇 가지 편의성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규정화는 각자가 가진 고유한 개별성과는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작가가 쓰는 것이 작가 자신을 규정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박상영 작가의 경우 퀴어문학을 대표하게 된다든지, 작품 안 특정 캐릭터를 작가 자신으로 해석 또는 오독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박상영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박상영 작가는 2016년 9월 데뷔했을 무렵에는 헤테로 섹슈얼의 서사를 썼다. 평단이나 독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불리게 될지 배경지식이 없었을 뿐 아니라 ‘퀴어작가’로서 대표성을 띠겠다는 생각도 없었다고 한다. 단지 ‘내가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를 다양한 방식과 다양한 캐릭터를 통해 보여주겠다.’는 마음이 뚜렷했다. 이후로 작법이나 작품이 전혀 다른 김봉곤 작가와 이른바 ‘퀴어작가’와 같은 말들로 묶이기 시작했다. 박상영은 “나도 모르는 사이 퀴어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군이 되었다.”라며 웃어 보였다.

이렇듯 타자가 규정하는 자신의 모습이 늘 당황스럽거나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만은 아니었다. 한 평론가는 해설문에 ‘김봉곤과 함께 게이작가인 박상영’이라는 글귀를 실었다. 또 다른 원로평론가는 좌담회에서 ‘커밍아웃한 박상영’이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당시 박상영 작가는 커밍아웃한 바가 없었다. 몇몇 평론가의 부주의하고 무신경한 발언과 더불어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관계자들의 무책임함은 개인은 물론 독자들에게까지 큰 피해로 돌아갈 수 있다.

박상영 작가는 이런 과정 속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퀴어문학이 별종 취급을 당하던 시기가 있었다. 다른 모든 소설처럼 그저 인물을 그린 것뿐인데 과잉해석을 하고, 의미부여에서 나아가 내가 발표하지 않은 나의 정체성이 공표됐다.”라며 이에 출판사 측에 정정을 요청하고 전량 회수조치를 요구한 적이 있었음을 밝혔다. 작가는 이어 “나는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내 소설이 나보다 전면에 존재하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대도시의 사랑법” 북토크 당시 박상영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최근 작품을 쓸 때는 아예 ‘영’이라는 작가 캐릭터를 앞세우기도 했다. 해당 소설집에 자전적 요소가 있음을 대중매체는 물론 작가의 말에도 밝혔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과 사건은 작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기도 한 동시에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이며 완벽한 허구이기도 하다. 박상영 작가는 “더 센 규정을 통해 기존의 규정을 벗어나고 싶다. 당사자성 비평이 각광받는 것과는 별개로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작가를 규정하려는 시도는 과연 옳은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자신의 초기 방향성과는 무관하게 이제는 확실한 대표성을 띠게 되었으므로 퀴어문학을 쓰려는 작가지망생들을 위해 다양한 선례 만들어주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였다. 실제로 만난 지망생들은 아웃팅이나 규정화를 걱정하고 두려워한다고 했다. 이에 작가는 자신을 규정하려는 시도를 벗어나기 위해 매일 투쟁하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박혜진 평론가는 여러 매체에서 파편적으로 드러난 이야기들을 독자와 함께하는 공간에서 나누는 시간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며 퀴어서사라는 말 안에서 얼마나 얄팍하게 호명하고 규정지으며 비평을 해왔는지에 대해 재고했다. 이에 박상영 작가는 “초기 퀴어비평에서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대하듯 말하는 방식이 있었다. ‘보편적 감정’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는 것은 ‘보통의 사람’으로 생각지 않았다는 증거다. 특수한 사랑과 보편적 사랑과 같은 비교문을 들을 때마다 모멸감마저 느껴진다.”는 마음을 드러낸다.

평론가 역시 “다른 서사에는 적용하지 않는 당사자성을 퀴어서사에만 적용하고 호명하는 것은 위험하고 주관적인 시도다.”라며 공감을 표했다. 누가 됐건 타인에게 개인의 정체성을 요구하거나 공표하는 시도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으로 작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임솔아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작가와 작품을 규정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 다음엔 ‘장르’ 구분의 모호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임솔아 작가는 스물네 살 무렵 처음 시를 읽어보기 전까지 글을 장르별로 나누어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어디 갈 때마다 시가 좋냐 소설이 좋냐. 둘은 어떻게 다르냐. 반복적인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두 가지 방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라며 “몸이 하나고 규정에 맞춰서 잘라서 파는 느낌이다. 어떤 규정에도 맞지 않아 사용하지 못하는 부분이 덩어리째 있다.”는 생각을 전했다. 

임솔아 작가는 시로도 소설로도 사용하지 못한 부분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면 장르를 섞은 글이나 장르에 포함될 수 없는 글을 어떤 식으로 쓸 수 있을까? 그 글을 어떤 지면에 발표할까? 어느 청탁에 넣을까? 등의 질문에 봉착했다. 지면이 아니라 책으로 묶었을 때도 시적인 소설 혹은 소설 같은 시, 장시 또는 소설로 분류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읽고 쓰던 많은 사람이 이러한 문턱에서 장르 규정의 선택을 해온 셈이다.”라고 했다. 박혜진 평론가는 “출판사에서 탈장르를 외치면서도 생산하는 많은 과정에서 장르를 규정하고 구분하게 된다. 규정을 거부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강하게 소화하고 있다.”라는 말로 힘을 실었다.

임솔아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눈과 사람과 눈사람”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그중 표제작 ‘눈과 사람과 눈사람’은 피해자와 연대하는 연대자들이 경험하는 갈등에 관한 이야기다. 이는 우리가 갖고 있던 피해자성의 해체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집에 실린 특정 소설 아래에는 각주로 상황을 밝혀두기도 했다. 박혜진 평론가가 구체적 계기나 배경을 묻자 임솔아 작가는 “구체적 계기나 배경을 말하는 일은 때에 따라 소설과 현실의 밀착감을 줘 현실의 어떤 부분을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지만, 오히려 특정한 배경과 계기를 통해 소설을 프레임 안에 가두기도한다. 당연히 내 소설이 무언가 덜 갇히길 바라므로 관련한 말을 조심하려 한다.”는 답을 남겼다. 

규정과 해체에 대한 실례로 ‘추앙’이라는 작품도 등장했다. 삼 년 전 문단 내 성폭력 당시 ‘일탈’로 명명돼 많은 이들이 묵인하고 방관한 폭력을 다룬 이야기다. 소설은 임솔아 작가가 습작기 겪었던 일을 소재로 다루었다. 해당 작품 하단에는 관련한 각주가 달려있다.

초기 소설 집필 당시는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직전으로 소설에 작가의 경험과 관련한 내용을 표시하거나 연계하지 않았다. 이후 먼저 용기 낸 피해자들에게 용기를 얻어 완전한 허구가 아님을 밝히게 됐다. 임솔아 작가에 의하면, 처음에는 ‘논픽션’의 형태가 고려됐다. 그러나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현석’의 경우 허구의 인물임과 동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였다. 임솔아 작가는 ”논픽션이 되려면 현석을 삭제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소설을 쓰게 했던 원동력과 계기의 중요한 부분이 사라진다. 오히려 진실과 더 멀어지는 것이다. 허구가 동원되어야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문장을 실제로 경험하고 느끼게 됐다.”는 비화를 밝혔다. 

이에 현석을 버리지 않기 위해 픽션의 형태를 취하면서 각주를 다는 결정을 내렸다. 경험에서 소설로, 소설에서 논픽션으로, 논픽션에서 다시 소설로 가는 과정 자체가 허구와 진실, 말하기 방식 등에 있어 머리로만 알던 내용을 경험적으로 체험하게 된 것이고 그 자체를 소설에 함께 담아두고 싶었다는 후일담이다.

박혜진 평론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작가와 작품, 장르적 구분과 규정화를 지나 ‘관계’ 규정에 관한 고찰도 있었다. 박혜진 평론가는 “대도시의 사랑법”에 등장하는 재희와 나의 관계를 언급했다. 이성애자 재희와 동성애자인 나의 관계는 타인의 시선으로는 동거 중인 연애 관계로 읽히지만, 실제로는 ‘전적으로 우리 둘만의 관계’로 표현된다. 사랑에 대한 상식적인 규정이 전복되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퀴어’가 아닌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박상영은 “어제와 오늘의 나조차도 다른데, 하물며 두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무 자르듯 뚝 잘라 규정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규정하려는 시도 대부분은 편의에 따른 것이 아닐까 한다. 우정. 성애적 사랑. 그 외의 것들도 많다. 규정화의 과정은 재밌고 때로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작가 자신의 느꼈던 감정의 결이나 고민 등을 새로운 인물과 서사를 통해 다시금 탐구하고 증명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단순히 ‘소설 속 두 인물의 관계는 무엇인가요?’ 하는 질문에 작가는 당혹감을 느꼈다. 규정할 수 없고 규정되고 싶지 않은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물론 독자들 또한 감정의 이면이나 잃어버린 요소를 되찾고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스테이지 “함부로 규정 불가능한” 행사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두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행사 말미에는 다시 작가와 작품, 작품과 독자의 관계로 돌아왔다. 소설 쓰기라는 행위를 전면에 다루는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규정할 수 없는 관계인 재희와 나처럼 작가에게 소설은 어떤 관계일까?

박상영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박상영 작가는 소설 속 작가 ‘영’과 실제 작가 자신을 구분해 들려줬다. 영에게 있어 창작은 해소이자 존재증명, 본연적이고 근원적 즐거움에 가깝다. 이는 작가가 책을 출간하기 이전에 소설 쓰기를 생각하던 방식으로 아무도 들어줄 수 없고 관심 가져 주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객관적 대상으로 그려낼 때의 즐거움이 크다고 한다. 

반면 “대도시의 사랑법”을 쓸 때의 박상영 작가는 ‘작가는 계속 만들어진다. 우리는 유기체다.’라는 생각이 컸다. 독자라는 익명의 대중에게 읽히고 피드백을 받고 그 모든 과정이 작가를 조금씩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소설이 소비되는 사회적 환경과 풍경이 작가의 생각과 모습을 새롭게 바꾸기도 한다. 작가는 “근래에는 나 자신, 비평가, 독자 모두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다. 이전과 다른 소설 쓰기의 포지션을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이어 “한 번도 남에게 읽혀보지 않았을 때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다.”며 두 번째 책을 낼 때와 세 번째 책을 낼 때도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을 이야기했다.

임솔아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임솔아 작가에게 대중이나 평단의 규정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묻자 색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 대한 평단의 평가나 독자의 반응을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은 있다. 꾸준히 들어온 말 중 하나인 ‘소설도 쓰는 임솔아 시인’이 그것이다. 이 말은 ‘어린이를 위한 돈가스 메뉴를 파는 파스타 집’ 같다.”며 미소지었다. 

이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을 소개했다. 어느 날 서점에서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더니 가방 옆에 그림책 하나가 있었다. 그림책에는 “임솔아 작가님 오래오래 글 써주세요.”라는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글을 그만두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던 시점에 독자가 건넨 쪽지를 읽고 새 작품을 쓰는 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나에게 있어 도전은 새 작품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다. 도전이 용감하거나 멀리 보는 행위가 아니라 더 나아갈 데가 없는 사람이 벼랑 끝에서 하는 선택과 행동이라는 생각이 있다.”며 “아무리 고민해봐도 새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은 새 작품을 쓰는 일밖엔 없다.”는 말로 앞으로의 행보를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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