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8) / 효와 불효의 차이-마광수의 ‘효도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8) / 효와 불효의 차이-마광수의 ‘효도에’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9.0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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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8) / 효와 불효의 차이-마광수의 ‘효도에’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8) / 효와 불효의 차이-마광수의 ‘효도에’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8) / 효와 불효의 차이-마광수의 ‘효도에’

  효도에

  마광수


  어머니, 전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또 기르시고 싶어서 기르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와 전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저 무슨 인연으로, 이상한 관계에서
  우린 함께 살게 된 거지요. 이건
  제가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제 생을 저주하여 당신에게 핑계 대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전 재미있게도, 또 슬프게도 살 수 있어요.

  다만 제 스스로의 운명으로 하여, 제 목숨 때문으로 하여
  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전 당신에게 빚은 없어요. 은혜도 없어요.
  우린 서로가 어쩌다 얽혀 들어간 사이일 뿐,
  한쪽이 한쪽을 얽은 건 아니니까요.

  아, 어머니, 섭섭히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난 널 기르느라 이렇게 늙었다, 고생했다.”
  이런 말씀일랑 말아 주세요.
  어차피 저도 또 늙어 자식을 낳아
  서로가 서로에 얽혀 살아가게 마련일 테니까요.

  그러나 어머니, 전 어머니를 사랑해요.
  모든 동정으로, 연민으로
  이 세상 모든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정으로
  진정 어머닐 사랑해요, 사랑해요.
  어차피 우린
  참 야릇한 인연으로 만났잖아요?

  ―『이 땅의 어머니를 위하여/ 시인 61인의 헌사』 (예하, 1988)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8) / 효와 불효의 차이-마광수의 ‘효도에’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48) / 효와 불효의 차이-마광수의 ‘효도에’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며칠 전 5일은 마광수 씨(1951〜2017)가 작고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때맞춰 마광수 씨에 대한 평론을 모은 책 『마광수 시대를 성찰하다』도 나왔다. 시대를 앞서간 문화 게릴라였던 마광수 씨는 주변에 자기 말에 고개를 끄덕여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에라, 미련 없다 하는 심정으로 목숨을 거둬버린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자지간 혹은 모녀지간이라는 인연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 이유만으로 효도를 다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마광수 씨는 반대한다. 맹목적인 효도론에 대해 반대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한다. 거부할 수도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이 모진 인연을 어찌할 것인가. 낳았으니 길러야 하는 것, 태어났으니 얻어먹어야 하는 것. 우리는 예로부터 충효사상을 최고의 정신적 덕목으로 생각해 왔지만 마광수 씨는 어미와 자식을 참으로 ‘야릇한’ 관계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더라면 자살하려던 마음을 거둬들였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고 착잡한 마음으로 이 시를 읽는다. 삼가 명복을 빌면서.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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