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1) / 요 이쁜 내 새끼-박숙이의 ‘목욕탕에서’
목욕탕에서
박숙이
네 살배기 사내아이가 엄마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
새파란 때타월을
반은 쥐고 반은 흘리면서
해죽해죽 웃으면서 엄마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
‘아이쿠, 내 새끼, 잘도 미네. 요 이쁜 내 새끼…….’
아이의 볼에, 아이의 입에, 쪽쪽 소리가 찰지게 달라붙는다
엄마는 간지러워 그만, 깔깔깔 넘어간다
물방울도 깔깔깔 터지고 또 터진다
꽃잎 같은 이쁜 아이와 눈 한 번 더 마주치려고
고개를 자라처럼 빼, 뒤를 한 번씩 돌아다본다
서로의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몸이 사르르 밀착된다
엄마의 얼굴에 봄이 연신 자지러진다
세상의 모든 경계가 저 앞에서 하르르 무너져 내린다
둘레가 어찌나 반짝이던지
손을 잡고, 온탕으로 들어서는 母子의 환한 모습이 마치,
올림픽 시상대에 선 영웅같이 느껴진다
—『하마터면 익을 뻔했네』 (시산맥사,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1) / 요 이쁜 내 새끼-박숙이의 ‘목욕탕에서’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news/photo/201909/60589_35491_050.jpg)
<해설>
내일이 추석이다. 어린 시절, 추석 전날 아버지와 함께 꼭 간 곳이 있었으니 목욕탕이었다. 추석맞이 목욕재계를 하러 간 것인데 아버지가 너무 세게 때를 밀어 온몸이 발갛게 익는,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 시의 정황은 정반대이다. 시를 읽는 동안 대중목욕탕에 온 네 살배기 사내아이와 엄마의 모습이 눈앞에 선연히 그려진다. 목욕을 하기보다는 장난하는 것에 가까운 모자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눈물겹다. 교육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어린 시절, 엄마와의 스킨십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낀다. 만약에 시 속의 아이가 어린 시절에 엄마랑 목욕탕에 가서 이렇게 웃으면서 재미난 시간을 보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이 그림은 평생 간직할 가장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이 될 것이다. 우리 누구나 어느 순간의 기억을 몇 폭 평생 간직하며 살아간다. 암실에서 사진 한 장을 인화하면 감광지가 사진이 된다. 그 사진을 물에서 건져서 불에 비춰보라. 부모라면 자식과 함께했던 어떤 순간을, 자식이라면 부모와 함께했던 어떤 순간을 되돌릴 수 없어서 가슴 아플 것이다. 그 순간은 사진 속에 있고 기억 속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기억의 힘으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간다. 이 시 속의 아이는 훗날 사춘기가 되어 엄마 속을 푹푹 썩일 테지만 지금은 엄마가 이 세상 전부인 것을. 엄마에게는 아이가 이 세상 전부일 테고.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