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2) / 간을 본다는 것-김말화의 ‘간보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2) / 간을 본다는 것-김말화의 ‘간보기’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9.1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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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2) / 간을 본다는 것-김말화의 ‘간보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2) / 간을 본다는 것-김말화의 ‘간보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2) / 간을 본다는 것-김말화의 ‘간보기’

  간보기 

  김말화


  육개장을 끓이며 
  간을 보다 이슬을 마신다 
  간보는 게 안주가 되어 한잔 술에 간 한번

  아버지는 거나하게 취하면 나를 
  무릎에 앉히고 고복수의 짝사랑을 부르게 했다 
  난 가수가 되어 술자리마다 이끌려 다니면서
  안주가 되는 노래라도 불렀지만
  취기가 절정일 때면
  엄마와 오빠 언니는 숨거나 도망쳤다 

  엄마가 달아날 무렵
  아버지는 동태찌개를 끓이면서 
  술 한잔에 간을 보고, 또 한잔 마시고 간을 보았다
  동태찌개처럼 얼큰해진 아버지는
  상을 차려 당신의 사랑이라는 듯 먹이면서  
  막내만 곁에 있구나, 막내만 곁에 있구나 
  간이 들어간 눈을 더욱 붉혔다

  간보는 일이 
  폭력 후에 스며드는 자괴감을 맛보는 일이란 걸 
  그때부터 알았다 

  -『차차차 꽃잎들』 (애지,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2) / 간을 본다는 것-김말화의 ‘간보기’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오늘이 추석이다. 부모님 두 분이 다 돌아가신 이후 추석은 아주 우울한 날이 되고 말았다. 예전 추석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왁자지껄, 화기애애, 웃음바다……. 착잡한 심사에 사로잡혀 옛날을 추억한다. 그래서인지 술주정뱅이 아버지를 회상한 이 시에 시선이 오래 머문다. 

  시의 내용이 허구인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워낙 리얼하게 써 사실 같다. 이 세상에는 ‘폭력가장’들이 있다. 술에 취해 들어와 주먹을 휘두르면 엄마와 오빠 언니는 숨거나 도망쳤는데 막내인 화자는 아버지 곁에 있었다. 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동태찌개를 끓이면서 간을 보는데, 간을 보며 또 연신 술잔을 기울인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화자가 육개장을 끓이면서 간을 본다. 간 보는 게 안주가 되어 술을 한잔씩 하면서 간을 본다. 아버지한테 배운 것이다. 아버지는 막내를 정말 사랑했다. 무릎에 앉히고 고복수의 짝사랑을 부르게 했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아버지 무릎에 앉아서만 노래를 불렀는가. 아니다. 술자리마다 데리고 다니며 노래를 시켰다. “동태찌개처럼 얼큰해진 아버지”는 “상을 차려 당신의 사랑이라는 듯 먹이면서” “막내만 곁에 있구나” 중얼거리곤 했다. 아버지는 “간이 들어간 눈을 더욱 붉혔”으니 딸은 아버지가 측은하다. 간보는 일이 “폭력 후에 스며든 자괴감을 맛보는” 일이란 결구가 가슴을 친다. 술김에 저지른 행패를 아버지는 분명히 후회하고 계시는구나, 간을 연신 보는 아버지를 곁눈질하면서 딸은 생각하는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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