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5권의 시집 추천] 한가위를 앞두고 읽는 시집들, 고마움을 알라고 나를 깨우친다
[이승하 시인의 5권의 시집 추천] 한가위를 앞두고 읽는 시집들, 고마움을 알라고 나를 깨우친다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9.1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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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시대에도 명절이 있었다. 중추절을 맞아 전국에서 몰려온 제자들이 고향에 다녀오겠다고 하자 명을 내린다. 이번 명절에는 자기 고장의 원로(元老)들을 찾아뵙고 민요를 청해 듣도록 하라고, 그 노랫말을 적어 오도록 하라고. 몇 년 동안 제자들은 스승의 명을 받들어 열심히 민요의 가사를 채집하였다. 공자가 그 가운데 305편을 가려내어 묶은 것이 동양에서 제일 오래된 시가집인 '시경'이다. 시의 효과에 대해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삼백일언이폐지왈사무사(詩三百一言以蔽之曰思無邪)”라고. 이 말을 입증한 것은 고려 광종 때부터 갑오경장 때까지 장장 1000년 동안 행해진 과거제다. 시를 지을 줄 모르고선 문과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명절을 이용한 공자의 좋은 생각이 시의 역사를 일으키게 하였다. 중국에서 시는 민요, 노래에서 왔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시는 '황조가''공무도하가''구지가'로 모두 곡조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흔히 하는 말로 ‘메이저급 출판사’가 있다. 시집을 꾸준히 내고 있는 네 군데 출판사를 묶어 흔히 그렇게 표현한다. 시인들은 그 출판사에서 내는 시집 시리즈에 들어가길 소망하고, 그럼 문학상 수상 확률도 높아진다. 그런 출판사는 우선 계약과 이행의 과정이 깨끗하다. 시인에게 몇 권을 구매해 달라는 언질을 주지 않고 인세를 계약서에 적힌 그대로 지불한다. 초판 인세는 대체로 시집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지만, 자비출판이 아니기에 기분이 나쁠 수 없다. 

150일 넘게 시집과 문예지 수백 권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점은, 이른바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낸 시집에서 좋은 시를 발견한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150일 동안 최근에 출간된 시집을 통독하다가 ‘야, 이런 멋진 시가 있구나’ 하고 내심 감탄하는 경우가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나온 시집 중에는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나 자신의 편견의 소치일 수 있겠다 싶어 재독, 삼독해도 마찬가지였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과거의 명성에 기대어 출판을 하다 보니 어느덧 ‘오만과 편견’을 갖게 된 것은 아닐까? 과거의 ‘권력과 영광’에 안주해 신진 사대부 계급 등용을 기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선정 과정에서 이미 평가를 확실하게 받은 중견 이상의 시인의 경우, 메이저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는 것이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나 자신, 과거의 시집보다 못한 시집을 내면서 자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글을 쓰면서 반성해 본다. 

시집을 시리즈로 내고는 있지만 아직은 인지도가 낮은 몇몇 출판사에서 내는 시집들이 하나같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신뢰가 가는 출판사가 있다. 전주의 ‘모악’, 춘천의 ‘달아실’, 대전의 ‘애지’다. 서울 소재 출판사 중에는 ‘도서출판 b’와 ‘걷는사람’의 시집 시리즈에 눈길이 간다. 이 다섯 군데 출판사에서 최근에 낸 다섯 권의 시집에 대한 짧은 소개의 글을 써보고자 한다.

 ‘모악시인선 017’권인 신휘의 '꽃이라는 말이 있다'라는 시집이 있다. 

 

톱질을 한다

나무의 말은 침묵인데
그 말의 단면을 놓고 자르면
미처 말 못한 나무의 말들이 묵음처럼
밖으로 빠져나온다

침묵된 말의 밀도만큼 나무는 안으로
나이를 먹는 것인데

톱을 가져다 대도
쉽게 그 말발이 먹히지 않는 것은

말귀가 어두워서가 아니라

침묵된 나무의 언어들이 톱의 아귀를
물고 쉽게 놔주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나무는
늙을수록 힘이 센 것이다.

―'나무는 늙을수록 힘이 세다'전문

이렇듯 시는 고풍스럽다. 시인은 아직 자연과 분리되지 않고 자연과 절연하지 않은 우리 인간에게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차근차근히 하면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울진군 금강소나무 숲길에 가서 확인했다. 금강소나무는 안으로 나이테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내면의 성숙’을 몸으로 얘기해주는 나무들을 보면서 시인은 늙을수록 힘이 센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꽃이라는 말이 있다

생이란,
기실 알고 보면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를 닮은 열차 같은 것

그래 맞다, 지네야
네가 꽃이다

나는 이제 부스럼 숭숭 돋은
네 징그런 가시발을 발통이라고 이름하마

눈 대신 발로써 평생을 기어 다닌
네 혐오한 몸뚱어리
피안행 차안발 꽃 열차라 명명하마

그러니,
오늘은 꽉 닫힌 목청을 열고
어디 한번 기차의 흉내라도 내 보거라

화통처럼 기막힌 세월을 불 밝히며
퇴화된 네 눈 안에 달이라도 한 점 부려보렴

―'네 지친 천 개의 강물 위에는'부분

 대다수 지네를 보면 징그럽다고 생각할 텐데 시인의 생각은 좀 다르다. 수많은 발을 재게 놀리며 살아가는 지네의 생명력이란 것이 시인이 보건대 예사롭지 않다. 살아 있는 한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역설하는 시인은 신 월인천강지곡을 이렇게 멋지게 작곡하였다. 시집의 시편들이 다 좋은데, 그는 '오늘의 문학'으로 데뷔하였다. 지금은 고향에서 포도 농사를 짓고 있다니, 태생의 한계가 있다는 것인가. 우리가 언제부터 지연과 학연 외에 출신지면을 따지게 되었나, 한심한 일이다. 이 좋은 시집이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강원도 춘천도 문학적으로는 낙후된 곳일지도 모르겠다. 이 지역 출신으로 이승훈ㆍ최승호ㆍ박정대ㆍ최준 같은 훌륭한 시인이 있는데 전윤호 시인도 누구 못지않게 시를 꾸준히 쓰고 있다. 정선이 고향인 전윤호 시인이 '정선'이라는 시집을 냈다. 제목 그대로 고향 노래다.

 

안개가 사방 빗장 지른 마을
아버지는 맘대로 일찍 떠나고
종일 비 오는 강과 산만 남았다

기댈 곳 찾아 떠난 길
오십 넘어도 비만 내린다
우산 속에 숨은 슬픔 노리는
빗속의 매 한 마리

눈 내리기 전
넌 오지 않고
오늘도 한밤에 떠나라는 듯
아는 집은 모두 불이 꺼졌다

―'고향'전문

일찍이 정지용이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라고 노래했었다. 전윤호 시인은 서울에 가서 오래 살았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고, 취직했고, 결혼했고, 아이를 키웠다. 지금은 춘천에서 사는 것 같은데 아무리 도시에 오래 살아도 그는 촌놈이다. 서울에서 30년 이상을 살았어도 세련됨과는 무관한 그의 시는, 투박하기에 정겹고, 우직하기에 사랑스럽다. 폐광된 마을, 카지노가 들어선 고향, 그때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땔감을 해 와야지만 겨울을 나던 시절이 있었다. 

북풍 속에 사방이 얼었다
눈을 이고 주저앉은 산들 사이로
주린 멧돼지가 지나간다
대문 잠그고 불 때는 집들
강은 또 바닥까지 얼었을까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했을까
소금 사러 재 넘어간 사람은 소식이 없고
길 끊긴 마을에 노인들이 위독하다
바깥세상은 다시 난리라고
기차를 막은 소문이 불길한 겨울밤
재앙처럼 또 눈이 온다
봄까지 꼼짝도 말라고
언 길 위로 또 함박눈이 쌓인다

―'도원 일기'전문

‘강원도 산간지방’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전윤호 시인보다 더 살려 쓰는 시인을 본 적이 없다. 강원도 시인들의 결속력을 보여주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박제영 시인의 달아실 출판사가 잘 버티기를 빈다.

함순례 시인이 편집 일을 보고 있는 대전의 애지시선이 최근에 82권째 시집을 냈다. 2005년에 문을 열었으므로 1년에 고작 6권의 시집을 내오고 있을 따름이다. 애지시선 080번, 김말화 시인의 '차차차 꽃잎들'에 주목한다. 2006년 '포항문학'으로 데뷔한 포항 출신 시인인데, 학력은 시집에 나와 있지 않다. 메이저 출판사가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겠지만 나는 이분의 시가 좋다. 

 

구겨진 신문을 펴자 할머니가 웃고 있다

누구한테 받은 건지
까맣게 잊어버린 마른 꽃
다발에 싸서 버리려는데 문득
시반(屍斑)의 향기가 끼쳐온다 훅
독거노인의 죽음
신문 스크랩이 요악한 생을 들여다본다

폐지처럼 바스락거리는 옷자락 너머
구겨진 손엔 한줌 어둠이 고여 있다
다정하게 웃고 있는 가족사진

얼마나 오래 웃어야 독이 되지 않을까.

낡은 손수레엔 싸락눈이 쌓이고
수반(水盤)이 된 방은 생의 물기를 증발시켜
드라이플라워가 된 할머니

마른 몸이 마른 몸을 위로하는 시간
담벼락 아래 슬며시 내려놓고 돌아서면
저녁이 불콰하게 풍장 되고 있다

―'드라이플라워'전문

 구겨진 신문 안에는 드라이플라워가 들어 있다. 마침 그 신문에 독거노인의 죽음을 보도한 신문기사가 실려 있다. 이웃에도 죽은 노인이 있었는지, 아니면 신문에 난 바로 그 노인인지 화자는 담벼락 아래 드라이플라워를 내려놓는다. 이런 시를 보고 혹자는 뻔한 소재, 뻔한 주제, 뻔한 표현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감동을 받는다. 기교의 시가 아니라 진심의 시요 실험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서정시의 본모습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목수인 아버지는 나무와 가까웠지만
혼자였던 나는 슬픔과 가까웠다
나무는 슬픔을 알지 못했고
나는 아버지를 외면했다

(……)

웃음이 등 뒤로 흘러내리던 날
아버진 끝내 바깥의 신도가 되었고
내 유년의 나무는 장례되었다

때로는 슬픔이 슬픔 안에서도 걸어 나온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이렇게 나무들이 수런거리는 저녁이면

―'슬픔이 오는 방식'부분

김말화 시인의 시편은 거의 다 생로병사의 비의와 인생살이의 신산함을 다루고 있다. 시인이 그린 초상화 속의 사람 모습은 늘 아프거나 추레하다. 그 모습을 그리면서 시인이 느끼는 감정은 대체로 슬프거나 딱하다. 언어의 조탁이 세련되거나 날렵하지는 않지만 둔중한 감동을 준다. 

애지 시선에는 대체로 지방에 거주하는, 학벌이 그리 신통치 않은, 중앙 시단에서 소외된 시인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다. 시집의 수준이 만만치 않지만 계간지도 없이 운영하는 시선이라 함순례 시인이 악전고투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문화예술위원회의 무슨 기금 같은 것이라도 여러 권 받았으면 좋겠다. 

조기조 시인이 내고 있는 ‘b판시선’ 시리즈가 30권을 넘어섰다. 도서출판 b의 이 시리즈 001에서 030까지 30권 중에 하종오 시인의 시집이 10권이 들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부지런한 시인이 바로 하종오다. 다문화가정, 강화도 시편,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 관한 시 등 문학적 실천을 예나 지금이나 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시인이 또한 하종오다. 줄기차게 시를 쓰다 보니 편편의 시에 압축미나 집중력은 부족하다. 그러나 보편타당한 인간의 도리, 즉 인지상정의 세계를 아주 꾸준히 그려 나가고 있다. 

무덤을 만들어주고 먹고사는 육순 사내는
신강화학파란 없다고
거두절미했다

그리고 반문했다
묘혈을 파다 보면
모든 인간의 넓이가 같고
하관을 하다 보면
모든 인간의 깊이가 같고
봉분을 올리다 보면
모든 인간의 높이가 같은데
신강화학파가 그걸 알겠느냐고

논밭에서 곡식을 키워 먹고사는 신강화학파가
그런 걸 알 리가 없겠지만
신강화학파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점이니
당신이야말로 신강화학파라고
내가 맞대꾸했더니
육순 사내가 달구소리로 대꾸질했다

어허라 달구, 신강화학판들 죽지 않으시까?
어허라 달구, 죽지 않으면 신강화학파 아니시다.
어허라 달구, 신강화학파 아무리 많다 해도
어허라 달구, 세상엔 산 자 죽은 자뿐이시다.

―'신강화학파 산역꾼'전문

 강화도에서 20년 이상 살면서 만난 이런저런 사람들을 가리켜 신강화학파라고 칭하고 있는 시인의 초상화 전람회가 시집 '신강화학파' '신강화학파 12분파' '신강화학파 33인'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만나니 바로 친해지는가 보다. 이들 시집에 나와 있는 인물들이야말로 이 시대의 서민의 모습이고 진정한 민중의 모습이다. 

제주에서 처음 만나 인사하는 임시 공동 숙소에서
예멘 청년들은 본업을 좀체 말하지 않았다
누가 부유하고 누가 가난하다고
말해선 안 되는 난민 신청자,
누가 더 똑똑하다거나 누가 더 이리숙하다고
말할 수 없는 난민 신청자,
누가 제주에 남을지 누가 예멘으로 돌아갈지도
말하지 못하는 난민 신청자,
제주에서 예멘 청년들은 모두 똑같은 난민 신청자였다

―'임시 공동 숙소 1'부분

누구는 정부군을 피하여
누구는 반군을 피하여
예멘을 탈출하여 겨우겨우 도착한 제주,
임시 공동 숙소에 온 예멘 청년들 중에는
수니파니 사이파니 묻지 않은 채
코란을 묵독하는 자가 있었고
고향이 어디냐고 묻지 않은 채
창밖 하늘을 쳐다보는 자가 있었고
직업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지 않은 채
벽에 기대 앉아 빈둥거리는 자가 있었다

―'임시 공동 숙소 3'부분

 

왜 제주에 왔느냐는 질문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임시 공동 숙소에 머물다가
떠날 때 되면 절로 알 터였다

―'임시 공동 숙소 11'부분

 

명절에 고향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이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예멘 난민 484명이 2018년 제주도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했는데 심사를 통해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단 2명뿐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불법체류자가 되어 이 도시 저 도시로 숨어 들어갔다. 현 정부에서는 난민 포용에 난색을 표하고 있는데 시인은 제주도에 가서 그들을 취재하였다. 그들의 고충을 들었고, 난민의 과정을 확인했고, 처지를 동정하였다. 한 권의 시집을 작년 8월 한 달에 썼다고 하니 대단한 열정이다. 보고문학이라는 것이 있는데 시집이 보고문학이 된 희유한 예를 하종오 시인이 보여주었다. 최근의 언론보도를 보니 정부가 7월 1일부터 난민 신청자와 인도적 체류자의 건설업 취업을 금지시키기로 했단다. 난민들에게 체류기간 연장 허가 수수료 6만원, 취업 등 체류자격 외 활동허가와 변경 및 추가 수수료 12만원을 받기로 했다는데 이들이 어디서 이 돈을 구할 수 있을까. 추석 연휴에 이들은 더욱더 불안에 떨 것이다. 나는 이들의 사정이 안타까워 혀만 찰 따름이었는데 하종오 시인은 펜을 들었다. 

김성규 시인이 책임편집을 맡고 있는 ‘걷는사람 시인선 11’은 고증식의 '얼떨결에'이다.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났고 '한민족문학' 추천으로 데뷔했다고 한다. 내가 모르는 문예지다. 촌사람 아니랄까봐 시가 참 촌스럽다. 

 

스무 해 훌쩍 지나 시장통 걷는다
그때 그 할머니 지금도 할머니인 채
그때 그 술잔 내놓는다
그때처럼 주문하면 바로 시장 봐다가
파전 부치고 생선 굽는다
메뉴판도 인정도 그때 그대로
하긴 뭐 이십 년 세월쯤이야
저기 저 밀양상회 할매 어물전 오십 년
저기 저 시장식당 할매 국밥집 사십 년
여기저기 더하면 천 년도 훌쩍이라지
허기진 가슴들이여 이리로 오시라
먼저 가신 어매아배 장마당 나와 있고
흘러간 그때 그대로가 여기 있으니

―'그때 그대로'전문

 이런 인정 미담은 찾아보면 차고 넘칠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가 내게 성큼 다가오는 것은, 2019년 이 시대에 이 나라 정치인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너무 화가 나기 때문이다. 국민이 마련해준 어마어마한 세비를 받아쓰면서 온갖 상스런 욕은 다하고, 나쁜 언행은 다하고, 불법에 탈법에 파렴치에……. 인간에게 베푸는 정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알고서 행하는 이들 할머니의 노동은 고결하다. 시장통의 저 할머니들이야말로 거룩하고 성스러운 존재다. 고등학교 교사인 고증식 시인은 학교의 청소부 아주머니를 여사라고 부른다. 

학교 화장실 청소 담당 심만자 여사
학생들 8교시 수업하듯
여덟 개나 되는 화장실 혼자
오십 분 뻘뻘 땀 흘리고
십 분 종소리에 맞춰 숨 돌리는
고3보다 더 고3 같은 우리 만자 씨
삼십 년 부산역 열차 닦다
인공관절 해 넣고 잘렸다는 만자 씨
어쩌다 차 한잔에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세상사람 다 고마운 만자 씨
훗날 하느님 앞에 가면
평생 지구만 닦다 왔구나, 칭찬받을
닳고 닳은 몽당비 한 자루

―'몽당비 한 자루'전문

 

이 시에서도 큰 감동을 받았는데, 교사인 화자가 청소 담당 여성을 ‘신만자 여사’라고 부른 것이 그 첫째 이유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갑질’을 생각해보면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느끼게 해주어 고 시인이 고맙기까지 하다. 그리고 차 한 잔을 드려도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는 신만자 여사의 타인에 대한 겸손한 마음이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우리는 ‘고맙습니다’란 말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몽당비 한 자루는 심만자 여사의 땀이 이룩한 훈장이다. 훈장보다 더 값어치 있는 생활인의 보석이다. 아, 30년 동안 부산역 열차를 닦다가 낙상하여 인공관절을 해 넣었단 말인가. 아니면 몸이 노쇠하여 인공관절을 해 넣었단 말인가. 참으로 딱한 처지인데 지금도 매일 여덟 개 화장실을 혼자서 청소하다니! 

한가위가 내일이다. 이 명절에 우리는 가족에 대해, 이웃에 대해, 조상에 대해, 농부에 대해, 근로자에 대해, 청소부에 대해, 군인에 대해, 경찰관에 대해, 119구급대원들에 대해,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에 대해 고마워해야 하리라. 내가 잘 나서 여기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기에 오늘 차례 상을 차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 자신에게 말한다. 고마움을 아는 인간이 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