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4) / 흙의 의미-윤동재의 ‘흙’
흙
윤동재
우리 할머니는 올해 여든다섯
요즘도 늘 밭에 나와
식구과 같이 일하신다
할머니 이제 밭에 나오지 마시고
집에만 계셔요
일은 우리가 할게요 하니
얘들아, 아니다 아니란다
나는 흙 만지는 것이 좋아
밭에 나오는 거란디
나는 죽는 날까지
밭에 나와
흙 만지다가 죽을 거야 하신다
할머니 흙 만지는 것이
그렇게도
좋아요 하면
그래 너희들도 커서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단다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절로 알게 된단다
하루라도 흙을 만지지 못하고 살면
사는 게 아니지
너희들의 공부가 더 여물어지면 너희들도 알게 될 거란다
—『어린이문학』(2019년 가을호)
<해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로 시작되는 광복절의 날 노래. 흙을 만진다는 것에는 농작물을 짓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돌아가신 내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밭일을 좋아하셨다. 뙤약볕 아래 엉거주춤 앉아서 하는 농사일이라는 것, 해본 사람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잘 알 것이다. 할머니는 도시에서 살면서도 마당에 텃밭을 가꾸었는데 그 덕에 우리는 늘 싱싱한 푸성귀를 먹을 수 있었다.
이 동시는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 형식으로 전개된다. 여든다섯 할머니가 매일 밭에 나가 일을 하니까 손자가 집에서 쉬시지 않고 왜 그렇게 힘들게 밭일을 하시냐고 만류하는 말을 한다. 아이가 기특하다. 그런데 할머니는 흙 만지는 것이 좋아서 밭에 나온다고 말한다. 여기 덧붙이는 것이 “하루라도 흙을 만지지 못하고 살면/ 사는 게 아니지”라는 말이다. 흙은 순수함, 정직함, 고결함의 표상이다. 우리는 이 동시 속의 할머니를 본받아야 한다. 흙을 본받아야 한다. 왕조 시대 때도 친경(親耕)이라고, 임금이 농업을 장려하기 위하여 적전(籍田)에 나와 몸소 농사를 짓기도 했었다. 물론 하루나 이틀이었겠지만. 밥 한 공기를 먹어도 그것은 농부가 몇 달에 걸쳐 만들어낸 것이고 흙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