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5) / 죄와 벌-썬의 ‘숨바꼭질’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5) / 죄와 벌-썬의 ‘숨바꼭질’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9.1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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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5) / 죄와 벌-썬의 ‘숨바꼭질’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5) / 죄와 벌-썬의 ‘숨바꼭질’

  숨바꼭질

  썬


  퇴근하고 집에 들어섰는데 딸이 달려와 안기면서 숨바꼭질을 하자고 한다. 
  아빠가 술래라고 하며 백까지 세라고 한다. 나는 벽에다 이마를 붙인 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열 번 외친다.
  그 사이 어디론가 향하는 딸의 발자국 소리. 어디에 숨은 줄 알면서도 모른 척해준다. 딸은 아빠가 진짜로 못 찾는 줄 알고 기뻐하면서 잘도 숨어 있다.
  지금은 딸이 술래다. 많이 찾고 있는데 눈에 안 보이나 보다. 아빠가 너무 꼭꼭 숨었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5) / 죄와 벌-썬의 ‘숨바꼭질’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나흘간의 명절 연휴가 끝났다. 아마도 이 나흘 동안 전국 각 교도소, 구치소, 소년원에는 면회 신청자가 많았을 것이다. 벽 속에 있어서 차례를 지낼 수 없는 재소자를 찾아가 송편도 주고 과일도 먹이고…. 건강 잘 지켜야지, 그 사람들 위해 기도해라, 마음 굳게 먹어야 한다. 가족의 격려와 위로가 진정한 개과천선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구로구 천왕동에 가면 서울남부교도소와 구치소가 있다. 그 구치소에서의 시치료 수업시간에 재소자로부터 받은 시다. 이 시의 묘미는 제일 끝 단락에 있다. 엄마는 아빠의 부재를 어린 딸에게 어떻게 설명해주었을까? 아빠가 큰 죄를 지어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고 말해주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딸은 “나랑 숨바꼭질하던 아빠가 어디 갔어?”라고 엄마에게 물었을 법하다. 
  재소자의 아내가 어린 자식에게 가장 많이 해주는 거짓말이 아빠가 외국에 돈 벌러 갔다고 하거나 원양어선을 탔다고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고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도 오지 않는 아빠를 딸은 기다릴 것이다. 꼭꼭 숨는다는 표현에 깃들어 있는, 너무나 짙은 어둠 이미지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어두운 곳에 숨어 있는 아빠를 술래가 된 딸이 찾고 있는 장면은 ‘감동’이라는 정서가 아니고선 설명할 길이 없다. 서정시(抒情詩)는 감정의 교류가 목적이어야 하는데 이 시는 그것을 달성하였다. 끝부분에서 행한 일종의 반전이 이 시의 가장 큰 묘미라고 했더니, 덤덤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 재소자의 표정이 금세 환히 밝아졌다. 무사히 형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많이 큰 딸과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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