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8) / 늙는다는 것-이승리의 ‘수요예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8) / 늙는다는 것-이승리의 ‘수요예배’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9.19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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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8) / 늙는다는 것-이승리의 ‘수요예배’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58) / 늙는다는 것-이승리의 ‘수요예배’

  수요예배
  ―요양원에서 

  이승리


  할머니는 침대 옆 탁상 위
  딸이 주고 간 봉투를 가리켰다
  인공관절 삽입 수술 두 차례
  요양보호사의 부축으로 
  고무풍선 같은 몸을 맡겨
  열기구 타고 모인 휠체어 부대

  가까운 글씨 크게 코팅된
  찬송가 492장이 울려 퍼졌다

  한숨 가시고 죽음 없는 날
  한숨 가시고 죽음 없는 날
  감사헌금 십일조마다 이름 불리고
  양 갈래 복도 넘어 답가도 들려왔다

  지겨워!
  그만해!

  참빗처럼 가늘어진 어깨뼈 감싸 쥔 채
  옹알이하듯 허공에다 써 내린 날짜

  고통 가시고 죽음 없는 날
  죽음 없고 고통 가시는 날

  —『문학과 사람』(2019. 가을호)

 

  <해설>

  명절에 가보면 참 을씨년스러운 곳이 요양원이다. 예년에는 이날을 가족과 함께 보냈는데 이제는 노환이나 치매 등이 찾아와 생의 말년을 이곳에서 보낸다. 명절에는 가족들이 찾아와 시간을 보내다 간다. 8인 병실, 10인 병실에 가보면 이런 날에도 가족이 안 찾아오는 분이 있다. 우르르 왔다가 우르르 가지만 병상의 노인은 이날은 그래도 얼굴에 화색이 돈다. 코끝도 안 비치는 가족의 일원인 노인은 풀이 푹 죽어 있다. 자식이 외국에 이민 가 있거나 다른 사정이 있어 못 오는 것인데, 먹을 것을 좀 나눠드려도 드시지 않고 깊은 시름에 잠긴다. 
  시인은 요양원의 수요예배 장면을 그리고 있다. 제3연에서 현실풍자의 정신을 한껏 발휘하였다. 종교가 없는 환자라면 헌금 시간이 우스꽝스럽기도 할 것이다. 이 모든 이를 돌보려면 신은 얼마나 바쁠 것인가. “지겨워!/ 그만해!”라는 노인의 말이 폐부를 찌른다. 고무풍선 같은 몸과 참빗처럼 가늘어진 어깨뼈라는 직유법, 요양원에 가본 사람이라면 실감이 날 것이다. 
  나의 할머니, 외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장모는 모두 병원의 침상에서 숨을 거두었다. 어느 한 분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다. 그날은 한숨 가시고 죽음 있는 날이었나 고통 가시고 죽음 있는 날이었나. 시인은 요양원에서 수요예배를 하던 어느 날이 “죽음 없는 날”이라고 거듭해서 말하고 있다. 이날이라도 사망자가 없기를 바라면서.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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