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훈 칼럼] 중세 유럽 수도원의 출판과 필경사들
[공병훈 칼럼] 중세 유럽 수도원의 출판과 필경사들
  • 공병훈 교수
  • 승인 2019.09.20 15:22
  • 댓글 0
  • 조회수 596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세 유럽을 하나의 거대한 그리스도교 왕국으로 보기고 한다. 그리스도교 왕국이라는 관점에서는 성직자단과 세속통치권자들이라는 2개의 뚜렷이 구별되는 집단으로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두 집단은 서로 보완하며 경쟁하며 때로는 격렬하게 투쟁하는 관계로서 인간의 정신적 요구와 세속적 요구를 충족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 로마 멸망 이후에 사라져버린 지식과 문화를 되살리는 일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은 성직자들과 수도원뿐이었다. 

서구의 경우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책을 만드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지만 수도회의 활동으로 점차 부활되기 시작했다. 5세기 서로마 제국 붕괴와 연이은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약탈 등으로 책 보존은 크게 위협받았고 당시 안전하게 보존할 유일한 장소는 가톨릭 수도원이었다. 수도원은 사회 혼란 속에서도 서적을 제작하고 도서관을 세우는 일을 맡았다. 수도원에 설치된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은 책의 편집과 제작을 통괄하는 스크리토리(scritori)와 필사를 담당하는 코피스티(copisti)로 구성되었다. 수도원들은 도서관과 필사실인 스크립토리움에서 끊임없이 서적을 필사하였다.

구술을 통해 여러 필경사가 동시에 같은 내용을 복사하던 로마 시대 상업적 출판 행위와는 달리 수도사들은 내용을 1부씩 베껴쓰는 방식이었다. 베껴쓰기가 끝나면 교정을 보면서 제목이나 주석 등을 달았고, 그후 채식자(彩飾者)의 손으로 넘어가 그림이나 기타 장식적인 부속물들이 보충되었으며, 마지막 단계로 제본이 이루어졌다. 책 특히 성경을 성직자와 귀족들에게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수도사들의 필사 작업은 수도원의 중요한 활동이자 선교 활동이기도 했을 것이다.

스크리토이움의 작업과 필경 수도사들 

수도원 필경실인 스크리토리움(scriptorium)에서는 스크리토리(scritori)가 책의 내용과 전체 레이아웃 스케치를 구성하고 그 설계에 따라 필경 수도사들이 정서한 필체로 필사를 한다. 필경 수도사들은 글을 베끼는 일을 했다. 그들의 서예와 색채와 그림에서 창조적 능력을 발휘한다. 필사한 페이지는 장식적인 두문자를 그리는 채식가(彩飾家)와 그림으로 담당하는 삽화가들의 손을 거쳐 왔성했다. 채식하는 방식으로 쓰는 문자들도 있다. 기록에 따르면 글과 그림을 연필로 먼저 그리고 잉크를 사용하여 선화작업을 한 후에 금박과 색채를 입혔다고 한다. 채식가는 장식 문양에 금이나 은의 박막(薄膜)을 붙이거나 금분을 칠했다. 이 책들은 예술 작품의 수준으로서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개발하면서 이 필사본 책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고 전해진다.

브리티쉬 라이브러이(British Library) 보관되어 있는 1480년 시기 책에 보여지는 스크리토리움 풍경과 블랙 레터 글꼴

르네상스 시기 출판과 글꼴의 탄생

숙련된 장인들의 기술 수준이 요구되는 작업이었고 책 한권을 위한 양피지를 위해 수백마리의 양이 필요했다고 하니 책 가격이 매우 비쌌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회와 귀족들이 아니라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보석이나 세공이 겉들여지는 경우가 많았으니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과 재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13세기에서부터 구텐베르크에 의해 인쇄술이 개발되기 전인 이 시기에 필경사들의 고된 작업들에서 블랙 레터(Black Letter) 같은 글꼴이란 것이 탄생하며 삽화와 텍스트가 결합되고 표지를 만들어 양피지들을 묶어 만드는 책의 원형들이 준비되었다.

중세 필경사들에 의해 개발된 블랙 레터 글꼴은 서부 유럽에서 12세기~16세기에 걸쳐 주로 사용되던 글꼴이다. 독일어에서의 경우는 20세기까지도 사용된다. 동전 조각가이자 구텐베르크의 제자였던 프랑스인 니콜라스 젠슨(Nicolas Jenson)이 1470년 베네치아에 인쇄소를 설립하여 읽기 쉬운 글꼴로서 “로마체”를 개발하면서 인쇄 글꼴이 탄생한다. 하지만 그 원형은 중세 필경 수도사들의 오랜 세월을 필사 작업에 기반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블랙 레터 글꼴이다.

15세기 무렵에 제작된 많은 필사본 책들은 색상이나 형태에 있어서 완벽한 수준이었다. 필경 수도사들의 작업은 예술 작품이 되었다. 전해지는 일부의 책들에는 필경 수도사의 이름이 남겨 있다고 하니 그들의 자부심도 대단하였을 것이다. 이 글꼴들은 후에 인쇄용 활자체의 모델이 되었으며, 중세시대의 필사본 책은 초기 인쇄 책자 출판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었다. 그리스어를 사용한 비잔틴 제국의 수도원을 제외하고는 서부 유럽의 모든 수도원에서 라틴어로 책을 썼다. 14세기 인문주의 학파가 등장하고, 같은 시기에 지역 고유의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부상하면서 그리스어를 비롯한 다양한 지역 언어들이 서부 유럽의 수도원에서 중요하게 인식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부터 르네상스 시대까지 필경실은 수도원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크게 번성했다. 프랑스 국와 샤를 5세의  동생이던 베리(Jean, Due de Berry) 공은 네덜란드 필사 전문가인 림부르크(Limbourg) 형제를 자신의 영지로 초빙하여 사설 도서관을 책을 만들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필경 작업된 책의 아래에 있는 상업 광고와 책 맨 뒤의 광고 

중세 유럽의 스팸, 오래된 책 광고

스팸(spam)은 전자 우편, 게시판, 문자 메시지, 전화,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쪽지 기능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광고성 편지 또는 메시지를 말한다. 인터넷의 확산으로 본격화된 스팸 광고의 기원은 중세 유럽의 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5세기를 전후로 중세 유럽에서 길드의 활동과 더불어 상공업과 도시가 발달하면서 인구가 늘고 문맹률이 낮아지고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유일한 미디어였던 책에 대한 수요가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이제 손으로 한글자씩 베껴 써야 하는 필경 작업은 수도원 밖에서도 상업적 활동으로 이루어졌다. 책 가격표 유물을 살펴보면 상인들이 수도원과 필경사들에게 책을 인수하여 독자들에게 판매하는 서점도 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책이나 성경을 필경하는 장인들은 높은 지식을 가진 이들이었고 보수도 높았을 것이다.

필경사들이 늘어나면서 경쟁이 생기면서 필경되어 제작된 중세의 책에는 필경사를 광고하는 구절들이 나타난다. “만일 아름답게 쓰인 책이 좋다면 OO에 있는 누구를 찾으라”, “원하시면 제가 한권 더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중세 유럽의 스팸 광고가 출현한 것이다. 중세 책의 페이지 밑 부분의 상업 광고와 책의 맨 뒤에 작성된 광고 문구들, 그리고 서점이나 도서관 같은 곳에 부착했을 흔적을 지닌 중세 포스터와 광고 전단지가 발견되고 있다.

벽에 부착했던 흔적을 가진 포스터와 광고 전단지 

베리 공작의 아주 풍요로운 시간들

림부르크(Limbourg) 형제의 『베리 공작의 아주 풍요로운 시간들』(les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은 베리 공작의 풍요로운 절기 행사를 사실화 형식으로 자세히 묘사한 삽화가 그려져 있는 달력으로서 채식 필사본 시대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준다. 중세의 수도원에서 발달한 코덱스 출판 방식의 확산은 봉건 영주의 권력이 약화되고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세력이 정치 권력에 영향을 끼치고 중세 후반에 국왕이 강화되고 도시에 대학들이 형성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림부르크 형제의 작품들은 책이 중세 초기의 종교적인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과 함께 15C 중세 탐미주의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그가 남겨 전해지고 있는 작품들은 당시 필경과 채색 작업의 수준이 얼마나 예술적 수준이 높은 걸작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벽에 부착했던 흔적을 가진 포스터와 광고 전단지 
벽에 부착했던 흔적을 가진 포스터와 광고 전단지 
벽에 부착했던 흔적을 가진 포스터와 광고 전단지 

림부르크 형제는 삼형제였다고 한다. 헤르만(Hermann), 폴(Pol), 얀(Jan)인데 조각가였던 아놀드 반 림부르크(Arnold van Limburg)의 아들로서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부르고뉴 공국(Principality of Burgundy)의 궁정 화가이던 말루엘(Jean Malouel)의 조카이기도 했으며 아버지가 죽은 후 이 삼촌 밑에서 자랐다고 전해진다. 말루엘이 죽은 후 베리 공작을 위해 일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형제들은 1416년에 전염병으로 모두 죽었다고 전해진다. 미술사에서는 플랑드르 미술 (Flemish art)에 속하며 림부르크 형제들의 활동을 통해 당시 화가들이 채식 필사본 코덱스 제작자들이기도 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채식 필사본의 시대는 르네상스와 함께 폭발한 종이와 인쇄 기술의 혁신과 지식의 혁명에 의해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열리면서 사라져 간다.

플랑드르 미술은 문양직(文樣織)의 밑그림, 성서의 삽화, 제단화 등에 자연주의풍을 전개하였다. 프랑드르 미술의 화가들은 파리와 디종에서 활약하였고 고딕의 전통에서 나왔으면서도 생활과 풍토와 밀착된 소박하나 정밀한 관찰에 입각, 새로운 사실주의를 지향하여 그 후에 나타나는 플랑드르 미술의 참신함의 원천이 되었다고 평해지고 있다.
 
켈스의 비밀(The Secret of Kells)

중세의 필경과 책 제작 방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애니메이션 하나를 소개해드리면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켈스의 비밀(The Secret of Kells)>입니다.  

스물일곱살의 청년은 어둠의 세계를 빛의 세계로 바꾸어주는 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많은 책을 만들고 쓰고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실험하고 탐험하고. 때로는 길을 잘못 들어 어둠의 심연에서 헤매기도 하며 이십사년을 보낸다. 한장면 한장면이 예술 작품 같아서 눈을 뗄 수 없으면서도, 이 애니메이션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용감하게 세상을 해쳐나가려는 모두에게 용기를 준다. 

톰 무어(Tomm Moore), 노라 트메이(Nora Twomey) 감독, 프랑스와 벨기에와 아일랜드가 공동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12살 소년 수도사 브랜든이 전설의 책을 만들기 위해 고난 속의 탐험을 하는 내용이다. 유럽 애니메이션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공병훈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문예커뮤니케이션학회 학회장.서강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앱(App) 가치 네트워크의 지식 생태계 모델 연구에 대한 박사논문을 썼다.주요 연구 분야는 미디어 비즈니스, PR, 지식 생태계이며 저서로는 『4차산업혁명 상식사전』 등이 있다.

hobbits84@gmail.com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