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2) / 구수한 사투리-신달자의 ‘오월 성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2) / 구수한 사투리-신달자의 ‘오월 성묘’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9.23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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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2) / 구수한 사투리-신달자의 ‘오월 성묘’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2) / 구수한 사투리-신달자의 ‘오월 성묘’

  오월 성묘

  신달자

  
  아요! 여기 좀 보레이 
  내사마 우짜믄 좋을지 모르겠능기라
  우째 가슴이 털컹 내리안진 것처럼
  아요! 니도 생각해봐라
  세월도 갈 만큼 갔능가 싶는데
  내 가슴 무슨 벌거지가 막 파먹고 있능기라
  내 가슴이 얼매 안 남은기라
  우리 어머이 간 지 딱 서른 해
  주전자 띠까리만이나 낮아진
  무덤 앞에 털썩 주저앉아
  나 늙은 가시나로 울어싸봤자 머하겠노
  내 너덜거리는 근심 싱킨다고 어머이 모르겠나
  어머이 목소리 같은 아까시야 냄새가 어깨를 웅켜잡고 땡기는
  오월 한나절
  눈물 주무이만 차고 뽄때없이 늙는 딸년 꼴
  더는 보일 것이 없는 두디기 세월을
  그래 우짤끼고……

  * 벌거지: 벌레, 띠까리: 뚜껑, 싱킨다고: 숨긴다고, 뽄때: 모양, 두디기: 누더기 걸레. 

  —방언시집 『요 엄창 큰 비바리야 냉바리야』(서정시학, 2007)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2) / 구수한 사투리-신달자의 ‘오월 성묘’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신달자 시인의 고향은 경남 거창이다. 이 고장 사투리로 쓰지 않았다면 감동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화자는 어머니 작고 30주기를 맞아 묘소에 오랜만에 가보았다. 주전자 뚜껑만큼 낮아진 봉분을 보고는 울기 시작해 한참을 운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의 힘겨웠던 생애와 불가분의 관련이 있는 (거의 복사판일까?) 자신의 지난 삶이 한스러워 펑펑 우는 것이리라. 어머니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너덜거리는 근심 숨겨도 이 어미는 모르지 않는다. 딸년아, 네 고생도 참 어지간하구나. 그러나 어쩌겠니, 살아 있으니 또 열심히 살아야지. 이런 어머니의 목소리가 환청인 양 들려온다. 화자 어머니의 가슴을 파먹는 벌레는 땅속 관 안에 있는 벌레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 것이다. 파도 같았던 시대이거나 바람 같았던 남정네가 아닐까. 일제 강점기, 육이오, 피난, 가난……. 그렇게 살다 간 어미의 딸이라면 행복을 좀 누려도 좋으련만! 
  내 고모님의 아들은 할아버지, 즉 나의 고모부와 사이가 특별히 좋았다. 할아버지는 손자를 챙겨주고 손자는 할아버지를 받들고. 조카는 세상살이가 힘들 때면 할아버지 무덤 앞에 가서 한참 이야기를 하고 온다고 한다. 억울한 일, 힘겨운 일, 서러운 일을 다 이야기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지고 용기가 다시 솟구쳐 큰절 올리고 씩씩하게 산을 내려온다. 이것을 미신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다, 이 세상에는 안 계시지만 내 말을 들어주는 진정한 청자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무언의 대화로 할아버지는 손자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신달자 시인도 그 더운 날 한참 동안 무덤 앞에 앉아서 꺼이꺼이 울음으로써 근심 걱정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금 펜을 잡았을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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