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4) / 나무의 부활 - 김일두의 ‘고사목’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4) / 나무의 부활 - 김일두의 ‘고사목’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9.2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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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4) / 나무의 부활 - 김일두의 ‘고사목’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4) / 나무의 부활 - 김일두의 ‘고사목’

  고사목

  김일두


  청록색 연한 빛깔이
  드리워진 어느 계곡에  
  고려장 당한 듯 
  길게 드러누운 고사목

  천형을 받고 있는 듯
  칡넝쿨에 온몸이 묶여
  일어설 줄 모르고
  온전하지 못한 사월을 
  맞고 있다.

  나무들은 속살거리며
  새싹을 틔울 때
  거칠게 갈라진
  고사목 사타구니로
  비집고 들어온 햇살

  그곳엔 어느덧
  초록물이 흐르고
  어린 참나무 한 그루
  힘겹게
  그러나
  힘차게
  고사목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공간시낭독회』(2019년 9월)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4) / 나무의 부활 - 김일두의 ‘고사목’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숲길을 걷다보면 종종 고사목을 본다. 나무들 사이에 나무가 죽어 있으므로 그냥 두는 수밖에, 사람도 나무도 어쩔 도리가 없다. 사람으로 치면 집에 유골함을 두고 사는 격이랄까. 그런데 고사목은 산 나무와 잘 어울려 그냥저냥 지내고 있다. 혹시나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쓰러진 고사목에서 새 가지가 자라는 경우가 있다. 씨가 나무에 날아와 껍질 속에다 뿌리를 내린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의 묘미는 제일 마지막 연에 있다. 어린 참나무 한 그루가 “힘겹게/ 그러나/ 힘차게/ 고사목을 일으켜 세우는” 광경 묘사에서는 비장미가 느껴진다.  
  나무도 나무끼리 생존경쟁을 한다.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살아남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메타세쿼이아가 왜 키가 큰지 아시는지? 태양을 향해 깨금발을 계속하다 보니 키가 크게 된 것이다. 옆의 나무가 뭐라고 해도 해를 향하며 뜻을 안 굽히는 지조 높은 참나무! 설사 그 나무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다. 목수는 나무가 죽어 장기를 자기한테 기증하면 이때다 하고는 뚝딱뚝딱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 죽어서 비로소 제품이 되는 나무! 죽은 나무의 부활이 성스럽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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