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5) / 현대인에게 몸이란 - 차창룡의 ‘헬스클럽에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5) / 현대인에게 몸이란 - 차창룡의 ‘헬스클럽에서’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09.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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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5) / 현대인에게 몸이란 - 차창룡의 ‘헬스클럽에서’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65) / 현대인에게 몸이란 - 차창룡의 ‘헬스클럽에서’

  헬스클럽에서
  
  차창룡


  우리의 몸은 부처이니
  공양하라 생로병사라는 네 마리의 뱀에게
  달려가라 트레드밀*이여
  정진하라 자전거의 페달을 끊임없이
  법法의 페달을 돌려라
  자전거는 결코 가지 않을 터이니
  자전거를 타지 못할지라도 안심하라
  우리들 몸의 허물이 벗겨져서
  새로운 허물이 자리 잡을 것이니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못생긴 프시케여
  어서 버터플라이**에 오르라
  애벌레는 번데기 되고 번데기는 나비 되리라
  프시케는 꿈을 꾸고 있다
  달걀 같은 가슴을 찢고 수많은 나비떼가 날아오르는 꿈
  쇠로 된 바퀴를 들어올리는 개미들이여
  굴러가지 않는 바퀴에 감사하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라 구르지 않는 바퀴가 곧
  법륜(法輪)이니 구르지 않는 바퀴를 끊임없이 굴리다 보면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드는 것이 그것이니라 그리하여
  몸을 혹사하는 것이 몸을 경배하는 것이니라
  달팽이들이여 인욕(忍辱)의 정신으로
  하늘에 걸려 있는 나뭇가지들을 잡아당기고 잡아당기련
  자신의 몸에게 절하고 자신의 몸을 번쩍 들어올리련
  두 손으로 두 발을 잡고 몸속에 허공을 집어넣으련
  이제 산이 없어도 등산할 수 있고
  강이 없어도 도강할 수 있는 경지가 펼쳐질 것이니
  육륜(肉輪)을 떼구르르 굴려보련
  몸속에서 산이 솟아오르고 강물이 흐르지 않느냐
  아 아름다운 몸의 숲에서 몸의 바다에서
  지수화풍이라는 네 마리의 뱀이
  혀를 날름거린다 개구리들이여
  달려라 돌려라 들어올려라
  밀어라 당겨라 한껏 인상을 찌푸려라
  이런 동작은 몸의 우주***를 개벽시키기 위한
 지극히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동작이니
 이런 동작을 반복하면 언젠가는 죽을 수 있다

  * treadmill:흔히 러닝머신(running mahine)이라고 하는 회전식 벨트 위에서 달리는 운동기구. 옛날 감옥에서 죄수에게 징벌로 밟게 했던 바퀴이자 다람쥐 따위가 돌리는 쳇바퀴, 그리고 단조롭고 따분한 일이라는 뜻도 있다.

  ** butterfly:나비처럼 생긴 운동기구로 가슴 근육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플라이(fly)라고도 한다. butterfly는 ‘나비’ 외에 변덕스러운 사람, 변덕쟁이, 허영꾼, (특히) 경박한 여자 등의 뜻도 있다.

  *** 몸의 우주:소설가 박상륭의 용어.

  -『나무 물고기』(문학과지성사, 2002)

 

  <해설>
  
  아파트 단지 내에 헬스클럽이 있어 두 해 다녔는데 이사 오면서 그만두었다. 수많은 현대인이 살을 빼거나 운동부족을 메우려고 트레드밀을 달려가고, 자전거 페달을 돌리고, 버터플라이에 오른다. 그러나 나비와 개미와 달팽이 같은 것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 모습 그대로 움직이고 있다. 뱀과 개구리들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자못 시니컬한 어조로 인간의 인위적인 몸짓과 뭇 생물의 생래적인 몸짓을 대조하고 있다. 몸에 대한 잠언들, 예컨대 “우리의 몸은 부처이니/ 공양하라”, “몸을 혹사하는 것이 몸을 경배하는 것이니라”, “육륜(肉輪)을 떼구르르 굴려보련/ 몸속에서 산이 솟아오르고 강물이 흐르지 않느냐”는 것들은 몸만들기에 골몰하는 인간을 풍자하기 위함이 아닐까. 시인의 몸 담론은 마지막 3행에서 마무리된다. “이런 동작을 반복하면 언젠가는 죽을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못생긴 프시케”와 대비된다. 못생긴 프시케는 신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몸매 유지(혹은 고치기)에 골몰하는 현대인일 것이다. 이렇게라도 건강을 지키겠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실 현대인은 잘 걷지도 않는다.  
  시인은 이 시를 쓸 때만 해도 불가에 귀의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도 여행을 하고 와서 2010년부터 속세를 떠나 동명스님이라는 법명을 갖고 절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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