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주례사 비평 걷어내고 시와 비평이 길항할 수 있는 문예지 만들겠다. 계간 문예지 ‘포지션’ 차주일 주간과의 만남
[인터뷰] 주례사 비평 걷어내고 시와 비평이 길항할 수 있는 문예지 만들겠다. 계간 문예지 ‘포지션’ 차주일 주간과의 만남
  • 육준수 기자
  • 승인 2019.09.27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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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 = 육준수 기자] 우리 문단에는 ‘주례사 비평’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말이 떠돈 지 오래다. 주례사 비평이란 부부의 평온과 안녕을 바라는 결혼식 주례사처럼 듣기 좋은 말로만 점철된 문학 비평을 이르는 말이다. 이는 비평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거나 날카롭게 작품을 분석하는 대신 뻔하고 듣기 좋은 소리나 늘어놓게 된 현 상황을 시사한다. 재밌는 점은 최근 결혼식에서도 주례는 사라지는 추세라는 것이다. 뻔하고 지루하며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주례사가 쏙 빠진 ‘주례 없는 결혼식’이 유행하는 지금, 문단에 ‘주례사 비평’이 횡행하는 것은 대단히 아이러니하다.

주례사와 같은 문학 비평은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학판에서의 평론은 첨예하게 의견이 부딪히고 담론이 생산되는 장이다. 듣기에 껄끄럽더라도 작가의 작품을 더 낫게 하고 문학적 안목을 넓혀주는 비판이야말로 도움이 되는 비평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문학의 미래가 엿보인다던가, 어떤 대단한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는 식의 말이 해당 작품에 딱 들어맞을 때도 있겠지만, 낯이 뜨거워지는 미사여구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이러한 주례사 비평이 문학의 발전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시와 비평이 길항해야 한다고 주창하는 이가 있다. 2003년 현대문학을 통해 작가로 데뷔하여 시집 “냄새의 소유권”과 “어떤 새는 모음으로만 운다”를 펴냈으며, 계간 문예지 ‘포지션’을 운영하고 있는 차주일 주간이다.

차주일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차주일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차주일 주간은 약 7년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근무하여 문예지 지원 제도의 장단점과 실제 운영 방식, 문예지의 특징을 파악하고 있다. 포지션은 예술위 실무자이자 시인으로서 느낀 문예지의 문제점에서 벗어나기 위해 2013년에 창간한 계간 문예지이다. 현재 통권 26호까지 출간되어 있으며 매 권 시인 집중조명, 신작 시 읽기, 시인의 산문, 비평, 블라인드 시 읽기 등의 코너를 운영한다. 조재형, 김진돈, 김지명 시인이 차주일 시인을 찾아와 만들었으며 현재 김연종 시인이 회장으로 있는 ‘포지션 문학회’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차주일 주간이 문예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일까. 차 주간은 예술위 문학 분과를 담당하던 시절 다양한 종류의 민원과 맞부딪혔으며 이 과정에서 현재 문예지 시스템 내에는 소외된 문인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문학적 순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약 삼십여 종의 문예지를 살펴보면 사실상 오백 명 내외의 시인을 ‘돌려막기’하는 것”을 확인했다. 허나 이 오백 명의 시인이 우리 한국 시문학을 대표하고,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실천하는가를 고민해보며 큰 의문을 느꼈다. 활동하고 있는 오백여 명의 시인 중에는 ‘좋은 작품을 쓰는 사람’이 가장 많긴 했으나 다음으로 많은 유형이 ‘여러 인간관계를 잘 하는 사람’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차 주간은 “이런 문단의 현실에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씁쓸하지만 자존심 상해가면서 문학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며 “특정 단체의 헤게모니와 특정 개인의 권력을 패권으로 사용하는 것을 약화하고 이런 것들을 달리 해보자는 생각”으로 포지션을 창간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문예지와 비평이 권력처럼 쓰이는 상황을 타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차주일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차주일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문단의 문제를 해소하고 시와 비평이 길항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차주일 주간은 무엇보다 ‘비평 영역의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주례사 비평을 걷어내야 비평을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시켜 과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으며, 시인 역시 비평을 밑거름 삼아 서로를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주일 주간은 “비평이라는 기능은 스승의 뜻을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비평은 “앞으로 나아갈 길잡이가 됨과 동시에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렌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문학을 수월성 있게 향상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주 단선적이지만 아주 중요한 비평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차 주간은 비평 활동이 약화되면 문학을 보는 렌즈가 혼탁해져서 문인들이 자신의 작품을 잘 들여다보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차 주간은 많은 문예지의 비평은 “특집으로 신작 시를 받고 이 시에 대해 한 명의 비평가가 주례사 비평을 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말한다. 그렇다 보니 이름이 덜 난 시인이 집중조명 코너에 등장하면 “이것은 무슨 커넥션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산다고 이야기했다. 차 주간은 이러한 주례사 위주의 비평은 문학적 기능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며 포지션에서는 “청탁할 때에도 문학 정론에 입각하며 주례사 비평을 지양”하는 방식을 취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포지션에서는 신작 시에 대한 비평을 독특하게 진행하고 있는데 바로 ‘블라인드 시 읽기’이다. 이 코너는 작가를 공개하지 않은 신작 시 다섯 편에 비평가 네 명이 각자의 문학정론에 맞추어 비평하는 섹션으로 차 주간은 “아주 피가 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작가를 감추고 비평을 하면 쓴소리가 나오기 마련이므로 해당 코너가 “시와 비평이 길항할 수 있는 자리를 지켜나가고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다 생각한다.”는 것이다.

차주일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차주일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또한 포지션은 ‘포지션 문학회’와 함께 매해 ‘포지션 콜로키엄’ 행사를 개최하여 학술적인 논의를 나누고 담론을 키워나가고 있다. 작년 1회 콜로키엄에서는 영미 시문학의 대가 양균원 대진대 교수를 초빙하여 T.S 엘리엇을 비롯한 영미 시 문학의 세계를 살펴봤으며, 지난 6월 29일에 열린 제2회 콜로키엄에서는 시와 비평의 위기를 주제로 담론을 확장 시켰다. 더욱이 각 콜로키엄은 일회성 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 프로젝트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1회 콜로키엄은 작년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분할 연재되었으며, 영미 시 함께 읽기 프로그램 등으로 발돋움했다. 2회 콜로키엄 역시 100여 명의 문인이 참여하여 시와 비평의 현재와 위기를 논하는 담론의 장이 되었을 뿐 아니라, 별도의 프로그램을 염두에 두고 있다. 차주일 주간은 이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와 비평을 양면으로 강화하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야기를 마치며 차 주간은 포지션이 “좋은 정신과 따뜻한 감정을 나누고 실력 있는 작품과 문인은 견인하여 부각”하는 데에 보탬이 되길 바란다며 “시와 시인이 존경받는 사회와 문단을 만들어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지를 환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런 차원에서 차 주간은 ‘등단’을 작가의 기준으로 삼고 우대하는 문화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짚었다. ‘등단’하지 않은 이들 중에도 좋은 시를 쓰는 작가가 다수 있으며, 실제로 현 젊은 세대는 등단하지 않고도 괄목할 성과를 보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차주일 주간은 “포지션은 그런 분들 또한 지원할 방법이 있다면 지원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차주일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차주일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주지했듯 주례사로 전락한 비평은 문학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차주일 주간이 시도하는 시와 비평이 길항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는 작업이 더욱 유의미하게 느껴진다. 시와 비평이 서로를 존경하고 엇나가지 않도록 견제하며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힘을 북돋아진다면 우리 문학의 미래는 매우 밝을 것이다.

차주일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차주일 주간. 사진 = 육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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