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72) / 개천절에 부를 노래 - 이육사의 ‘광야’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72) / 개천절에 부를 노래 - 이육사의 ‘광야’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0.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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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72) / 개천절에 부를 노래 - 이육사의 ‘광야’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72) / 개천절에 부를 노래 - 이육사의 ‘광야’

  광야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육사시집』(서울출판사, 1946)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72) / 개천절에 부를 노래 - 이육사의 ‘광야’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해설>

  오늘은 우리나라의 국경일인 개천절이다. 기원전 2333년 이날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하는데 이것이 고대의 역사인지 건국신화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위서(魏書)』와 우리나라의 『고기(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에 나오니 일단 믿어보도록 하자. 

  개천절에 가장 어울리는 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정인보 작시의 개천절의 노래보다도 내게는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로 시작되는 이 시가 개천절에 더 어울리는 시라고 생각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시에 대한 내 해설은 사족이 될 테니 생략한다. 

  시인의 유일한 혈육 이옥비 여사를 안동의 이육사문학관에서 뵈었을 때 해주신 말씀이 기억난다. 아버지의 얼굴 모습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참 만에 귀가한 아버지를 새벽에 급습한 일본인 순사들이 포승줄로 묶어 잡아가는데 용수를 씌우고 잡아가서, 용수를 씌운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하셨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옥살이는 취조와 고문이 함께 행해져 지긋지긋했을 탠데 이육사는 열 번 넘게 투옥되면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문약(文弱)이라는 말이 이육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아무튼 단기 4352년의 개천절일 오늘, 단군의 건국 이래 이 나라를 지키고자 애썼던 선열의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려본다. 그와 함께 일본군대에 위안부로 끌려가서 고초를 겪은 분들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안 나타나기를 빌어본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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