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리빛
말하려고 했다. 오래된 부엌에 대해,
그러니까 나만의 작은 세계가 눈에 띄지 않게 불어나는 방식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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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문고리를 돌려보았다. 어둠 속에 손잡이만 남을 때까지. 창에 비친 얼굴들이 잠들 때까지. 누군갈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엔 내가 더 많아진 기분이 들어.
마지막이 아니어도 느끼곤 했다. 반만 남은 뒷모습이 잦아들다가 더욱더 흐려지다 순간 반짝이다가, 온갖 빛 온갖 소음에 섞여 코너 밖으로 조금씩 밀리던 오후. 나는 그 자리에 벽돌 같이 가만히 서서 눈앞의 도시를 바라보곤 했어.
이상하지.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 오래 살았었는데. 가게도 아는 얼굴도 다 가짜 같았다. 그럴 때면 봉합되듯 미끄러지듯, 익숙하던 보도가 교차로들이
사잇길이 평행 우주 속이 돼.
거기선 다른 내가 배웅해준다. 돌아보지 않아도 손 흔들면서. 반짝임에 시린 눈을 견뎌내면서.
그런데 우주에도 시한이 있다면, 별안간 테두리가 깨어진다면, 진짜 사람만 튕겨져 나온다면 어떻게 될까. 열기도 낯선 공기도 가시지 않고 우주는 자꾸자꾸 많아만 져서, 나는 그 안에 하나씩 들어찬 나를 식료품처럼 한가득 품에 안고 돌아와. 토마토 하나, 감자 둘, 샐러리 하나…… 식탁에 일렬로 내려 놓다가 부딪치지 않으려고 전등을 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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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은 이런 식으로 좁아져가고. 창유리는 나와 함께 곳곳에 있다.
시작노트
어떤 실수와 어떤 슬픔에도 곁에 있어주는 빛을 생각합니다.
토마토 감자 샐러리 방 유리.
쓰기와 살기와 사랑하기가 얼마나 가까운 동사들인지 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김연덕 시인.
2018 대산대학문학상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