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 시인 특집] 좋은 시 17. 해가 세 번 뜨는 디스토피아 - 조시현 시인
[신인 시인 특집] 좋은 시 17. 해가 세 번 뜨는 디스토피아 - 조시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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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0.1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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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7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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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페이퍼에서는 데뷔 5년 미만의 신인 시인들 중, 작품이 뛰어난 시인을 선정하여 미발표 신작 시와 시에 관한 짧은 단상, 에세이 등을 연재합니다. 시인들의 시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뉴스페이퍼에서는 데뷔 5년 미만의 신인 시인들 중, 작품이 뛰어난 시인을 선정하여 미발표 신작 시와 시에 관한 짧은 단상, 에세이 등을 연재합니다. 시인들의 시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해가 세 번 뜨는 디스토피아*

 

  달도 가짜라는 소문 들었어
  그저 조명등일 뿐이지만
  그래도 네가 편안한 밤 보내면 좋겠다
  도죠 요로시꾸 셰셰

  반대합니다 반대합니다 반대합니다
  거대한 스크린에 나타난 아저씨가 자꾸만 반대한다
  무엇에?
  반대에

  야 또 해 뜨잖아 더워 죽겠는데 오늘 대체 몇 번째야
  뭘 바라는 거야 우리한테
  저 따위로 큰 걸 누가 만든 거야 왜
  문명 어떡해 문명

  기도합시다
  힘을 모읍시다
  국제적 재난 상황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서로를 감싸고 보호합시다
  하나님 다 안배하신 뜻이 있어서

  아저씨는 닥쳐
  안 그래도 다 좆같았어
  좆같은 건 죽을 때가 됐어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오지상을 쳐부수자
  규칙 법칙 혁명
  그러니까 박사님
  지금까지 지구가 이렇게 이상했던 게
  다 저 태양에서 전자파가 나왔기 때문이란 거죠?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모두가 저마다의 최선을 다할 뿐인데
  노력하는데
  이런 세계가 나쁠 리 없잖아?
  이유 없이 죽일 리 없잖아?
  이유 없이 죽진 않잖아?
  누군가 발 뻗고 자는 동안
  누군가는 죽을 리가?

  알겠냐 오지상아
  뭘 봐 시발새끼야 배때기를 갈라버린다

  미친 태양
  미친 지구
  미친 미친 미친 사람들

  이렇게 섬세하게 엉망일 리 없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어
  역사를 공부했어
  공전을 공부했어
  사냥했어
  왜?

  명령기계
  예민한 오르골
  장인이 만든 시계
  멋진 멋진 멋진 우주

  반대합니다 반대합니다 반대합니다
  무엇에?
  미친 오지상

  니네들이 만든 미친 세카이

  암탉이 아홉 번 울고 알을 세 개 낳으면
  사람은 세 개의 계란 요리를 만들어
  세 번의 아침을 먹겠지

  암탉이 울면 망한다면서
  암탉 덕분에 먹고 살면서

  아침이 많아져서 좋아
  밤이 많아져서 좋아
  어디서나 기쁜 사람들

  규칙을 버리지 못해 지구를 떠나거나
  태양이 뒤집어져도 변하지 않거나
  하루 세 번 산책하는 강아지

  멋져 세카이 사랑해 세카이

  밤이 되었습니다
  마피아가 죽을 사람을 고릅니다
  의사가 살릴 사람을 고릅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경찰이 마피아를 잡지 못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선량한 시민이

  더 자주 더 많은 밤이 오고
  어차피 밤을 넘기는 법 이야기 밖에 나는 몰라서
  천일동안 계속할 거야
  밤에도 아침에도 계속할 거야
  내일은 더 멋진 시를 들려줄게
  모레는 더 더 

  더 많이 더 자주 밤이 와도
  우리를 구했던 것은 언제나 이야기
  펼치고 펼치면 달에는 가겠지

  스위치를 끄고 어둠 속으로 사라질 거야 
  다시 아침이 오기 전에
  깨지기 쉬운 밤
  더 더 더 많은 밤

  어차피 난 맨날 외계인 같았어

  그래서 이 시를 멈출 수 없어

 

  * 2444년. 태양이 고장 났다. 태양이 수명이 다 된 형광등처럼 미친 듯이 번쩍여대기 시작한 것이다. 2019년 처음 관측된 별인 양조성 근처에 대기하던 조시현 박사의 태양계 관측로봇 파랑새가 태양 가까이 접근하였고 마침내 태양은 거대 기계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지구의 하루 역시 철저히 조작된 것이었다. 며칠 뒤 마치 누군가가 갈아 끼운 것처럼 태양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지구인들은 기계의 통제를 받아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것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고, 결국 지구를 이탈하기로 마음먹었다. 태양을 설치한 자를 찾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 설치자의 의도를 알 수 없어 지구인들은 불안에 빠졌다. 정체가 발각된 태양은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이십 사 시간 세 번 떠오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태양을 미친 기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시간은 망가졌다. 지구를 떠나는 대신 태양을 터트리자고 주장하는 축도 있었다.

 

시작노트

왜 쓰냐고 나에게 자주 묻는다. 어떤 것은 대답이 되고 어떤 것은 되지 않는다. 다만 계속 싸우는 사람이고 싶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쓰고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산다고 적은 적 있다. 더 낫고 더 좋은 게 뭔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돌아봤을 때 그래도 싸우고 있었다고, 그 안에서 진실했다고, 실패했거나 실수했을지언정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조시현 작가.

2018년 실천문학 소설, 2019년 현대시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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