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0) / 에로틱한 젤리 - 채수옥의 ‘닥터, 젤리’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0) / 에로틱한 젤리 - 채수옥의 ‘닥터, 젤리’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0.1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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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0) / 에로틱한 젤리 - 채수옥의 ‘닥터, 젤리’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0) / 에로틱한 젤리 - 채수옥의 ‘닥터, 젤리’

  닥터, 젤리

  채수옥


  식후 30분, 젤리를 줄까
  달콤한 태도
  말랑말랑한 환심과 파국을 넣어줄게
  크게 아 해봐

  젤리로써 젤리니까 젤리하게
  미끄러지는 언덕처럼

  키스하는 연인들처럼

  쫀득거리는 관계들을 건네줄게
  살살 궁글려 봐
  까다로운 문장처럼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젤리, 젤리의 마음으로
  친밀하게
  공기처럼 부풀어 올라

  깍지 낀 과일들의 행진처럼

  쿵쾅쿵쾅 혓바닥을 울리며
  너에게 미끄러져 들어갈게

  젤리를 먹고, 
  젤리와 함께 곧 사라지게 될 달콤함에
  깊이 빠져들게 해줄게

  병색이 짙어질 때까지
  아

  —『모든 시』(2019년 가을호)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0) / 에로틱한 젤리 - 채수옥의 ‘닥터, 젤리’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독자에 따라서 다르게 읽혀질 소지가 꽤 큰 시가 아닐까. 몸과 몸이 만나 이룩하는 어떤 세계, 즉, 나는 이 시를 에로티시즘의 극치로 읽는다. 젤라틴과 과즙으로 만드는 젤리라는 이름의 서양과자를 ‘먹는 것’으로만 해석한다면 “쿵쾅쿵쾅 혓바닥을 울리며/ 너에게 미끄러져 들어갈게”라는 구절이 잘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키스하는 연인들처럼”은 힌트이고 이 구절이 답인 것 같다. 자,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닥터 젤리일까. 
사랑이라는 것이 치유 효과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인간의 삶에 필요한 것이 의식주만일 수는 없다. “달콤한 태도”, “말랑말랑한 환심”, “쫀득거리는 관계”, 그리고 친밀함과 달콤함이 필요하다. 시인은 우리에게 얘기한다. 우리 모두 병색이 짙어질 때까지 사랑을 해야만 한다고. 일본에서는 히키코모리(引き籠もり)라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성인 자녀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관계의 단절, 인간을 얼마나 무력하게 하는 것인지. 

  젤리는 사랑을 상징한다. 달콤하고 말랑말랑하고 쫀득쫀득하니까. 입 안에서 살살 궁글려 볼 수 있으니까. 이제는 연인끼리 선물을 하는 날, 이 시를 읽은 독자는 젤리를 사서 선물할지도 모르겠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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