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지리아와 한국,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저항을 위한 글쓰기”를 주제로 마주 보다
나이지리아와 한국,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저항을 위한 글쓰기”를 주제로 마주 보다
  • 김보관 기자
  • 승인 2019.10.11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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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저항은 말과 언어에서 시작된다.”
나이지리아의 민중 시인 니이 오순다레(Niyi Osundare) [사진 = 김보관 기자]
나이지리아의 민중 시인 니이 오순다레(Niyi Osundare) [사진 = 김보관 기자]

[뉴스페이퍼 = 김보관 기자] 지난 8일 서울국제작가축제의 ‘작가, 마주보다’ 첫 번째 프로그램이 성황리에 개최됐다. 나이지리아의 민중 시인 니이 오순다레(Niyi Osundare) 작가와 한국의 민중 시인 백무산 작가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살림터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사회를 맡은 송경동 시인은 두 작가를 소개하며 행사를 시작을 알렸다.

사회를 맡은 송경동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사회를 맡은 송경동 시인 [사진 = 김보관 기자]

현대 사회에서 작가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사회의 암흑기 혹은 거대 권력 앞에서의 ‘저항 정신’은 작가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이번 대담에 참여한 니이 오순다레와 백무산 작가는 모두 저항 정신과 사회 참여 정신을 지니고 글을 매개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에 동참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나이지리아와 한국은 식민지배, 쿠데타, 군사정권, 내란 등의 공통적인 역사를 갖고 있어 관련한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작가, 마주보다 “저항을 위한 글쓰기” 현장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니이 오순다레는 시인이자 극작가, 수필가 겸 학자이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의 대표 민중 시인으로 열여덟 권의 시집 외 다수의 저작을 이어오는 동시에 교육자로서 활동해왔다. 뛰어난 작품들을 통해 나이지리아 작가협회 시부문상, 영연방 시부문상, 아프리카 최고 권위에 빛나는 노마상, 우수한 창작 및 지적 공로를 기리는 나이지리아 공로훈장 등을 받은 바 있다. 

백무산 시인은 국내 노동시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자본의 가치를 넘어서는 인간 근원적 부분에 관한 질문을 던지며 무수한 시를 남겨왔다. 그간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임화문학상, 대산시문학상 등 무수한 상을 받으며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작가, 마주보다 “저항을 위한 글쓰기” 현장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작가, 마주보다 “저항을 위한 글쓰기” 현장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각 작가의 시 낭송과 함께 시작된 대담에서 니이 오순다레 작가는 “말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전쟁을 선포할 수도 있고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통해 언어가 가진 힘을 강조했다. 낭송된 시 “말씀의 기도(Invocations of the Word)”는 이러한 작가의 생각을 담은 시다.

백무산 작가는 ‘무장지대’와 ‘봄날에 꽃을 들고’를 낭송했다. 그는 “우리는 서울에서 불과 2km 떨어진 군사분계선을 비무장지대라고 부른다. 평화로워 보이는 명칭과는 달리 살벌한 구역이다.”라며 “그렇다면 무장지대란 무엇인가. 비무장지대의 안쪽, 우리가 살고있는 땅을 말한다.”라고 설명했다. 백무산 작가는 “국가라는 것은 결국 무장으로 점령한 땅이다.”라고 덧붙였다.

작가에 따르면 식민지배를 겪은 대부분 나라는 쿠데타와 군사 독재, 내란을 겪곤 한다. 우리나라 역시 이 같은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나이지리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때 중요한 것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백무산 작가는 끊임없이 해당 질문을 되묻고 ‘국가’가 리바이어던과 같은 괴물이 되지 않게 경계해야 한다고 첨언했다.

한국의 민중 시인 백무산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한국의 민중 시인 백무산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이후 진행된 본격적인 대화에서는 총 세 가지 질문이 던져졌다. 송경동 시인은 한국과 나이지리아 역사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며 동족상잔의 비극과 수많은 민간 희생자들을 언급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시인들의 창작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두 시인을 통해 엿들을 수 있었다.

백무산 작가는 “앞서 낭송한 ‘무장지대’의 말미에 나오는 ‘출구를 알 수 없다’는 문장처럼 나 또한 정확히 출구를 알 수 없었다.”는 말로 운을 뗐다. 그는 “우리의 성장기는 사실 ‘사회’가 없는 국가에서 지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로운 시민이 아닌 국가의 부속물로서 존재했다.”며 “1986년 민주화 운동 이후 시민사회가 조금씩 형성되고 국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육, 방송, 언론의 통제를 비롯해 문학과 예술 역시 검열되고 억압당해온 역사를 설명했다.

니이 오순다레 작가(좌)와 백무산 작가(우) [사진 = 김보관 기자]

그는 “시를 통해 출구를 찾아가는 것 같다.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는 말을 남기며 저항이 필요했던 시기 문학과 현재의 문학의 역할을 상기했다. 그의 회상에 의하면 시의 전성기라고 불리던 80년대 문학인들은 독재 정권의 불의에 맞서 선두에서 싸워왔다. 백무산 작가는 “그것은 단순히 작가들의 양심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문학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다.”라며 “저항은 우리 언어 활동 그 자체다.”라고 답했다.

그간의 저항이 물리적 억압으로부터의 극복이었다면, 이제는 은밀히 침투한 폭력과 권력에 맞서 언어 활동 자체가 저항으로서 자리해야 한다는 게 작가의 의견이다. 백무산 작가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 말할 수 없는 것, 말해서는 안 되는 것 사이에 권력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며 이전에 싸워온 민주화 운동과는 다른 모습으로 저항이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나이지리아의 민중 시인 니이 오순다레(Niyi Osundare) [사진 = 김보관 기자]

니이 오순다레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침범을 당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건너왔다. 이런 환경에서 저항은 필수 불가결한 행위이다. 그는 “나이지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자라던 시절, 아프리카는 잔혹하고 추하고 원시적이라고 교육 받았다. 침략자들, 우리를 점령한 사람들이 아프리카의 이야기를 독점했다”라며 “사냥 이야기를 사냥꾼이 하게 되면 쫓기는 사슴은 항상 불리한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이야기는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는 말로 자신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기록하고 논하는 일의 중요성을 짚었다. 

2006년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를 떠올리며 한국과 나이지리아는 ‘민주화에 대한 투쟁 언어’에 대한 존중이 공통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니이 오순다레는 “예술의 형태나 형식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텅 빈 유리병도 그 모양이 아름다울 수 있지만,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비유를 들며 예술의 형식과 내용 간에는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필요하다고 설파했다. 문학 이론가이기도 한 그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이지리아의 민중 시인 니이 오순다레(Niyi Osundare) [사진 = 김보관 기자]

이처럼 사회에 관심이 많은 두 작가가 최근에 가장 열정적으로 주목하거나 주력하고 있는 저항의 대상이나 주제에 관한 이야기도 오갔다. 니이 오순다레 작가는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는 너무도 많다.”며 석유 문제, 부와 권력의 불균형성, 이주민과 외국인에 대한 배제 등을 꼽았다.

그는 과거 ‘정치적 시인’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졌을 때도 있었지만, “정치적이지 않다는 건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과 같은 뜻”이라며 억압에 저항하고 맞서는 과정은 필수적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작가가 과거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부정의에 대항한 이유일 것이다. 니이 오순다레는 “세월이 갈수록 새로운 도전과제가 등장하고 있다.”는 말을 통해 싸움을 현재진행형임을 이야기했다.

행사 종료 후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두 작가 [사진 = 김보관 기자]

백무산 작가는 현재 서울, 한국 상황을 언급하며 ‘광장’의 의미를 되짚었다. 그는 “광장은 약자나 소수자가 저항하는 공간이다.”라며 기득권 세력 또는 권력자가 광장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어쩌면 우리는 광장을 잃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 우리는 한 시대의 정점에 와있고 이 시대의 정점에서부터 다른 사회가 펼쳐질지도 모를 일이다.”라는 말을 전했다.

사회를 맡은 송경동 시인은 “미래의 평등과 평화를 위한 광장이 훼손되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말로 해석된다.”라며 광장은 우리에게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근본적 사유임을 지적했다.

현장을 찾은 각국의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현장을 찾은 각국의 사람들 [사진 = 김보관 기자]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이 세계적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 시점에서 시의 역할이 논의되기도 했다. 근래 수많은 정보와 언어의 홍수 속에서도 여전히 사회적 빈곤과 극심한 소외, 불안이 동반되고 있다.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혼돈과 부정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시와 문학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백무산 작가는 “사회의 혁명적 변화는 무력이 아니라 언어로 이루어져 왔다.”며 통신과 기술의 발달로 언어에 대한 모든 금기가 소멸되하시피 한 현재 횡행하는 거짓 너머의 진실을 지켜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는 “시가 어떤 시대를 선도하는 시간은 지났다.”는 생각을 밝히며 “진실에 가까운 언어, 언어의 생태화에 시가 뒷받침하고 교류할 수 있길 바란다.”는 마음을 내비쳤다. 니이 오순다레 작가는 기술의 발전이 역으로 인간관계와 공동체주의의 부재를 야기했다며 사람들의 연민과 공감 의식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답변을 전했다.

작가, 마주보다 “저항을 위한 글쓰기” 현장 모습 [사진 = 김보관 기자]

이날 지구 반 바퀴 정도의 거리를 딛고 만난 두 작가는 포옹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멀리 떨어진 국가에서도 서로 공감대를 찾으며 지역에서 세계로, 개인에서 공동체로 나아갈 글쓰기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행사를 찾은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메모를 하며 작가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세계의 작가들과 국내 작가들이 만나 다채로운 대화를 이어갈 ‘작가, 마주 보다’ 프로그램은 오는 12일 토요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여성의 시선”, “소시민의 힘”, “시와 삶”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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