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1) / 돼지의 운명 - 이창규의 ‘돼지가 하늘을 본날’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1) / 돼지의 운명 - 이창규의 ‘돼지가 하늘을 본날’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0.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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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1) / 돼지의 운명 - 이창규의 ‘돼지가 하늘을 본날’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1) / 돼지의 운명 - 이창규의 ‘돼지가 하늘을 본날’

  돼지가 하늘을 본 날

  이창규


  가끔씩 여물통에 헛것처럼 뜨곤 하던
  별과 달 보겠다고 우겨본 적 없는데 
  사나흘 몰린 입맛도 회가 동한 잔칫날

  네 활개 각을 뜨고 불판에 누워서야
  절절히 익어가는 노을 한 점 보겠거니 
  어르고 눙친 세월은
  이, 저승 길목이네

  까짓것 별이 뜨고 달이 진들 소용없지
  천형 같은 지상에는 신화 이미 저물어
  덜 마른 시월의 가지 끝
  붉은 눈이 쌓인다

  —『일몰관』 (목언예원,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1) / 돼지의 운명 - 이창규의 ‘돼지가 하늘을 본날’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야생멧돼지는 그렇지 않지만 이 세상의 거의 모든 돼지는 인간이 식용으로 기르는 것이다. 인간의 먹잇감이 되기 위해 인위적으로 태어나서 늙기 전에 도축되어 식탁에 오른다. 삼겹살, 오겹살, 돼지갈비, 두루치기, 제육볶음……. 시인은 돼지의 입장이 되어 본다. 돼지를 의인화한 것으로 보아도 좋다. 

  돼지는 죽어서 살점이 다 나누어졌다. 불판에 누워 하늘을 본다. 누워서 절절히 익어가는 “노을 한 점”을 본다. 실로 천형 같은 지상이었다. 먹는 것만 밝혔고 죽어서 먹이가 되었다. 제 몸을 다 내놓았으니 배 터지게 한번 드셔 보세요. 제 몸이 맛이 좀 있나요? 역시 고기는 씹어야 맛인데 이빨은 튼튼한가요? 마늘도 곁들이고 쌈도 싸서 드세요.

  ‘붉은 눈’의 상징성이 놀랍다. 시월이니 아직 눈[雪]이 내린 것은 아니다. 노을, 숯불, 불판, 피눈물…… 이런 시어를 아우르고 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번지기 전에 쓴 시조인데 미래를 예언한 듯하다. 이번에 생매장한 돼지의 수가 몇 만 마리일까. 이 이승이 참 이렇게 비정하단다, 얘들아.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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