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해보겠습니다”, 2019 SF컨벤션에서 "환상문학웹진 거울"을 들여다보다
“계속 해보겠습니다”, 2019 SF컨벤션에서 "환상문학웹진 거울"을 들여다보다
  • 조은별 기자
  • 승인 2019.10.14 2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면 된다가 아닌 되면 한다... “지속과 순환 지향할 것”

 올해는 인류가 달에 첫발을 디딘 지 50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보며 광활한 우주 공간과 인공지능 컴퓨터를 꿈꾸던 인류가 어느덧 AI가 탑재된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시대가 왔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을 증빙하듯, 과거 풍문처럼 떠돌던 상상들이 점차 현실로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어떤 소문은 사실과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말, 소문이 모여 하나의 힘이 되기도 한다. 여기, 홈페이지 공식 소개란을 통해 오늘도 '아직 꾸준히 글을 쓰는 작가와 번역가가 있고, 기사도 업데이트 되는 웹진이 있대.'라는 소문을 퍼트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환상문학웹진 거울(이하 웹진 거울)이 있다. 지난 50년간 일궈낸 인류의 비약적 발전을 기념하며 서울시립과학에서 개최한 ‘2019 한국 SF 컨벤션’ 행사 현장에서 우리는 웹진 거울의 필진 페나(최지혜), 구한나리, 노말시티, 심너울 작가를 만나볼 수 있었다. 

2019 SF 컨벤션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과거와 미래' 좌담회 현장. 좌측부터 노말시티, 심너울, 구한나리 작가가 함께했다. [ 사진 = 조은별 기자 ]

2003년 첫 창간호를 발간하며 활동을 시작한 웹진 거울은 올해로 벌써 탄생 16년 차를 맞이했다. 현재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 한국SF협회, 텍스트릿, 괴이학회, 중국의 미래관리사무국(FAA) 등 외부 단체와도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며 활동 저변을 계속해서 확장해나가는 중이다. 웹진 거울의 편집위원로 활동 중인 필진 페나 작가는 “작가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해 창작을 독려하고, 독자에게 역시 열린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바다. 새로운 작가와 새로운 글, 새로운 독자가 끊임없이 순환하는 건전한 생태계를 이루고 싶다.”라며 웹진 거울의 운영 포부를 밝혔다. 이어 그는 “일단 무리하지 않고 계속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활동 근간은 하면 된다가 아니고 되면 한다에 가깝다.”라는 말로 거울의 정체성을 요약했다.

‘환상문학 웹진 거울의 과거와 미래’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프로그램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좌담회 형식으로 꾸려졌다. 필진이자 편집위원인 구한나리(갈원경) 작가가 사회를 맡아 행사를 이끌었고, 신인 필진인 심너울 작가와 노말시티 작가가 패널로 참가해 다양한 질문에 답변했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필진 심너울 작가 [ 사진 = 조은별 기자 ]

 

“작품이 많아야 독자가 끊임없는 ‘덕질’을 할 수 있다.”
심너울 작가와 노말시티 작가는 모두 웹진 거울의 창작 게시판 자유 기고를 통해 활동을 시작했다. 심너울 작가는 2018년 ‘한 터럭만이라도’와 ‘감정을 감정하기’가, 노말시티 작가는 2018년 ‘살을 섞다’와 2019년 ‘만우절의 초광속 성간 여행’이 독자 우수 단편으로 선정되어 웹진 거울의 공식 필진이 되었다. 구한나리 작가는 먼저 두 작가가 어떻게 웹진 거울의 창작 게시판을 찾게 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을 화두로 던졌다.

심너울 작가는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라는 작법서를 감명 깊게 읽었다. 곽재식 작가님의 책인데, 웹진 거울에서 활동하신다는 정보를 얻어 그분의 글을 읽으려고 방문했다.”라며 독자로서 처음 웹진 거울을 찾게 되었다고 계기를 밝혔다. 그는 이어 “홈페이지에서 다른 작가분들의 글을 읽다 보니, 내가 직접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도 마련돼 있다는 걸 발견했다. 좋아하는 작가와 나란히 서 보고 싶은 마음에 직접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필진이 되어 이 자리에 서게 됐다.”라며 작가로서의 소감 또한 더했다. 

노말시티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글쓰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그야말로 장르 신생아”라고 설명한 노말시티 작가는 2017년경, 무엇이든 읽고 쓰겠다는 마음으로 웹 사이트를 탐방하던 중 웹진 거울을 발견했다. 독자로서 웹진 거울 활동 작가들의 단편을 읽던 그는 필진이 아니어도 게시 가능한 창작 게시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피드백을 얻기 위해 처음 투고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혼자서 글을 쓰면 보여줄 수 있는 독자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의견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창작에 있어 피드백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웹진 거울에 글을 쓰면 필진들의 심사평을 받을 수 있다. 창작을 시작하는 아마추어 작가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다.”라며 칭찬했다.

이어지는 대담 내용은 두 작가의 창작 활동 에너지원에 대한 탐구로 채워졌다. 구한나리 작가는 두 작가의 창작 활동이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며, 어디에서 창작 동기를 부여받고 있는지 물었다.

노말시티 작가의 경우, 평소 겁이 없는 자신의 성격이 창작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다. 지레 걱정하느라 망설이는 대신 과감하게 선택하고 시도하다 보니 창작에 있어 제한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다른 분들이 비해 창작을 늦게 시작해 조급한 마음이 든다. 일단 쓰고 많이 보여드리자는 각오를 하고 있다.”라며 “뛰어난 작가가 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다양한 작품을 통해 독자를 즐겁게 하는 작가는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명작보다는 다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라는 뜻을 전했다.

심너울 작가 또한 “사람은 오래된 기억을 잊기도 하고, 살면서 태도와 관점을 바꾸기도 한다. 때문에 읽을 작품이 많으면 끊임없이 새로운 독서를 할 수 있다.”라며 다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어떤 글들은 미숙함 때문에 오히려 완결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조금 어설픈 게 오히려 매력적으로 작용한다고 해야 할까. 작가가 단편 하나를 세 번 이상 읽고 수정하면 이런 장점이 없어지는 것 같아 너무 매진하지 않고 새 작품으로 넘어간다.”라며 개인의 창작관을 드러내기도 했다.

두 작가가 웹진 거울의 독자로 시작해 필진이 되었다는 점은 ‘웹진 거울의 과거와 미래’라는 이날 좌담회의 주제와도 상통하는 대목이었다. 이를 통해 발굴하고, 성장하고, 나아가기를 지향한다는 웹진 거울의 선순환의 구조를 직접 확인해볼 수 있었다. 구한나리 작가 역시 “앞서 언급하신 곽재식 작가님도 독자 우수 단편 심사 제도를 통해 거울 필진이 되셨다. 누군가 독자에서 작가가 되고, 그 작가의 글을 읽은 독자가 또 이렇게 작가가 되어 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이어 “두 분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작가 역시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라며 웹진 거울의 향후 행보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필진 노말시티 작가 [ 사진 = 조은별 기자 ]

 

“처음엔 SF? 결국엔 SF!”
‘환상문학’이라는 수식을 사용하고 있는 웹진 거울은 호러나 판타지, SF 등 모든 장르소설을 수용하고 적극 환영하는 곳이다. 이날 패널로 자리한 두 작가 역시 장르 경계 없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며 활동 중이지만, 구한나리 작가는 그중에서도 SF 색채가 진하게 묻어나는 작품이 두드러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두 작가가 SF를 선택한 이유를 묻고, SF의 장점에 대한 이야기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노말시티 작가는 “처음부터 SF를 쓴 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쓴 소설이 SF인 줄 몰랐다. 그만큼 장르에 무지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며 처음 소설을 쓰던 때를 회고했다. 전공과 직업 모두가 과학과 관련되어있다고 밝힌 그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활용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가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는 “미래지향적인 소설을 쓰기 위해 몰두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일 년쯤 매달린 후에 다 내려놓아야지 싶을 때 인공 인체를 다룬 소설을 쓰게 되었다. 뇌를 제외한 모든 기관이 의체인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이었는데, 쓸 때도 재미있게 썼고 실제 반응도 좋았다.”라며 “‘SF는 이 정도 과학 지식을 담고 있어야 한다’ 같은 강박, 한계를 넘을 수 있게 되니 오히려 SF 소설을 쓰게 됐다. SF는 소재만으로도 글을 풍부하게 만들어준다.”라며 SF의 효과를 긍정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심너울 작가는 시대적인 맥락에서 SF가 전략적 요지에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상상 속에서만 등장하던 배양육, 유전자 조작,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이 현실로 이뤄지기 시작한 만큼 SF가 조명될 수밖에 없는 시기라는 설명이다. 그는 “‘알파고’가 등장해 인간과 치열한 승부를 벌인 게 벌써 삼 년 전이다. 그만큼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해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 상태다. 자연스럽게 과학기술을 통해 사고하고 상상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 아니게 됐다. 이런 시기에 SF는 그야말로 ‘좋은 주식’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또한 심너울 작가는 자신을 ‘SF 확장주의자’라고 소개하며 “불 피우는 것 이상의 기술이 등장하는 작품은 SF로 분류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정의로 접근해보고 있다. 그만큼 SF가 유행이 아닌 보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시대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만큼, SF 시장의 무궁무진한 확장과 활성화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구한나리 작가는 신인 필진으로서 두 작가가 웹진 거울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어지는 질의응답 시간에는 웹진 거울의 사조이자 작가 개인이 주장했던 지속성의 가치를 SF와 어떻게 연결지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짧게 이어졌다. 

심너울 작가는 웹진 거울의 홈페이지 자체가 거울의 역사를 대변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필진 분들 중에는 요즘 활동을 하지 않으시는 분들도 있고, 벌써 여러 작품을 출간해 더는 거울에서 글을 보기 힘든 분들도 있다. 2003년부터 새겨진 그분들의 발자취가 그대로 아카이빙 되어 있다는 점이 거울의 매력적이다. 시대별로 사람의 인식이나 상상력의 근간이 변화하기 마련인데, 그 흐름을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장르의 역사’를 훑어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라는 감상을 전했다. 그는 이어 “나 역시 작가로서 지속 가능한 창작을 하고 싶다. 힘을 너무 많이 쓰다가 탈진해 사그라드는 작가 대신, 꾸준히 계속 해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심너울 작가는 이어 SF의 지속성에 대한 질문에 텍스트가 성장이 빠른 매체임을 포착, 이를 통해 자신의 견해를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어 영상 매체라고 하면, 상상하는 바를 작품으로 보여주기 위해 CG와 같은 기술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텍스트는 독자의 상상력만 있으면 되므로 기술적 제약이 없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확장할 수 있는 매체다.”라며 “문학이 장르의 최전선에서 다른 매체를 이끌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기대를 내비쳤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편집위원이자 필진 페나 작가 [ 사진 = 조은별 기자 ]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고, 살아남으면 강한 거다.”라는 말로 개회되었던 이날 좌담회에서 우리는 순환하고, 나아가고, 계속하겠다는 웹진 거울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실제로 거울 웹진 사이트 내에서는 필자와 독자,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공식 필진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만 필진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창작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고, 언제든지 필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계가 불명확한 인적 네트워크’를 표방하고 있는 단체, 웹진 거울을 대표해 자리에 모인 필진 개인의 가치관이 웹진 거울의 포부와도 긴밀히 연결된다는 지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구한나리 작가는 SF와 장르에 대한 인식 재고가 필요한 시기라는 사견을 덧붙였다. 그는 “어떤 작품은 분명히 장르 성향이 짙은데도 불구하고 그 정체성을 부정당하기도 한다. 단순히 장르를 싫어해서 그러는 게 아니고 어떤 게 장르인지 잘 몰라서 그런 것 같다.”라는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좋은 장르가 확산되어 장르 인식의 저변이 확대되고 독자들이 자신의 지향을 명확히 짚어내고 긍정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SF 작품을 읽고도 이건 SF가 아니야,라고 선을 그어버리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장르에서 배제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며 장르가 재평가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끝으로 페나 작가는 “매달 1일에는 필진 단편이 연재되고, 15일에는 리뷰나 칼럼 등 논픽션을 게재하고 있으니 환상문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 번쯤 거울을 찾아주시길 바란다. 현재 신인 작가 소식을 들으면 초청 단편을 요청하는 등 부지런하게 찾아가고 있다. 우리를 통해 환상문학, 장르문학이 계속 확장되고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뜻을 전하며 성황리에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