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4) / 바람의 나날 - 김종태의 ‘풍(風)’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4) / 바람의 나날 - 김종태의 ‘풍(風)’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0.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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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4) / 바람의 나날 - 김종태의 ‘풍(風)’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4) / 바람의 나날 - 김종태의 ‘풍(風)’

  풍(風) 

  김종태


  지난겨울 눈시울 아래쪽이 수시로 실룩거렸다
  바람에는 화열이 성하고 음혈이 부족한 내풍과
  뇌혈관 장애로 정신을 잃는 중풍이 있다며
  요즘 풍은 영글지 못한 뇌수를 흔들기도 한다며
  의원은 안팎 바람 모두를 조심하랬지만

  수없는 일몰과 일출이 허허로운
  철새들의 도래지를 지날 때마다
  마음에서 비켜서던 바람의 기운이
  오늘은 몸 한구석 깃들어 있음에
  오른쪽 안면근육이 저 혼자 춤출 때에도
  두 손바닥 비벼 살린 맞불을 놓아
  시간을 잃고 서성이는 한 사람을 기린다

  봄바람을 타고 이 골 저 골 
  떠도는 만춘의 민들레 홀씨처럼
  미혼의 가을에도 봄은 깃들어
  황금빛 그물의 일몰에 등져 있음에도
  열기 머금은 황사로 낯은 화끈거리건만
  세상 애증의 등허리를 넘어가는 이 바람은
  난만한 초월의 씨앗을 머금었건만

  차라리 내외의 바람이든 영육의 바람이든
  풍의 거처란 물릴 것이 아닌즉
  스스로 그 몸의 자궁늪에 깊이 들어앉아
  잠자는 불이 되어보는 것 또한 어떨는지
  바람난 마음이든 바람든 몸이든 모두 다
  황홀한 우주바람 속에 편히 깃들 것인즉
  음복의 술잔 따윌 나누어봄은 또한 어떨는지


  -『현대문학』 (2005년 6월호)

 

  <해설>

  몸의 이상에서 시가 시작된다. 우리 몸은 이상이 있을 거면 일단 징후가 보인다. 어떤 암은 징후가 없이 발병되기도 하지만. 시는 제2연에 이르러 자연의 바람을 이야기한다. 바람은 결국 변화를 가져온다. 사람 몸의 풍은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일상생활을 바꿔놓는다. 철새들의 도래지에 부는 바람은 철새를 불러오거나 떠나보낸다. 

  우리가 바람을 특히 인식하게 되는 시절은 봄과 가을이 아닐까. 봄의 바람은 겨울이 다 갔음을 알려주는 바람이요, 가을의 바람은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바람이다. 시인은 소우주인 자신의 몸에 찾아온 바람을 통해 “내외의 바람”, “영육의 바람”, “황홀한 우주바람”을 인식하게 된 것인데, 이것은 인연의 바람, 생존의 바람, 존재의 바람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모든 생명체의 끝은 죽음이겠지만 시인이 일으킨 이 바람은 시가 되었기에 영원무궁할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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