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5) / 항구에서 아파하다 - 양해연의 ‘묵호항에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5) / 항구에서 아파하다 - 양해연의 ‘묵호항에서’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0.16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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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5) / 항구에서 아파하다 - 양해연의 ‘묵호항에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5) / 항구에서 아파하다 - 양해연의 ‘묵호항에서’

  묵호항에서
 
  양해연


  묵호
  달팽이처럼 비틀린 계단을 느리게 올라 
  그대를 바라봅니다
  속눈썹에 매달린 물기같이 반짝이며 
  그대 가슴을 파고드는 햇살이 눈부십니다
  더는 전하지 못한 것들을 수평선 너머로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는 그대  
  먹빛 시간을 기억 너머에 매달고 무심히 출렁이고 있는 그대
  응어리진 심연에서 온몸을 잡아당기는 추를 생각합니다  
  차가운 쇳덩이였다가 뜨거운 불덩이였다가 
  그대를 그대이게 하는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겠지요
  끝까지 간대도 영영 닿을 수 없으리란 예감 
  막막한 그 지점이 흐르면서 출렁여도 넘치지 않는 이유입니다

  그대, 천만갈래 부서지며 몸부림치던 날들
  구름 한 점 흐르지 않는 시간 
  하늘과 바람 온통 먹빛이라서 
  허옇게 가슴을 뒤집으며 우는 그대를 안아주지 못한 쓰라림
  잔인하게 이어지던 그 여름, 그대 얼굴을 뒤덮던 먹장

  묵호
  이제 더는 먹빛 얼굴 그대 거기 없고
  쇳덩이 추를 매단 아픈 그대도 거기 없습니다

  -『종의 선택』 (예술가, 2018)

 

  <해설>

  화자는 묵호항에 가서 항구의 풍경을 즐기지는 않는다. 마음이 아주 심란하여 풍경이 완상의 기쁨을 주지 않고 내면의 아픔을 가중시킨다. 명사를 수식하는 것으로 더는 전하지 못한, 아무렇지도 않은, 응어리진, 차가운, 막막한, 가슴을 뒤집으며 우는, 잔인하게 이어지던, 아픈 등을 가져왔다. 묵호를 그대라고 부르면서 이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보는 독자가 안타깝기만 하다. 아마도 화자는 무슨 일인가로 크게 상심한 상태로 묵호항에 갔던 것이 아닐까. 

  내륙에서 사는 사람이 바닷가에 가는 경우, 해수욕이 아닐 경우에는 마음이 답답하여 탁 트인 바다를 보고서 마음을 달래고자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묵호항을 보고서 어떤 해방감을 느끼지 않고 더욱더 서러워한다. 자연이 우리의 마음을 달래줄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로 아픔을 가중시키기도 한다는 것을 이 시를 보고 알았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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