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6) / 폐업하는 이의 마음 - 이수니의 ‘마네킹 씨’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6) / 폐업하는 이의 마음 - 이수니의 ‘마네킹 씨’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0.1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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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6) / 폐업하는 이의 마음 - 이수니의 ‘마네킹 씨’ [이미지 편집 = 한송희 에디터]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6) / 폐업하는 이의 마음 - 이수니의 ‘마네킹 씨’

  마네킹 씨

  이수니


  폐업한 상가 유리문 안에
  마네킹 씨 여러 명 서 있다
  서성거리지도 않는다는 것은
  버려진 것들이다

  여기 꼼짝 말고 서서 기다리라고
  누군가 못 박아놓은 당부다
  쓸쓸한 기다림이다
  한쪽에 떨어져 나간
  제 팔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
  폐업의 자세다
  저건 비정규직도 못 되는 것이다
  한 자세로 버티는 일쯤은
  이력이 난 직업이었지만
  벌거벗은 내면이 민망한 듯
  먼지를 걸치고 있다

  유행 지난 옷은 절대 입지 않는다는
  콧대 높은 자존심에도 금이 갔다
  정적 포즈로, 화려한 조명 아래 빛나던
  이 시대의 유행도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었던
  마네킹 씨들 아니,
  그녀들

  -『막다른 절정』(시와표현,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86) / 폐업하는 이의 마음 - 이수니의 ‘마네킹 씨’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우리나라의 취업률이 올라가지 않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폐업률은 낮아지지 않고 있으니 경제가 호전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도 참 답답할 것이다. 백성들 배가 고프면 임금을 원망하는 법이다. 

  시인은 폐업을 선언한 상가 유리문 안에 서 있는 여러 개의 마네킹을 유심히 보았다. 비정규직은 미래가 불안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다니는 직장이 있는데 폐업하는 가게의 주인은 그날로 실업자가 된다. 마네킹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유심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영업자들이 폐업 선언을 할 때의 타는 속마음을. 폐업 선언을 하기까지의 절망적인 나날을. 폐업 이후 재기하기까지의 눈물겨운 과정을. 

  마지막 연은 화무십일홍의 뜻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비싼 옷, 혹은 한창 유행인 옷을 입고 폼을 내던 것도 다 지난날, 우리는 때가 되면 수의를 입게 될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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