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다 소설] 페트리코 -박소희 소설가
[문화 다 소설] 페트리코 -박소희 소설가
  • 박소희 소설가
  • 승인 2019.10.23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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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리코

박소희(소설가)

우리가 맡는 비 내음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페트리코(petrichor)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바위를 뜻하는 페트라(petra)와 신의 피를 의미하는 이코(ichor)가 합쳐져 만들어졌다.

그는 언젠가 읽었던 문장을 떠올린다. 비 냄새. 비 냄새, 라고 그는 중얼거린다. 코에 비릿한 물 냄새가 스미는 것 같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는다. 여름을 벗어난 창밖 구름에도 물기라고는 없다. 아직, 이라고 그는 중얼거린다. 그는 아직 기다리고 있다.

커피 위로 김이 느리게 피어오른다. 잔에 담긴 커피는 검고, 향긋하고, 조금도 물결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검고 고요한 물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짙은 수면 위로 그의 얼굴은 비치지 않는다. 그는 언젠가 이렇게 검은 호수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어디서였더라. 코에 배릿한 냄새가 먼저 어린다. 그는 떠올리려 애쓰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의 미간에 작은 주름이 인다. 꿈에서라도 저런 호수를 본 적 없다는 사실 역시, 그는 떠올리지 못한다. 그는 작게 웅얼거린다. 꿈에서였나.

카페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그는 고개를 든다. 유리문에 달린 작은 종이 소리를 낼 때마다 그는 물비린내를 맡는다. 낯선 인어한테서 나던 냄새. 그 생각을 떠올리곤 피식 웃는다. 인어같은 걸 봤을 리 없잖아. 그는 생각하면서 셔츠 깃을 매만진다. 그러나 그는 본 적이 있다. 벌써 밤하늘처럼 보이던 바다와 그 속에서 끌어올려지던 몸을. 뭍으로 갓 올라온 검고 물컹한몸. 그 몸은 너무 검어서 인어라기보다는 인어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다섯 살, 아직 어린 그는 어른들이 끌어올린 몸을 발치에 두고 서 있다. 부두의 끝에서였다.찝찔한 바람이 쉼 없이 불어왔다. 어두운 몸은 숨을 몰아쉴 때마다 아가미에서 진흙 같은 덩어리를 울걱울걱 흘렸다. 인어는 유리막 같은 눈동자를 천천히 굴렸다. 저 눈은 일어날 일들을 전부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아직 어린 그는 생각했다. 아직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그러나 곧, 가로등이 켜지기 전에 어른들이 연장을 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굳은살 박인 손날아래에서 녹슨 양동이가 흔들리며 소리를 낼 것이다. 어째서인지 뒷모습으로만 보이는 어른들이 저 몸에 칼을 깊이 꽂아 꼬리지느러미까지 가르면, 수액처럼 투명하다는 피가 흐를 것이다. 어른들은 빼낸 내장을 물속으로 던지고 머리채도 잘라낼 것이다. 비릿한 냄새가 나는 거죽을 어깨에 둘러업으면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가까이 따라오라고 아직 어린 그를 재촉하면서.

검은 몸에서는 윤기 없는 비늘들만 가만히 부풀었다 내려앉고 있었다. 아직 어린 그는 웅크리고 앉아 눈을 맞췄다. 아직 어린 그는 거의 울먹이듯 말한다. 어서, 물속으로 사라져, 어서. 인어는 모든 것을 보는 눈으로 아직 어린 그를 본다. 아직 어린 그가 다시 말한다. 제발. 인어가 입을 벌린다. 그러자 어둠 속 또 다른 어둠이 열린다. 목소리가 흘러나오지만 잘 들리지 않는다. 아직 어린 그는 고개를 가까이 숙인다. 아직 어린 그의 표정 위로 밤이 내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밤은 검은 몸까지 미처 지우지는 못한다. 더 가까이 귀를 대다가 아직 어린 그의 눈이 조금 커진다. 인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곤 문득 다리에 서늘함을 느낀다. 자신의종아리를 잡은 검은 손을 본다. 아직 어린 그는 솟구치듯이 일어나 달음질치기 시작한다. 손이 자신을 끌어당기려던 것인지 떠밀려던 것인지 아직 어린 그는 알지 못한다. 달리면서 돌아본 인어는 무언가 말하는 듯이 검은 입을 벌리고 있었다. 마지막 빛이 꺼지기 직전의 그림자처럼, 인어는 아직 어린 그를 본다.

 

 달려가는 아직 어린 그의 등 뒤로 어른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아직 어린 그는 달리면서 폭우를 떠올린다. 빠르게 흘러오는 먹구름, 모든 것을 지우며 쏟아지는 비. 검게 부푸는 바다, 팔을 뻗으면 팔마저 삼켜버리는 아주 짙은 비. 비가 그렇게 인어를 숨기고, 어른들이 하려는 일마저 멈추게 하면 좋겠다. 아직 어린 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달린다. 비가 질책하듯이 쏟아져 내리기를. 그러나 아직, 먹구름은 먼 바다 위에 있다. 아직 어린 그는 자꾸만 차오르는 숨을 참는다. 울음이 터져 나오기 직전에 숨이 팽팽하게 차오른다는 사실을 아직 어린 그는 이렇게 처음 느낀다.

 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선 뒤에야, 아직 어린 그는 멈춰 선다. 가쁜 숨이 조금씩 잦아든다. 툇마루 위에서 아직 어린 그는 눈을 뜬다. 시멘트 바닥에서 튕겨 오르는 빗방울들이 자그마한 정강이를 적신다. 비의 입자들이 부서지면서 안개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까 힘껏 달린 탓에 잠이 들었나보다. 아직 어린 그는 주황빛 가로등 너머 하늘을 본다. 밤은 이미 짙었다. 아주 늦어버린 비였다. 인어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 어린 그는 인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뒤늦은 비를 맞으면서 아직 어린 그는 울음을 터뜨린다. 이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아직 어린 그는 생각한다.

그가 고개를 들지만 종은 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어디선가 종소리를 듣는다. 커피가 희박한 향기를 남기면서 식어가고 있다. 그의 이마에 옅은 물결이 잡힌다. 그 호수, 어디였었지. 아직 어린 그가 기억하던 것들을 이제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 시기의 기억을 집요하게삼키면서 그의 몸은 자랐다. 누구나 그렇듯, 그도 한 시기의 기억을 잃으면서 자라났다. 사라진 기억들이 어디에 머무는지 그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완전히 식지 않은 커피를 바라보면서 그는 어째서인지 선득한 기분을 느낀다.

되게 어릴 때 갔었나. 아주 검었는데, 깊고. 그는 생각한다. 어쩌면, 언젠가 가보게 될 호수를 미리 보았던 걸지도 모르지.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혹은 정말 어쩌면 그곳에서 선득하고 축축한 무언가를 마주치게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것을 인어라고 상상해 버릴지도 모르지. 그는 조금 웃는다.

커피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구름은 멎을 것처럼 느리게 흐른다. 그의 귓가에 어떤 말이 떠오르려다가 물살에 뒤섞이듯 가라앉아버린다. 어렴풋이 떠오르던 목소리를 놓치지만, 그는 다시금 떠오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억했었으나 이제 기억하지 못하는 그 말을 그는 앞으로도 다시 떠올리지 못한다. 구름이 희미한 유리 얼룩에 겹쳐지는 순간을 그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모르는 채로, 아무것도 속이지 않는 풍경 사이에 앉아서. (*)

 

 

박소희
소설가. 1992년생. 2016년 <대산대학문학상>에 단편소설 「스물세 번의 로베르또 미란다」로 등단. parksohee82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