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4) / 희극인가 비극인가 - 이경림의 ‘상견례’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4) / 희극인가 비극인가 - 이경림의 ‘상견례’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0.25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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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4) / 희극인가 비극인가 - 이경림의 ‘상견례’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4) / 희극인가 비극인가 - 이경림의 ‘상견례’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4) / 희극인가 비극인가 - 이경림의 ‘상견례’

  상견례

  이경림


  죽은 동생 대신 상견례를 하러 간다
  (지금부터 나는 그다).
  그가(아니 내가) 죽을 때 일곱 살이었던 딸은 이제 스물여덟이 되었다
  (대견하다), 
  무덤 속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거기까지 따라와 피, 살, 뼈, 내장, 다 파먹던 
  들쥐, 뱀, 두더지, 구더기들
  수십 년 묵은 아카시아 뿌리 같은 것들
    
  그녀(아니 나의 딸)가 살포시 내 옆에 앉는다
  (낯설다).
  나는 한생 한 번 스친 적도 없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네 네 그러시죠 그렇습니다 뇌며
  근엄하게 덜 익힌 고기를 씹는다.

  자세히 보니 
  그들도 어느 무덤에서 막 나왔는지 뻣뻣이 몸이 굳어 있다
  당신들은 언제 죽었소? 지, 지금은 어느 무덤에 계시오?
  나는 불쑥 그들에게 묻고 싶은 걸 꾹 참는다. 

  조금 늦게 도착한 신랑이 미안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사람들 피 묻은 입술을 냅킨으로 문지르며 바라본다.

  뭘로 드시겠습니까?

  종업원이 메뉴판을 내밀며 묻는다

  미디엄으로 익혀……
  ……(     )  

  칼로 고기 써는 소리
  접시에 부딪는 포크 소리들만 간간
  새소리처럼 들리는 

  이 지하 일 층

  -『내 몸속에 푸른 호랑이가 있다』(문예중앙, 2011)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4) / 희극인가 비극인가 - 이경림의 ‘상견례’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화자에게는 일곱 살 딸을 둔 동생이 있었는데 젊어서 죽었다. 조카는 어느새 자라 스물여덟이 되었고, 화자는 동생을 대신해 상견례에 나간다. 그 자리에서 먹게 된 스테이크, “네 네 그러시죠 그렇습니다 뇌며/ 근엄하게 덜 익힌 고기를 씹는다”는 아이러니컬한 상황. 

  조금 늦게 도착한 신랑이 미안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사람들 피 묻은 입술을 냅킨으로 문지르며 신랑을 바라보는 것도 아이러니컬한 상황이다. 뭘로 드시겠느냐는 종업원의 질문에 신랑은 미디엄으로 익혀달라고 요청하고, 다들 칼로 고기를 썰고 그 고기를 씹어 삼킨다. 식당은 마침 지하 1층에 있어서 화자는 생각한다. “그들도 어느 무덤에서 막 나왔는지 뻣뻣이 몸이 굳어 있다”고. 동생의 몸을 이루고 있던 피와 살, 뼈와 내장을 들쥐와 뱀, 두더지와 구더기가 먹었을지도 모르고, 수십 년 묵은 아카시아 뿌리 같은 것들이 건드리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상견례에 모인 이들은 소의 살을 절반 정도 구워서 피가 흐르는 그것을 씹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람이고 삶인 것을. 생명이고 생인 것을. 

  비극과 희극이 교차되는 극을 희비극(tragicomedy)이라고 하는데, 비극은 문맥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으며, 상황은 다분히 희극적이다. 그 어떤 비극적인 현실이 전개되어도 시인은 결코 흥분하지 않는다. 그것이 삶이고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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