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197) / 고래고기 먹지 말자 - 임내영의 ‘귀신고래’
귀신고래
임내영
원뿔 모양에 가는 줄 세로로 그어
뒤집어쓰고
진드기처럼 등허리에 달라붙은 따개비
여섯 쌍의 발로 플랑크톤 잡아먹다
떨어져나간 자리
상차가 아물며 얼룩무늬로 남고
잠자는 반쪽 뇌마저 깨우는 빨판상어 잔소리에
바닷물 크게 들이마시고 수염으로 걸러내니
입 안 가득 먹이로 남는 플랑크톤
고래는 고래로 태어나야 할까
고래가 고래를 먹어야 하고
포경선 먹잇감으로 끝나더라도
태어나면 가봐야 하는 빙해 여행
앞 지느러미 날개처럼 흔들며
공중회전으로 점프해
하늘과 바다 사이 날아오른 공간을
순간 포착하며
입 꼬리 올려 소리쳐 웃는다
-『한국미소문학』 (2019년 가을호)

<해설>
귀신고래의 위용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시다. 포경선에 잡히는 것이 귀신고래의 운명이라는 것도 시인은 잊지 않고 있다. 이름에는 ‘귀신’이 붙어 있지만 앞 지느러미 날개를 흔들며 공중회전으로 점프하는 모양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작년 이맘때 해군사관학교 해외순항훈련에 40여일 동승했는데 군수지원함인 대청함이 구축함 충무공이순신함에 기름을 수급할 때 고래 한 마리가 대청함을 인도하듯 한참 동안 앞장서 폴짝폴짝 점프하던 그 귀여운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나도 임내영 시인처럼 고래가 바다에서 하늘로 날아오를 때 입 꼬리 올려 소리쳐 웃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대서양의 귀신고래는 포경으로 1700년대 중반에 멸종되었다고 한다. 한국계 귀신고래는 1964년 5마리를 포획한 기록을 끝으로 과도한 남획의 결과 한국 근해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아 멸종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1993년 사할린 연안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로부터 개체수가 조금씩 증가했으나 현재 100여 마리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해 있는 고래가 바로 귀신고래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