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4) / 시인의 날은? - 고재종의 ‘시인이라는 직업’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4) / 시인의 날은? - 고재종의 ‘시인이라는 직업’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1.04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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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4) / 시인의 날은? - 고재종의 ‘시인이라는 직업’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4) / 시인의 날은? - 고재종의 ‘시인이라는 직업’

  시인이라는 직업
  
  고재종 


  이문구 선생 만해문학상 수상식 뒤풀이에서 어쩌다 임영조 선생과 한 자리에 앉게 되어 수인사를 트게 되었다. 나는 ‘갈대는 갈 데가 없다’는 시집의 시인 아니시냐고 벌떡 일어서서 절을 하였다. 선생은 “아니나 다를까 시집 제목을 『갈대는 배후가 없다』보다 고선생의 말대로 지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소.”라고 하며 나의 착각을 너털웃음으로 감싸셨다. 그 뒤 선생과 친해졌는데 하루걸이로 전화해서, 쉰 살 무렵까지 다니던 화장품회사 집어치우고 나서 등산과 시 쓰기로 사는 나날을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셨다. “나 나온 뒤 회사 임원을 한 친구들 지금은 모두 탑골공원에 가 있소. 한데 나는 늦게나마 시 써서 상도 타고 강의도 다니고 무엇보다도 구구절절 독자들을 만나게 되니, 나 지금 새로운 세상을 사는 게 아니오?”라고 하셨다. 시 쓰는 것을 그처럼 좋아하는 분을 그 뒤로도 별로 못 봤다.

  -『고요를 시청하다』 (문학들, 2019)

 

  <해설>

  임영조 시인이 돌아가신 것이 2003년 5월 28일이었다. 절친했던 김강태 시인도 같은 날 돌아가셔서 하루에 두 병원 장례식장에 모두 갔었다. 고재종 시인이 임영조 시인과의 첫 만남 자리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주신다. 고재종 시인이 까마득한 선배시인이 낸 시집의 이름을 잘못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너털웃음으로 받아준 임영조 시인의 푸근한 마음이 읽혀지는 시다. 

  임영조 시인은 출판사를 전전하다가 안정된 직장을 구했으니 태평양화학 홍보실이었다. 20년 다니는 동안 잡지언론상도 수상하고 출판부장으로 승진도 했지만 시를 열심히 쓰고자 사직서를 냈는데 쉰두 살 때였다. 그때부터 봇물 터지듯이 시를 썼고 제 4, 5, 6시집을 펴냈다. “시 쓰는 것을 그처럼 좋아하는 분을 그 뒤로도 별로 못 봤다.”는 말에 동감한다. 시를 쓰고자 직장을 그만두고서 작은 오피스텔로 출근을 했던 시인. 직장생활에 치어 시를 쓰지 못한 세월이 한스러워 사직 후 정말 열심히 시를 썼지만 그 열정이 그만 환갑의 나이밖에 안 된 시인을 눈감게 하였다. 

  11월 1일을 시인의 날로 제정한 것은 최남선이 『소년』지에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 날을 기념해서인데 시인의 날은 없다. 어버이날, 스승의 날, 어린이날 등은 있으니 시인의 날도 있으면 좋겠다. 영국 왕실에서는 1670년부터 ‘계관시인’을 정해 최상의 존경을 표했고 미국ㆍ캐나다ㆍ이탈리아ㆍ폴란드에서도 이 제도를 받아들여 계관시인을 선정하고 모시고 있다. 이 땅에서 시인이라는 직업을 자랑스러워할 날이 올까? 올 수 있을까?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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