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6) / 영정사진 아래서 - 김승희의 ‘구름 밥상’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6) / 영정사진 아래서 - 김승희의 ‘구름 밥상’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1.06 09:00
  • 댓글 0
  • 조회수 78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6) / 영정사진 아래서 - 김승희의 ‘구름 밥상’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6) / 영정사진 아래서 - 김승희의 ‘구름 밥상’

  구름 밥상

  김승희


  검은 리본이 둘러쳐진 영정사진 아래서
  밥을 먹는다. 
  모란꽃 같은 구름이 밥상으로 내려왔다. 
  아니 모란꽃 같은 밥상이 구름 위로 올라갔다. 
  이 꽃 같은 구름 밥상,
  어이, 어언, 어이, 그런 밥상.

  검은 리본이 둘러 쳐진 영정사진 아래서
  밥을 먹는다
  모란꽃이 뚝뚝 지기 시작하는 밥을 먹는다.
  흘러가는 밥상,
  언제나 모든 밥상은 흘러가는 밥상이었다.  
  어이, 어언, 어이, 그런 밥상.

  어느 화창한 날
  어느 고유한 날
  검은 리본 둘러쳐진 영정사진이 되어
  나도 식구들 흘러가는 밥상에 둘러앉아
  흘러가는 밥 먹는 것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어이, 어언, 어이 그런 날.
 
  피란 원래 구름으로 만들어졌고
  정액도 원래 구름으로 만들어졌고 
  달도 원래 구름으로 만들어졌고
  해도 원래 구름으로 만들어졌고
  태초에 구름 밥상,
  모란꽃 지었다 피는 그런 구름 밥상,
  어이, 어언, 어이, 어이, 아 그런 밥상……

  -『현대시』 (2003. 4)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6) / 영정사진 아래서 - 김승희의 ‘구름 밥상’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구름 밥상’의 뜻을 파악하면 이 시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은 하늘에 떠 흘러가고, 비가 되어 내려온다. 구름은 확실한 형체를 갖고 있지 않다. 밥상은 인간이 음식물을 차려놓고 먹으려고 만든 사물이다. 주로 나무로 만들어져 확실한 형체를 갖고 있다. 제목이 ‘밥상 구름’이 아니라 ‘구름 밥상’인 것에 주목한다. 화자가 검은 리본이 둘러쳐진 영정사진 아래서 오늘 밥을 먹었듯이 내일은 내가 영정사진이 되어 “식구들 흘러가는 밥상에 둘러앉아/ 흘러가는 밥 먹는 것을 내려다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흘러가는 밥상,/ 언제나 모든 밥상은 흘러가는 밥상”인 것이다. 

  구름이 흘러가듯이 시간은 가뭇없이 흘러가게 마련이다. 생명체가 시간의 순리를 거역할 수는 없는 법이다. 시간은 모든 생명체를 무기물로 바꿔놓는다. 하지만 살아 있는 인간이 밥상을 물리치고 어찌 살아갈 수 있으랴. 우리는 대개 하루 세 끼 밥을 먹는데, 밥이 놓이는 그 식탁이 바로 구름 밥상이다. 구름처럼 덧없는, 구름처럼 무심한, 구름처럼 흐르는. 그래서인지 내게는 “어이, 어언, 어이, 어이, 아” 하는 시인의 말이 탄식의 목소리로 들린다. 피와 정액은 물론 해와 달까지도 구름으로 만들어졌다는 상상력은 ‘구름 밥상’의 의미 확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