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8) / 나는 풍선인형이다 - 구석본의 ‘풍선인형의 노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8) / 나는 풍선인형이다 - 구석본의 ‘풍선인형의 노래’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1.08 09:00
  • 댓글 0
  • 조회수 8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8) / 나는 풍선인형이다 - 구석본의 ‘풍선인형의 노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8) / 나는 풍선인형이다 - 구석본의 ‘풍선인형의 노래’

  풍선인형의 노래

  구석본


  내 안에서 일어난 바람이다.     
  허공이 길이고 길이 허공이었던 바람,
  나무와 풀의 골짜기에서 울부짖던 야성(野性)이
  탄력을 가진 껍질이 되어 통통 튀어 오르며
  내 안에서 허공의 길을 찾는다.

  나의 춤과 노래와 눈물이 바람의 길이다.
  껍질로 펄럭이며 부풀어 오르는 나의 몸,
  어둠으로 팽팽한 정신 하나를 허공 쪽으로 밀어 올려 보지만,

  바람의 춤과 노래와 눈물은 허공의 길로 이어지고
  그 길 또한 먼 허공으로 깊어질 뿐이다

  이윽고 밤의 어둠이 나무와 풀의 골짜기로 떠날 무렵
  누군가 내 생에서 바람을 뽑는다.
  내 몸이 착착 접혀진다.
  허공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고독과 오독에 대한 에필로그』 (시인동네,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08) / 나는 풍선인형이다 - 구석본의 ‘풍선인형의 노래’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간혹 길 가다 광고 효과를 노린 풍선인형을 봤는데 시로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풍선인형을 소재로 하여 시로 쓸 때 각주에서 구석본 시인의 시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왔다고 쓰지 않는다면 표절작이 될지도 모른다. 유의해야 한다. 

  이 시의 묘미는 풍선인형을 의인화한 것인데 화자가 풍선인형인 동시에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의 몸도 실은 바람에 의해 마구 흔들리며 허공의 길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때가 되면 호흡이 멎고, 바람이 죄다 빠져 접히게 될 것이다. 허공은 허무한 공간이다. 제아무리 고개와 허리를 굽실거려도 때가 되면 거리에서 사라진다. 온몸으로 소리를 질러본들 화장장의 뼛가루가 되는 것이 태어날 때 정해진 운명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 시는 허무의식의 산물 같지만 시인은 그것에 함몰되지 않는다. 내 몸이 언젠가는 착착 접혀지겠지만 그것 때문에 허공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를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사느냐와 어떻게 죽느냐는 동의어이다. 우리는 모두 풍선인형, 살아 있을 때 온몸으로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 최선을 다해 춤추고 노래해야 한다. 울 때는 울고 웃을 때는 웃어야 한다. 내 생에서 바람이 다 뽑혀나갈 때까지.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