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0) / 너는 커서 뭐가 될래? - 김성민의 ‘커서’
커서
김성민
장래 희망 글쓰기 숙제 하러
한참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나는 커서 뭐가 될까?
모니터 하얀 화면에
한 발짝도 못 나간 커서도
깜빡깜빡 눈만 끔뻑이고 있어
정말 뭐가 될까, 나는 커서?
-『브이를 찾습니다』 (창비, 2017)

<해설>
컴퓨터 화면에서 깜빡깜빡하면서 입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의 이름이 커서(cursor)이다. 이 ‘커서’와 우리말의 ‘너는 커서 뭐가 될래?’의 ‘커서’는 발음이 같다. 동시작가 김성민은 두 말의 발음이 같다는 것에서 착상을 해 이 작품을 썼는데, 우리 사회를 은근히 풍자하고 있다. 예전에는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남자아이는 십중팔구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고 여자아이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뒤로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한 아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일까. 연예인 지망생은 많고 많은데 실제로 데뷔하여 활동하는 사람은 천분의 일도 안 될 것이다. 그만큼 되기 어려운 것이 연예인이다.
이 땅의 아이들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물어보았을 때 답을 잘 못한다면 그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다. 힘들지 않을까? 돈을 많이 벌까? 안정적일까? 억울한 일을 안 당할까? 철이 좀 든 아이라면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라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해할지 모른다. 억대 연봉의 스포츠 선수?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국회의원과 장관? 되면 욕을 먹는다는 것을 아이들도 안다. 연예인? 자살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법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곧잘 법의 처분을 받는다. 아이들이 “정말 뭐가 될까? 나는 커서?”라고 자문하면서 얼마나 힘들어할까. 이제부터는 아이들한테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어보지 말아야겠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