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1) / 곡! 이연주! - 한경용의 ‘이연주, 비공개 유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1) / 곡! 이연주! - 한경용의 ‘이연주, 비공개 유서’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1.11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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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1) / 곡! 이연주! - 한경용의 ‘이연주, 비공개 유서’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1) / 곡! 이연주! - 한경용의 ‘이연주, 비공개 유서’

 

  이연주, 비공개 유서

  한경용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을 거닐다 속죄양 유다의 방에서 적과의 이별을 한 시인이 있다.
  잘 가라, 나의 옛사랑, 어리디 설운 그가 본 것은 순결 졸업식 이 언니는 중학교 중퇴, 저 언니는 초등학교 졸업, 그 언니가 그래도 젤 나아요. 야간 상업전수학교 때이니까요.  
  무슨 일일까? 버지니아 울프처럼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템즈강에 돌을 안고 투신했다는 풍문처럼 우리는 벽에 가로막혔어. 한참 후에야 소문은 연기처럼 소 꼬랑지 쪽부터 피어올라 와서 냄새를 풍기지.
  “당신 몸이 내 속으로 들어올 때, 아마 당신은 내 먹먹한 심장을, 나는 쇠처럼 차가워진 당신 간을, 후벼 파내고 있는 것이네.”

  생전에 군산의 기지촌 주변의 병원에서 수간호사로 활동했다. ‘얻어맞고 착취당하고 피 먹이고 피 빨리는 혼이 없는 살 주머니’, 도시의 하수구에 내던져지는 심장들을 띄엄띄엄 그녀의 목걸이로 꿰이다. 얼음 동태 트럭에서 실려 가다 떨어지듯, 부패한 냄새 가득한 도시에 갇힌 죽음의 언어들이 성당의 비잔틴 유리창 햇살에 반사되다. 창녀 시장판의 현대문명, 인간적인 비인간적인, 유다의 절망을 바탕화면에 깐 채, 이루지 못하는 사랑이여, 매음녀들의 빙의를 입고 생의 바닥을 지렁이처럼 기어간다. 썩은 피와 고름 주르르 살점이 튀고 시체 썩는 냄새.

  주해: 1991년에 첫 시집을 출간하며 의욕적인 활동을 펼친다. 그 다음해 1992년에 『작가세계』 이동하 주간에게 시집용 원고 51편을 우체국에서 보내곤 바로 집으로 돌아와 비공개를 당부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이 메인 생을 맨다. 1992년 10월 14일 벽제 화장터에서 동료 문인 50여 명의 애도 속에 화장되었다.

  -시집 『넘다, 여성 시인보 백년, 100인보』 (시담포엠, 2019)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1) / 곡! 이연주! - 한경용의 ‘이연주, 비공개 유서’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이연주 시인을 딱 한 번 만났었다. 출판사 세계사 사무실에서 만나 반갑게 수인사를 했다. 그 며칠 뒤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을 우편으로 보내주었기에 읽어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 시집을 봤다면서 밝게 인사하던 그 첫인상과는 달리 시세계는 암울함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유고시집 『속죄양, 유다』를 사보았다. 1주기가 가까워오자 안쓰러운 마음이 가슴에 사무쳐 신들린 듯이 2권의 시집을 분석하여 이연주론을 썼다.『작가세계』로 전화를 했더니 실어주겠다고 했다. 최초로 썼을 이연주론은 내가 그날 세계사 사무실에서 시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쓰지 않았을 것이다. 수수하고 털털한 인상, 큰 안경, 밝은 미소. 그녀는 왜 자살을 했던 것일까. 들리는 말로는 기지촌 주변의 병원에서 수간호원이었다고 한다. 낙태아 수술에 계속 참여하면서 많이 괴로워했다고 한다. 생명체들을 인위적으로 살해하는 일에 이연주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자기 목숨을 스스로 거둬들였다. 

  한경용 시인이 놀라운 시집을 냈다. 지난 100년 한국문학사를 수놓은 여성시인 100명의 초상화를 시로 그린 인물시집을 펴낸 것이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이 시집이다. 나오자마자 재판을, 두 달 만에 3판을 찍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한 시인은 이연주의 비통했던 시세계와 고통스러웠던 삶을 한 편의 시에다 일목요연하게 녹여냈다. 죄의식 때문에 자살한 사내 유다의 길을 따라간 시인의 아픔이 이 한 편의 시에 잘 나타나 있어 눈물짓는다. 너무나 아까운 시인 이연주! 가슴이 아프다. 습작기 때 동인지에 실었던 시까지 모은 시전집이 출판사 최측의 농간에서 나왔다. 

 

※우울감 등 주변에 말하기 어려운 고통이 있거나 이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어 도움이 필요할 경우 자살예방상담전화(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1577-0199), 희망의 전화(129), 생명의 전화(1588-9191), 청소년 전화(1388) 등을 통해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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