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뉴 미디어를 만나다 : 대중서사학회가 들여다본 ‘뉴미디어 시대와 대중서사’
장르, 뉴 미디어를 만나다 : 대중서사학회가 들여다본 ‘뉴미디어 시대와 대중서사’
  • 조은별 기자
  • 승인 2019.11.12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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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시대와 대중서사” 세 번째 학술대회 '뉴미디어 시대, 장르의 재발견' 성료
종합 토론 중인 대중서사학회 학술대회 참가자들 [ 사진 = 조은별 기자 ]

[ 뉴스페이퍼 = 조은별 기자 ]지난 10월 5일, 대중서사학회가 ‘뉴미디어 시대, 장르의 재발견’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서강대학교 정하상관에서 진행된 이날 학술대회는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을 받아 진행되었으며, ‘뉴미디어 시대와 대중서사’라는 대주제 안에서 본 회차로 벌써 세 번째를 맞이했다. 금번 학술대회는 시대와 미디어 변화에 맞추어 나날이 변화하고 있는 대중서사를 보다 면밀히 분석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취지 하에 대중서사학회의 주관으로 마련되었다.

대중서사학회 박숙자 회장은 개회 자리에서 “1930년대의 로맨스가 있고 2010년대의 로맨스가 있다. 이 둘을 하나의 로맨스, 하나의 장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차원에서 대중서사에 대한 근본적 접근부터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라며 연구 성과를 밝혔다. 본 학술대회를 준비하며 “대중서사를 하나의 맥락에서 설명하고 포괄하는 행위가 이제는 다소 나이브한 태도는 아닐까 고민했다.”라고 말한 박숙자 회장은 이어 “이번 대회에서 발표될 연구 내용이, 우리가 대중서사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재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라며 학술대회의 서막을 열었다. 

이날 학술대회는 총 네 개의 세부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으며, 각각 플랫폼으로서 웹과 장르, 대중서사 장르로서 SF, 로맨스, 판타지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세부 발표는 발표자와 토론자 2인으로 구성된 9팀과 세션별 사회자가 함께 꾸려나갔다.

현장 종합토론에서는 우선 ‘뉴미디어’를 어떻게 정의하고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화두에 올랐다. 토론 진행을 맡은 천정환 사회자는 기술 혁신으로 인한 사회 변화의 가속으로 인해 뉴미디어라는 용어를 재정의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다소 전통적이고 근대적 개념이 된 것 같다고 설명한 그는 “새로운 수용자층에 의해 장르 인식 자체가 변화해가는 추세다.”라며 현대를 “장르 간의 교합이 활발해져 새로운 컨벤션이 형성되는 단계”라고 해석했다. 이에 연구자들은 “장르의 질서 변화와 이를 출력하는 미디어, 그리고 생태계 변화라는 큰 구조”를 각자의 시각에서 탐구한 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플랫폼의 확장과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의 귀환'을 발표 중인 문선영 연구자 [ 사진 = 조은별 기자 ]

재발견 하나, 스마트폰과 장르
매체의 변화에서 대두된 것은 ‘스마트폰’의 등장과 보급이었다. ‘예술창작 플랫폼으로서 웹과 장르’ 세션 발표에 참여한 류수연 연구자는 ‘웹 2.0시대의 장르균열과 로맨스’라는 논문에서 “스마트폰은 그 자체로 웹 2.0시대의 가치를 내재화한 멀티미디어”라고 설명했다. 그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2000년대 중반까지 디렉토리 검색을 토대로 데이터를 제공만 하던 웹 1.0 시대를 거쳐 블로그, 위키피디아 등 사용자 참여 기틀을 마련한 웹 2.0 시대로 발전했고, 이러한 양방향 소통 시스템의 비약적 발전에 기여한 것이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상승하면서 휴대기기를 통해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인터넷에 접속해 콘텐츠를 생산, 소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고 웹 콘텐츠 역시 모바일 환경에 맞추어 변화했다는 것이다.

모바일 시장은 드라마와 영화 시장의 판도 크게 뒤흔들었다. ‘로맨스 서사의 새로운 지형도’ 세션에서 ‘플랫폼의 확장과 하이틴 로맨스 드라마의 귀환’을 발표한 문선영 연구자는 모바일 시장의 발달이 견인한 드라마 양식의 변화를 조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모바일은 스크린, 모니터와 같은 기존의 영상 출력 매체보다 훨씬 작은 화면을 가지고 있어 “길고 복잡한 서사나 화려한 화면구성”보다는 “일상적인 가벼운 내용 중심의 콘텐츠”에 적합한 환경이다. 또한 모바일 시장에서 10대, 20대 젊은 연령대의 콘텐츠 소비가 증대되었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웹 드라마 시장에서는 청소년, 학생층의 공감을 얻기 쉬운 ‘학원물’의 수요가 증대되었고, 나아가 기존 드라마 시장에서 다소 침체되어 있었던 ‘하이틴 로맨스’가 재부흥하기에 이르렀다. 

‘웹 2.0시대의 장르균열과 로맨스’를 발표 중인 류수연 연구자와 손진원 지정 토론자 [ 사진 = 조은별 기자 ]

재발견 둘, 웹 플랫폼과 장르
뉴 미디어 시대의 로맨스 변화 양태를 웹 소설 중심으로 탐구한 류수연 연구자는 “오늘날 문학은 예술의 한 영역인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상품”이라는 점을 시사하며 발표를 이어나갔다. 류수연 연구자는 웹 기반 서비스가 적극 수용한 문화상품이 서사 장르에 한정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웹-시, 웹-수필, 웹-희곡의 형태가 아직까지 고정 장르화되지 않고 있음을 밝히며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수익성의 문제로 풀어나갔다. 류수연 연구자의 논문에 따르면 웹 소설은 그 발생부터 플랫폼을 통해 “하나의 상품으로 기획되고 서비스”되는 콘텐츠로 정의할 수 있다. 때문에 웹 소설은 적극적으로 구매를 유치해야 하는데, 이때 주로 사용되는 것이 ‘텍스트 시각화’ 전략이다. 실제로 다수의 웹 소설 콘텐츠는 소설 속 발화자를 이미지로 표시는 ‘캐리커처’ 시스템이나 표지 혹은 삽화 일러스트, 웹툰 형식의 프롤로그를 적극 도입한 상태다. 이렇게 “보는 소설”로서 거듭난 웹 소설은 이미지 연상 작용을 기반으로 웹툰, 드라마, 영화 등으로 파생되는 이른바 ‘OSMU’ 콘텐츠로 연결된다.

OSMU란 One Source Mulit-Use의 약자로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매체와 장르에 적용하는 형식을 의미하며, 보다 효율적인 가치 산출을 도모하기 위해 최근 마케팅 시작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으로 자리매김했다. OSMU는 주로 접근성에 있어 시간, 장소 제약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 소비자 유치가 편리한 웹 콘텐츠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 동일 콘텐츠를 다시 스크린, TV, 무대 등으로 확장해 기존 콘텐츠의 소비자를 재수용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더욱이 다른 장르로 변용된 작품의 리뷰나 장면 캡처 등이 웹 사이트를 통해 공유되면 모바일-OSMU 콘텐츠-모바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어 상업 효과가 극대화된다.

‘한국 판타지의 상호매체성’ 세션 발표에서 ‘교차하는 환상영화 : <이생망>과 모바일 판타지’라는 논문을 발표한 김청강 연구자는 한국의 대표적 OSMU 작품으로서 주호민 작가의 웹툰 ‘신과 함께’를 예시로 들었다. 2010년 처음 연재를 시작한 웹툰 ‘신과 함께’는 토속적인 배경 설정과 ‘7개의 지옥’을 헤쳐나가는 게임적 구성을 통해 선풍적 인기를 끌며 영화, 연극, 게임 등으로 재구성된 바 있는 작품이다. 김청강 연구자의 논문에 따르면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빠르게 소비하는 가장 대중적인 스낵컬처”인 웹툰은 ‘스크롤 미디어’로서 평면적 이미지를 넘어 “일정한 영상적 효과”를 얻을 수 있으므로 타 콘텐츠보다 영상으로 연결되기 용이하다.  

장르의 분절성 역시 웹 플랫폼 시대가 견인한 대표적 특성으로 제시되었다. 김준현 연구자는 ‘웹 소설의 대두와 판타지 서사의 장르/양식 변화의 매체성’이라는 논문에서 ‘해시태그’에 주목해 의견을 개진해나갔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기존의 장르 양식은 굳건한 컨벤션을 바탕으로 구획 지어지며, 해당 조건을 일정 개수 이상 충족시킨 작품만이 특정 장르로서 호명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장르 서사는 명확한 구획을 내세우지 않고, 특정 회차의 장면이나 인물 간 관계 양상 등의 부분 요소만으로도 장르성을 획득할 수 있다. 즉 메인 테마를 ‘판타지 소설’로 정하더라도 인물들 간의 로맨스가 중점이 되는 회차에서는 ‘#로맨스’ 태그를 붙일 수 있고,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잠시간 추리를 하는 장면만 들어가더라도 ‘#추리’ 태그를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준현 연구자는 이러한 장르 분절의 대두 요인을 크게 두 가지로 축약했다. 첫 번째는 작가가 단독 공간을 꾸려나가는 게시판 관리자로서 직접적으로 독자를 응대해야 하는 웹 플랫폼의 특수한 환경이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다수의 웹 플랫폼은 개별 작가가 자신의 이름과 작품명을 건 개인 게시판을 운영하는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때문에 작가는 추천과 댓글 등의 독자 반응을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은 두 번째 이유는 웹 소설이 편당 결제 시스템을 기반으로 제공되는 상품이라는 점에서 찾았다. 김준현 연구자는 상품으로서 회당 가치 창출이 분명해야 하는 웹 소설의 경우, 제한된 분량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요구되기 때문에 다양한 독자의 니즈를 만족시키는 형식으로 발전했다고 분석했다. 결과적으로 현대의 장르 기호는 “유연한, 혹은 성긴 상태로 사용”되며, 전통적 양식에 비해 확장적이고 포괄적인 양식으로 정착했다.

‘교차하는 환상영화 : <이생망>과 모바일 판타지'를 발표 중인 김청강 연구자와 이윤종 지정 토론자 [ 사진 = 조은별 기자 ]

재발견 셋, 더욱 확장된 장르 저변 
대중서사와 장르 변화를 견인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것은 미디어와 매체의 변화 뿐만은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시대와 독자의 변화 역시 면밀히 살펴보았다. 유인혁 연구자는 “문학의 번식장-‘책 빙의물’을 통해 살펴본 한국 웹 소설 판타지의 개량과 재생산”을 통해 한국 판타지 서사의 메인 흐름이 ‘먼치킨’ 주인공에서 주변인물적 주인공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최근 독자 선호가 높은 장르인 ‘책 빙의물’ 역시 대표적 사례로서, 해당 장르의 경우 현실에서 평범하거나 ‘루저’로서 호명되는 인물이 책 속 세계로 이동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주 플롯으로 삼는다. 이때 주인공은 이미 책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인 주변 인물화 되는데, 전개를 꿰뚫고 있으므로 ‘책 속 주인공’과의 관계를 역전시키며 “‘평범한 인물’이 ‘비범한 인물’에게 승리하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계급 전복은 클리셰 비틀기의 한 양상으로서 “장르의 전형성을 비트는 행위”를 통해 기존의 작품과 차별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더는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시대’ 정서에 호응함으로써 독자의 공감과 쾌감을 이끌어낸다. 

‘신과 함께’에 반영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 정서 역시 같은 맥락에서 바라볼 수 있다. ‘신과 함께’는 주인공 ‘김자홍’이 사망 후 저승에 당도해 지옥의 재판을 통과하고, 다시 한 번 새로운 생을 부여받는 환생 기회를 획득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수저 계급론’의 등장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듯, 현대 청장년층은 계급 역전의 불가능성으로 대표되는 비관을 체화하고 있다. 이때 실패한 인생을 가진 주인공이 과거 혹은 다른 세계로 이동해 삶을 회복할 기회를 얻는 ‘회귀물’이나 ‘환생물’, ‘빙의물’의 수요 확대가 시사하는 바는, 현실에서 충족할 수 없는 욕구의 대리만족으로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에 대한 염원이라는 점이다.

이밖에도 탈장르화하는 SF 상상력 세션에서는 전지니 연구자가 ‘과학적 상상력의 무대화에 대한 시론 – SF 연극의 역사와 현황’ 발표를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여 최근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SF 연극을 식민지 시대부터 최근 10여년 간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톺아보았다. 김성희 연구자는 ‘SF의 역사적 상상력 – 역사소설과 북한의 과학환상’에서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 속에서 SF와 역사 소설이 어떤 방식으로 접목되는지 고찰해냈고, 최배은 연구자는 ‘2000년대 이후 한국 아동청소년 과학소설의 디스토피아 연구’ 발표에서 아동청소년 SF가 과학사에서 가지는 선구적 의의를 밝히고 아동청소년 SF에 등장하는 디스토피아의 여러 양상을 탐구했다.

한편 송화숙 연구자는 ‘육체-감각을 통한 로맨스 서사 : 댄스음악에 나타난 사랑의 기술(記述)과 기술(技術)’에서 약 20여 년간의 한국 댄스음악 변화를 살펴보고, 가사 텍스트 분석을 통해 “내용 없고 의미 없는 댄스 음악이 육체-감각성에 기반하여 ‘비서사적 서사성’을 획득해가는 과정”을 조명하기도 했다.

대중서사학회 박숙자 회장 [ 사진 = 조은별 기자 ]

이날 학술대회는 미디어 발달과 그로 인한 장르 양식 및 서사 방식의 전환을 다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주었다. 대중서사학회 학술대회는 약 6시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나 9팀의 발표와 토론을 꾸려나가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다소 부족해 아쉬움을 남겼다. 연구자들은 논문을 축약된 형태로 발표해야 했으며, 지정 발제자와의 토론은 종합 토론에서 함께 다루는 것으로 변경되어 심층적인 논의를 나누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시간 배분에 있어 미흡한 부분이 있었음에도 연구자들은 각자 선정한 주제에 맞추어 대중서사에 접근하여 새로운 의미를 탐구했고, 현장에 참석한 참여자들 역시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며 열띤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술대회를 위해 자리한 대중서사학회 일원들은 앞으로도 대중서사를 위해 거듭 발전된 연구를 개진해나가겠다는 인사를 전하며 성황리에 행사를 마무리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