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서울국제작가 축제, 낭독과 공연 어우러진 “시 듣는 시간” 개최
2019 서울국제작가 축제, 낭독과 공연 어우러진 “시 듣는 시간” 개최
  • 조은별 기자
  • 승인 2019.11.12 16:04
  • 댓글 0
  • 조회수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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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에 귀를 기울이면... 4인 4색의 다양한 시 울림과 음악, '독서의 계절' 수놓는 문학 잔치

[ 뉴스페이퍼 = 조은별 기자 ]독서의 계절 가을을 풍성하게 채워줄 문학 잔치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지난 10월 13일을 끝으로 성료되었다. 지난 10월 5일 개막한 서울국제작가축제는 6일부터 본격적인 행사에 돌입해 각국의 작가들과 함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문학을 사랑하는 시민들의 곁을 찾아갔다. 7일 오후 동대문역사공원 내 DDP 살림터에서 진행된 “시 듣는 시간” 역시 서울국제작가축제의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었다.

“시 듣는 시간”은 시인이 직접 낭송하는 시와 그에 맞추어 준비된 시 음악으로 준비됐다. 현장에는 한국의 시인 최승호와 손택수, 베트남의 시인 마이 반 펀, 쿠바의 시인 빅토르 로드리게스 누녜스(이하 빅토르)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으며, 시인 신용목이 사회를 맡아 진행했다. 3개국 출신 작가 4인이 보여주는 4색의 폭넓은 시 세계가 시인의 목소리를 넘어 관객들의 마음에 펼쳐졌다. 

"시 듣는 시간" 현장에서 공연 중인 가수 뮤지 [ 사진 = 조은별 기자 ]

행사에 앞서 가수 뮤지의 축하 공연이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프로듀서 및 가수로서 활동 중인 뮤지는 2015년 최승호 시인과 함께 ’랩 동요집’을 기획, 발매한 것이 인연이 되어 자리에 참석했다. 랩 동요집에 수록된 ’동그랑땡‘을 일부 선보이기도 한 그는 “최승호 시인의 가사에는 ’물땅땅이‘나 ’게아재비‘와 같은 순우리말이 다수 등장한다. 아이들에게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고자 랩 동요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셨는데,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라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시 듣는 시간" 현장에서 공연 중인 창작국악단 시로 [ 사진 = 조은별 기자 ]

두 번째 음악 공연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시를 노랫말 삼아 가락을 붙여 ’시 노래‘로 재구성하는 창작국악단 시로다. 이날 행사에서는 손택수 시인의 시에 민요를 접목시켜 편곡한 ’수묵의 사랑‘을 최초 공연했다. 대금과 가야금, 기타의 음율이 한 자리에 어우러져 현대적 감성이 얹어진 국악기의 매력을 한껏 느껴볼 수 있었다. 음악과 문학의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졌다는 시로는 ’골목환상‘ 시리즈 등을 통해 시와 음악, 사람과 길을 연결 짓는 등 다양하고 실험적인 음악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시 듣는 시간"에 참여해 낭송 중인 최승호 시인 [ 사진 = 조은별 기자 ]

낭독의 첫 타자로는 최승호 시인이 나섰다. 시를 쓸 때면 마음속 서랍에 쌓인 감정과 생각을 들여다보며 자신의 절실함에 귀 기울인다고 고백한 최승호 시인은 1977년 ’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들어섰다. 오늘의 작가상, 대산문학상,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그림책, 카툰 동시집, 동요집을 펴내는 등 시작 이외의 다채로운 분야에서 역시 활발한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평소 사회 부조리, 생태 등 다양한 분야에 시적 관심이 많다고 밝힌 최승호 시인은 모순적인 어휘 배치를 통해 현실을 풍자한 시 ’백수는 과로사한다‘를 시작으로 문학의 효용과 태도에 대한 시인의 고민이 드러나는 작품 ’물의 책‘과 ’눈사람 자살사건‘을 연이어 낭송했다.

뜨거운 물과 찬 물 중에서 어떤 물을 틀어야 하는 것일까
눈사람은 그 결과는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뜨거운 물에는 빨리 녹고 찬물에는 좀 천천히 녹겠지만
녹아 사라진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었다
나는 따뜻한 물에 녹고 싶다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지 않았는가


'눈사람 자살 사건' 부분, (눈사람 자살 사건, 달아실, 2019)

'눈사람 자살 사건'은 욕조 속에서 자살을 꿈꾸는 눈사람을 화자로 내세워 삶 속에서 마주치는 냉소와 혹한을 포착하고, “오랫동안 너무 춥게만 살”아왔던 삶을 “따뜻한 물”로 장식하고자 하는 장면을 통해 애틋한 위로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최근 SNS를 통해 공유되며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사기도 했던 이 시는 최승호 시인에게 있어서도 특별한 작품 중 하나로 꼽혔다. 그는 “삶을 끝내려고 했으나 ’눈사람 자살 사건‘을 읽고 조금 더 살아보리라고 다짐했다는 독자의 이메일을 받은 적이 있다.”라며, 이를 통해 “발표한 지 20년이 넘어 잊고 지냈던 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라는 경험을 밝혔다. 절판된 우화집 “황금털 사자”에 수록되어있던 이 시는 2019년 새로 발행된 우화집 “눈사람 자살 사건”의 표제로 실려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시 듣는 시간"에 참여해 낭송 중인 베트남의 마이 반 펀 시인 [ 사진 = 조은별 기자 ]

낭독을 이어받은 것은 베트남에서 찾아온 마이 반 펀 시인이었다. 2018년 고형렬 시인과 함께 “대양의 쌍둥이”라는 한국어 시집을 발간하기도 한 그는 현재 16권의 시집을 펴낸 왕성한 작가다. 다면체적인 세상을 자신만의 눈으로 들여다보고 해석하기 위해 시 창작에 매진하겠는 다짐을 선보인 마이 반 펀 시인은 삶 속에서 일어나는 시련과 인내, 성장 등을 자연물 속에 담아낸 ’시내 속의 돌멩이‘, 생을 보듬어나가는 과정을 비와 해의 이미지로 표현한 시 ’아침 햇살의 무정함‘과 ’제 2장 : 진홍색‘으로 구성된 세 편의 시를 힘 있는 베트남어로 낭송했다. 

피의 꿈은 죽을 때까지 충성했던 애국전사들이
갇혔던 감방 독실에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그들은 자신들이 택한 이상을 절대적으로 신봉했고,
민족을 향한 최고 아름다운 꿈을 꾸었었지.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배신한 사람들,
진정한 피의 길을 더럽힌 동지들을 목격하였네.
꿈속에서 나는 독실 감방 자물통이 갑자기 툭 열리는 것을 보았지.
지독한 냄새는 여전한데 애국전사들은 떠난 지 오래로구나.


'제2장 : 진홍색' 부분 (재처리의 시대, tao đàn, 2019)

마이 반 펀이 선정한 ’제2장 : 진홍색‘은 장가長歌 ’재처리의 시대(Era Of Junk)‘중 일부를 발췌한 것으로, 베트남의 시대적 비극과 역사에 대한 날카로운 성찰과 비판이 어려 있는 작품이다. ’피의 꿈‘과 ’피의 길‘로 표상되는 학살과 총성의 현장에 남은 ’지독한 냄새‘는, 우리로 하여금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피의 강‘이 되어 흐르고 있는 상처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시작 메모를 통해 “누구를 대신하여 쓴 것이 아니고 솔직하게 썼다.”라고 고백한 그는 현장에서 조국인 베트남의 정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들의 혼을 실은 글을 쓰는 것이 자신의 목표라고 밝히기도 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시 듣는 시간"에 참여해 낭송 중인 손택수 시인 [ 사진 = 조은별 기자 ]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내게도 있어
수천 킬로 밖까지 무선으로 이어져 있어
한밤에 전화가 왔다
어디 아픈 데는 없냐고
꿈자리가 뒤숭숭하니 매사에 조신하며 살라고
지구를 반 바퀴 돌고와서도 끊어지지 않고 끈끈한 줄 하나


'거미줄' 부분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창비, 2014)

손택수 시인이 첫 번째로 낭송한 시 ’거미줄‘은 부모와 자식 간의 끈끈한 관계를 거미줄과 전화선이라는 매개를 통해 풀이해낸 서정시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새끼 거미를 건드리면 “어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는 이야기”와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며 자식 걱정에 전화기를 들고 안부를 묻는 부모의 모습을 병치한 ’거미줄‘은 촘촘하게 엮인 혈연의 정을 담담한 어조로 전달하여 애틋함을 배가한다.

손택수 시인의 작품 속에는 주위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소재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되어 나타난다. 그는 자연물을 바라보며 자아를 탐구하고 성찰하는 과정을 담은 ’탕자의 기도‘와 야구공 실밥과 백팔번뇌를 연결지으며 현실 이면을 고발하는 시 ’야구공 실밥은 왜 백팔 개인가‘를 이어 낭송했다.

자신을 ’농부가 되고 싶었으나 실패해 시인이 되었다‘고 소개한 손택수 시인은 “아이들은 저마다가 시인으로 태어나는 것 같다.”라며 시의 원형을 어린아이의 순수한 시선과 마음에서 찾았다. ”언젠가는 나도 소년의 눈을 가졌겠지만, 성장하는 동안 제도 문명 속에서 잊거나 잃은 것이 많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한 그는 “문학과 시를 접할 때면 마음 속 바다에 가라앉은 소년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이 소년의 눈을 잊지 않은 채 계속 시를 쓰고 싶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 "시 듣는 시간"에 참여해 낭송 중인 쿠바의 빅토르 시인 [ 사진 = 조은별 기자 ]

쿠바 출신 빅토르 시인 역시 세 편의 시를 준비해 스페인어로 낭독을 이어갔다. 이날 음송된 시는 각각 거울 너머의 형상을 보며 내면을 탐구해나가는 ’한밤의 기록‘과 ’기원‘, 태양과 비, 천둥 등 날씨를 표현하는 어휘를 분절된 이미지로 확장해낸 작품 ’악천후‘였다. 

무엇보다 난 누구에게도 아무런 빚이 없다
앤솔러지는 나의 조국이 아니다
내가 토호시스타*임을 잊지 마라
중요한 것은 생존 경제로
얻은 페이지들 뿐
(중략)
나의 혈관은 깊고
                               그 무엇도 나를 피 흘리게 하지 못한다


'기원' 부분 (2019 서울국제작가축제 앤솔러지, 2019, 역 김현균)
*토호시스타, 1970년대에 구어체에 반발했던 쿠바의 시 경향으로  대지의 시(poesía de la tierra)로도 불린다. 역주. 

평소 경계 없는 자유로움을 지향한다는 빅토르 시인은 환상성의 상징인 거울 이미지에 특히 주했다. 자신을 이발소라는 익숙한 공간 속 ’유령‘이라고 선포함으로써 낯설고 이질적인 배경을 획득해나가는 ’기원‘에서 역시 “빛에 약탈당한 채 / 나를 응시하는 누군가가 있”는 거울이 소재로 등장한다. ’그림자가 갉아먹은 거울들‘, ’침묵 속의 푸른 자국‘ 등으로 대변되는 ’그로테스크하고 환상적인 이미지 속에서 냉담한 시적 어조로 시인으로서의 선언을 그려내는 ‘기원’은 우리에게 시인의 정체성 속에 담긴 고민과 방황, 다짐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빅토르는 현장 대담을 통해 “이성과 비이성을 구분 짓고 그 차이를 탐구하는 것이 실제 우리 삶에서 큰 의미를 획득한다고 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구획 없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라며 “시에서 역시 중요한 것은 시작과 끝의 형태나 규격이 아니라 한 편의 시가 어떤 사고를 거쳐 완성되었느냐다.”라는 말로 자신의 시 창작관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내가 바라본 세상을 내 방식대로 수용하는 과정을 시 속에 담아내고 싶다. 일관성은 의미에 대한 폭력이다.”라는 신념을 밝히며 관중들에게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서울국제작가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현장에는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서로 다른 말과 문화를 가진 관객들이었지만, 낭독되는 시편에 귀 기울이는 동안은 모두 하나가 되어 시를 감상하는 듯 보였다. 이렇듯 ’시 읽는 시간‘은 단순한 낭독 행사를 넘어 각자의 시선과 방식대로 시를 읽고, 듣고, 느끼는 체험을 동시에 선사하며 뜻깊은 교류의 장이 되어주었다. 세계 각지의 작가들과 함께하는 서울국제작가축제는 DDP, 서울 소재 대학교 및 독립 서점 등지에서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으며 지난 10월 13일을 끝으로 성황리에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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