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2) / 애달픈 생애 - 윤일현의 ‘곰보 누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2) / 애달픈 생애 - 윤일현의 ‘곰보 누나’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1.1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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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2) / 애달픈 생애 - 윤일현의 ‘곰보 누나’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2) / 애달픈 생애 - 윤일현의 ‘곰보 누나’

 

  곰보 누나 

  윤일현

  누나의 말기 유방암 수술 소식에 밤새 울었다
  8ㆍ15해방 3년 전 온 마을에 천연두가 휩쓸 때
  할머니는 손녀에게 큰손 찾아올까 봐
  젖먹이를 들쳐업고 마실도 나가지 않았지만
  사촌이 그 불청객으로 죽자
  삼촌이 관 짤 나무 가지러 우리 집에 다녀간 뒤
  누나에게도 옮겨온 손님은 얼굴 가득 딱지를 앉게 했고
  긁지 못하도록 손까지 묶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곰보가 된 동네 아이들 중에
  가장 심하게 얽었다는 우리 누나
  시집가서도 서방에게 대접 못 받고
  한평생 천대 속에 서럽게 살았다
  어릴 때 박복한 여자는 죽을 때까지 고생만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어머니의 말 떠올리면
  누나를 한평생 학대한 매형이 더욱 밉고 보기 싫어
  수술하고 한 달이 지나도록 병문안을 가지 않았다

  얼굴을 덮고 있는 무수한 웅덩이마다
  온갖 설움들 피고름처럼 까맣게 고여 있지만
  바보같이 선하게 웃을 때면
  아침이슬보다 맑은 눈물 철철 넘쳐흐르는
  정 많고 인정 많은 우리 곰보 누나

  -『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 (시와반시, 2019) 

 

  <해설>

  50세 이하의 독자는 이 시의 ‘큰손’이나 ‘손님’의 뜻을 잘 모를 것이다. 예전에는 천연두라는 전염병이 돌면 전국적으로 몇 만 명이 죽었다. 병을 이기고 살아남더라도 얼굴에 농포(膿疱)가 생겨 곰보가 되고 만다. 내가 어렸을 때는 병의 흔적이 얼굴 전면에 남아 있는 분들이 있었다. 그 얼굴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었지만 사실 전염병에 결렸다는 것이 무슨 죄인가. 가엾을 따름이다.

  윤일현 시인이 쓴 이 시의 주인공인 ‘곰보 누나’는 실존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할머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손녀에게 찾아온 천연두는 그만 얼굴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시집을 가서도 남편한테 구박을 받으며 평생 불행하게 산 누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남동생이 눈물로 쓴 시가 독자의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그 어떤 시적인 기교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사실에 근거해 쓴 시인데, 그래서 백석 이래 우리 시의 또 하나의 전통이 된 이야기시의 모범답안 같다. 시인은 누나의 초상을 이 한 편의 시로 그리면서 곰보로 살아간 모든 우리 선조의 설움을 대변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은 흑사병이나 천연두, 이질 같은 병은 사라졌다고 하는데 이것들을 대신한 신종질병이 하도 많이 생겨나 이름을 다 외우기도 쉽지 않다. 윤일현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인 『낙동강이고 세월이고 나입니다』에는 지난 시절의 애잔한 슬픔을 들추는 시가 많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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