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3) / 시대를 초월한 사랑 - 김현욱의 ‘세오녀가 연오랑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3) / 시대를 초월한 사랑 - 김현욱의 ‘세오녀가 연오랑을’
  • 이승하 시인
  • 승인 2019.11.1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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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3) / 시대를 초월한 사랑 - 김현욱의 ‘세오녀가 연오랑을’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3) / 시대를 초월한 사랑 - 김현욱의 ‘세오녀가 연오랑을’

 

  세오녀가 연오랑을

  김현욱


  일월지(日月池)를 기억하나요
  얼룩무늬 당신이 일병이었을 때 
  첫 면회 갔던 곳
  연꽃 만발하던 일월교에서 
  화랑처럼 달려나오던 
  당신의 팔각모 부신 듯 바라보며 
  어쩌면 그때
  저 팔각 안에서 꽃잠을 자겠구나! 
  덜컥, 마음의 저고리 
  풀어버렸는지도 모르지요
  늘 당신 이름 앞에 
  포항시남구오천읍일월동*이라는 
  열한 글자 형용사를 붙이다 
  그때서야 그 뜻이 
  사랑하는 당신…… 이었다는 것을 
  알았지요
  모르다 뒤늦게 아는 것이
  대부분 사랑이라는 걸
  일월동 일월지 일월교 위에서
  세오녀가 연오랑 찾아 
  그 먼 길 간 찰나의 뜻을 
  기어이 
  알아버렸지요

  * 해병 1사단 우편 주소. 

  ―『보이저 씨』 (도서출판 애지, 2013)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213) / 시대를 초월한 사랑 - 김현욱의 ‘세오녀가 연오랑을’ [이미지 편집 = 김보관 기자]

  <해설>

  포항의 토박이 시인 김현욱이 포항의 전설을 소재로 이 시를 썼다. 이 시에서 세오녀는 처녀요 연오랑은 해병대 일병이다. 세오녀가 연오랑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시는 일종의 연애편지요 연애시인데 몇 해 전 두 사람이 했던 사랑을 그 옛날 설화 속에 나오는 두 사람 이야기와 대비시켜 보니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설화 속의 이야기는 이렇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신라의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던 부부인데, 157년(신라 아달라왕 4) 미역을 따러 나간 연오랑이 올라섰던 바위(물고기라고도 한다)가 움직여 일본의 한 섬에 닿아 임금이 되었다. 남편을 찾아 나선 세오녀 또한 바위에 실려 일본에 닿아 연오랑을 만나고 왕비가 되었다. 그때 신라에서는 돌연 해와 달이 빛을 잃게 되었다. 변괴에 놀란 왕이 일관(日官)에게 물으니, 이는 해와 달의 정(精)이 신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탓이라고 아뢰었다. 왕이 급히 사신을 보내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랑은 하늘의 뜻이라 돌아갈 수는 없으나 세오녀가 짠 세초(생사로 가늘게 짠 비단)를 가지고 돌아가 하늘에 제사지내라 하였다. 그대로 하였더니 다시 해와 달이 밝아졌다. 

  이때부터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지금의 영일만)이라 하였다. 이는 태양신에 관한 신화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를 시인은 현대사회를 사는 두 연인의 이야기로 바꿔 이렇게 끌고 간다. 멀리 떠나간 남자를 불원천리 찾아가는 여인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옛이야기 속의 일본행도, 남정네의 군 입대도 불가항력이다. 처녀가 면회를 가면서 문득 생각한다. 세오녀가 연오랑을 찾아 “그 먼 길 간 찰나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그 초행의 의미를 새긴다. 결국 인간의 사랑의 감정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 이 시의 주제가 아닌가 한다. 분명한 것은 1000년 전에 사랑을 했던 사람들은 다 죽고 없고, 지금 사랑하고 있는 청춘남녀도 100년이 지나면 육신이 스러지고 만다는 것. 신화나 전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가장 근원적인 문제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이승하 시인 약력>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시집 『공포와 전율의 나날』, 『감시와 처벌의 나날』, 『아픔이 너를 꽃피웠다』, 『나무 앞에서의 기도』, 『생애를 낭송하다』 등과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을 펴냄.

산문집 『시가 있는 편지』, 『한밤에 쓴 위문편지』,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등을, 문학평론집 『세속과 초월 사이에서』, 『한국문학의 역사의식』, 『욕망의 이데아』, 『한국 현대시문학사』(공저) 등을 펴냄.

시창작론 『시, 어떻게 쓸 것인가』도 있음.

지훈상, 시와시학상, 가톨릭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 현재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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